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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레 언니 Oct 26. 2024

학교 운동장은 언제부터 닫혔을까

중학교 때, 나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떨어진 곳으로 학교를 다녔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집 앞 학교 운동장, 내가 다니던 학교가 아닌 집 앞의 다른 학교 운동장을 달리던 기억이 있다. 동생도 함께 뛰었었고, 엄마는 산책을 했던가. 방학 때 친척들이 놀러 오면 또 다른 학교들을 돌며 운동장에 있는 놀이기구를 타기도 했다.


1km 달리기를 마무리하는 7일째, 2km를 목표로 뛰다가 얼떨결에 3km를 달렸다.


거리 3킬로미터

소요시간 25분 02초

평균 페이스 08분 20초 


페이스, 케이던스 모두 엉망이다. 


'10km 달리기'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3km부터 시작해서 5km로 늘려라', '30분 달리기부터 시작해라' 같은 내 기준으로 말도 안 되는 솔루션이 줄줄이 나온다. 나는 나를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1km부터 차곡차곡 쌓는 내 계획을 믿는다. 숨이 짧아서, 숨이 차는 게 무서워서 1km도 겨우 달리던 사람이 엉망진창이라도 3km에 닿았다는 사실에 나를 칭찬했다. 이것 봐. 차근차근, 이제 나는 다음 주부터는 3km를 달리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초보가 달리기 훈련 장소를 잘못 골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좁고 짧은 단지 내 공원은 지겹도록 다섯 바퀴를 돌아도 1km를 채우지 못했고, 오르막이 제법 있는 평탄치 않은 길이었다. 다음 주 계획인 3km를 달려야 하는 달리기 초보에게 필요한 곳은 무릎에 충격이 덜한 바닥,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평평한 길, 지루하지 않은 코스, 그리고 사람을 포함한 장애물이 없는 장소였다.


퇴근 후 회사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왕복 4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동네였는데, 초등학교 운동장보다는 넓어 보이는 중학교 운동장을 택했다. 해는 저물었고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학교 운동장을 감싼 사위가 안정적이었다. '운동을 시작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발이 가볍다. 고요한 운동장에는 러닝화가 모래에 닿는 소리와 '습-습-후-후' 내 거친 호흡만 있었다. 


흙바닥이라서 무릎에 무리가 없고 산책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이곳은 우리 부부와 같은 초보러너에게 제격이었다. 이 가뿐함 때문인지 일주일 경력의 기록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달리기를 하면서 단 한 가지 걱정된 점이 있었다. 목줄 풀린 혹은 주인 없는 개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를 대비해 도망치거나 올라갈 곳을 찾느라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갈 곳은 없었다. 축구 골대, 농구 골대, 몽키 바, 시소, 그네, 정글짐. 이 중 하나를 골라 개보다 빠르게 올라가야 하는데 몇 바퀴를 달리면서 여러모로 생각해도 정글짐이 그나마 낫겠다는 결론이었다. '저 쇠를 밟고 올라가서 발을 디디고 최대한 높은 곳으로 대피한 다음 119에 신고해야지.'


거리: 3km

소요시간: 20분 20초

페이스: 06분 45초


3km를 뛰고 저녁에 있는 발레 수업을 들으러 갔다. 발레는 바워크를 하기 전에 몸을 뜨겁게 데우고 유연하게 하기 위해 매트 운동을 먼저 한다. 달리기를 하고 수업에 가니 플로어 워크가 더 수월하고 유연성의 가동범위가 더 넓어져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가늘고 길게 몸을 뻗는 훈련을 하기에 너무 좋았다.


달리기 후 발레, 안 그래도 신체 전반에 근력이 없어서 고민이던 차에 잘 됐다. 달리기가 마음에 들었다, 오래 할 수 있는 취미를 하나 더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설렌다.


퇴근 후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는 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어딜까요?'


'이게 뭐래.' 대답을 장난스레 질문으로 받는 이 남자는 무슨 꿍꿍이가 있다. 남편이 운동장에 도착해서 이미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 코스로는 마음에 들었어도 혹시나 목줄 풀린 개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내심 졸았던 건 사실이라 든든했다. 부부가 달리기를 하니 이런 이벤트도 얻게 되었다. 넉살 좋은 남편은 내가 달리는 동안 수위아저씨와 스몰토크도 놓치지 않았다. 


며칠 후에도, 같은 중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교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바닥 레일을 따라 철문을 밀어 보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학교를 빙 둘러 도로를 뛰었다. 

'당황스럽네, 학교 운동장은 언제나 개방 아니었나. 왜 닫혀있지.' 


보도를 달리는데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좁은 길에 정돈되지 않은 가로수 가지가 시야를 가렸고 자전거가 길을 비키라고 따릉 거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가로수에 뺨을 맞다 보니 보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시장님과의 대화방에 글을 올릴까 생각도 든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뛰다를 하다가 달리기를 포기했다. 동네 다른 학교를 모두 둘러봤지만 하나같이 '외부인 출입 금지', '학교 개방시간: 토요일 08:00~10:00',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출입을 금합니다.', '일몰 후 폐쇄'를 큰 글씨로 표시하고 있었다.


달릴 곳이 없어진 초보러너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을 굴리느라 머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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