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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욱 Nov 12. 2024

내가 디지털 교과서를 반대하는 까닭

한겨레 기고글

이주호 장관님, 저는 디지털 교과서에 반대합니다.     

  저는 전라북도에서 근무하는 15년 차 초등교사입니다. 15년 경력 중 9년을 6학년 담임을 했고, 올해도 6학년을 맡고 있습니다. 2023년 3월 2일, 학생들과 만나는 첫날에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5년 동안 쓴 글보다 올 한 해 더 많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좌절과 동시에 반신반의하던 저희 반 학생들은 담임교사를 잘못(?) 만난 덕에 수업 시간마다 공책에 필기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원고지 공책을 사주고, 매주 금요일이면 주제 글쓰기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국어 시간에는 논설문을 쓰고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독서토론을 위해 토론 공책을 썼습니다. 저는 해가 갈수록 독서와 글쓰기, 토론 수업을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표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사고력, 문해력, 소통 능력, 표현력, 문제해결력 등을 익힙니다. 초등교육의 목표인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의 발표에 저는 좌절했습니다. 무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니요. 15년 차 초등교사로서, 5학년과 3학년 두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교육부의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전면 반대합니다.

  첫째, 학생들이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디지털 기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은영 박사님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공부의 큰 목적 중 하나는 두뇌 발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호모 사피엔스의 두뇌가 독서와 토론을 통해 발달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책을 읽는 아이들의 전두엽과 영상을 보는 아이들의 전두엽 활성도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과연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로 받아들이고 공부할까요? 아니면 디지털 기기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눈은 화면을 보고 있지만 전두엽은 쉬는 상태가 될까요? 이렇게 전두엽을 안 써 버릇한 학생들은 다양한 증상(?)을 보입니다. 화면 보는 일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집중력이 낮아집니다. 어휘력, 독해력, 문해력도 낮아집니다. 단어나 용어의 뜻을 아예 몰라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중등 선생님들의 사례는 이제 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초등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텍스트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쓰는 어휘의 폭이 좁아지고 소통 능력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쓰는 언어의 폭이 사고의 폭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장관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둘째, 뇌 발달뿐만 아니라 학습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스티브 잡스가 픽사의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 할 때 화장실을 딱 하나만 만들자고 주장한 사실을 아실겁니다. 아이폰으로 세상을 바꾼 스티브 잡스는 2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혁신은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학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소통이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종이책 교과서는 수업 시간에 더 많은 소통 기회를 줍니다. 학생들은 책을 보다가 선생님을 보기도 하고 발표하는 친구나 칠판을 봤다가 다시 책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교과서의 스크린을 보던 학습자는 전환과 집중을 종이책만큼 쉽고 빠르게 하기 어렵고 자연스레 소통의 양도 줄어들 것입니다. OECD에서 2015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에서 컴퓨터를 적게 쓰는 나라가 더 많이 쓰는 나라보다 학업 성취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실제 전주의 여러 초등학교에서 디지털 기기를 수업에 활용하는 사례를 들어보면 오히려 학습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에 각도기를 쓰는 법을 배우는 경우 디지털 화면 속 도형의 각을 재는 일은 종이책 위 도형의 각을 재는 일보다 훨씬 번거롭고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실제 수모형이나 실물 쌓기나무를 디지털 기기 속 화면이 대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회나 과학 시간에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 활용하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도 오산입니다. 요즘 학생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서 금방 배우고 쉽게 다루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원하는 정보를 찾지를 못합니다. 검색창에 뭐라고 적어야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교사의 도움으로 적절한 키워드를 찾으면 그다음 문제가 생깁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이 양질의 정보인지 판단하지 못합니다. 독서와 토론이 절대 부족하여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교과서가 실제로 종이책 교과서를 대체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을 살펴보면 기존 교과서와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이지 기존 교과서를 대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디지털 교과서가 아닌 디지털 교재의 개념입니다. 지난 10월 스웨덴이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가고 연필 글쓰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소식이 우리나라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을 보면 이런 우려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유네스코도 올해 8월 교육에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할 것을 긴급히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각 학교에서 인터넷 연결 속도를 높일 것을 주문하는 동시에 기술이 교사의 대면 교육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혁신도 학습도 결국 사람 사이의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전라북도의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는 학생 수만큼의 디지털 기기가 들어와 있습니다. 교사들은 필요에 따라 이 기기를 활용합니다. 디지털 교과서도 이래야 합니다. 기존의 수업을 보조하고 학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있다 믿는 현직 교사이자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로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전면 재고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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