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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n 10. 2023

일반손해보험의 요율 체계

요율 체계와 판단요율의 위험성

손해보험사가 판매하는 보험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하는데 일반, 장기, 자동차다. 그중 세부 종목으로는 가장 다양하지만 국내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게 일반손해보험이다. 화재보험, 선박이나 적하와 같이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보하는 해상보험, 건설 중인 물건을 담보하는 기술보험, 그리고 각종 배상책임보험 등이 모두 일반손해보험에 속한다. 지금 이야기한 종목들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담보하는 물건도 동질적인 특성을 가지기가 어렵기 때문에 세심하게 다뤄야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인보험이나 자동차보험 시장에 비해 매출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것은 많은 반면 오히려 더 적은 관심을 받고 있다. 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보험료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일반손해보험의 보험요율은 어떻게 결정되고 있을까?


장기나 자동차보험의 경우 사람, 자동차가 워낙 많기도 하고 나이, 성별, 자동차는 차종, 연식 등으로 구분했을 때 나름의 동질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통계적인 방식을 사용해서 요율을 책정한다. 통계 자료를 가지고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형태로 보험료를 책정하는지, 혹은 기존 보험료와 보험금 지출을 비교해서 결과를 사용한 피드백 형태로 보험료를 조정하는지에 따라 순보험료법과 손해율법으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두 방법 모두 통계적인 기반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손해보험은 통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기 어렵다. 장기 인보험, 자동차보험이 각각 하나의 보험종목이라면 일반손해보험은 화재, 해상, 배상책임, 기술 등의 여러 종목의 묶음이다. 사실 제대로 말하면 해상보험 하나만 해도 선박보험, 적하보험, 항공보험과 같이 여러 종목을 포괄하고 있다. 그만큼 서로 상이한 종목이 일반손배보험이라는 이름 하에 묶여 있다. 종목의 상이함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리스크가 가지고 있는 특성 또한 통계적인 기반을 위협하는데 대부분의 일반손해보험은 '저빈도, 고심도'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건물 하나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화재라는 게 자주 나는 일은 아니지만, 한 번 발생하게 되면 피해는 상당히 커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건이 더 크고, 고액인 경우에 이런 성질이 더 심해지는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나 롯데월드 타워 같은 건물을 생각하면 사고가 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사고가 났다고 하면 그에 따른 손해액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통계는 우선 빈도가 높아야 통한다. 빈도는 데이터의 개수다.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통계적인 기반이 확보되는데 일반손해보험은 사고 자체가 드문 편이다. 심지어 사고가 났다고 해도 동질적인 그룹으로 묶을 수가 없다. 반도체 공장에 발생하는 화재와 오피스텔 건물에 발생하는 화재는 전혀 동질적인 원인도,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통계적인 기반 위에서 산출하는 요율 시스템'이라는 말이 사실 일반손해보험에는 허상에 가까운 말이 되기도 한다. 통계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통계적인 구색을 맞췄다'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반손해보험의 요율은 통계에 기반한 요율 외에도 다른 것이 존재한다. 크게 자사요율, 참조순보험요율, 협의요율 혹은 구득요율, 그리고 판단요율로 구분하는데 자사요율의 경우 보험사가 자사 통계를 활용해서 산출하는 요율이고 참조순보험요율은 보험개발원이 통계를 활용해서 산출하는 요율이다. 이 두 가지가 통계적 기반 위에서 산출되는 요율인데 사실 작은 물건이 아니라고 하면 통계 축적이 어렵고 보험개발원이라고 해도 애초에 동질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리스크 특성상 통계적 요율을 산출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반손해보험의 좁은 영역에만 이 두 가지 요율이 사용된다.


협의요율 혹은 구득요율이라고 부르는 것은 재보험자로부터 받아서 쓰는 요율이다. 재보험자가 일반손해보험에 대해서는 원수보험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요율을 받아서 쓰게 된 것인데 일반손해보험의 많은 물건은 이 요율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일반적인 물건의 경우 국내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를 통해서 요율을 받고, 규모가 정말 크고 독특한 물건의 경우에는 해외 재보험자로부터 요율을 받기도 한다. 재보험자 중 누가 요율을 줄 것인지는 그 물건의 재보험을 누가 대표로 받을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대체로 재보험자가 특정한 물건에 대해 요율을 제공하게 되면 원수보험사는 그 요율을 사용해서 계약자와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그 보험계약의 일부 위험을 재보험재에게 출재 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규모가 큰 물건에 대해서는 국내 재보험자가 리딩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해외 재보험자가 요율을 주고 대표로 출재를 받아가게 된다. 아무튼, 국내냐 해외냐를 떠나서 대부분의 일반손해보험 물건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재보험자로부터 제공받는 협의요율(구득요율)을 사용해 왔다.


주로 재보험자의 협의요율을 사용하던 상황에서 일반손해보험 요율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가된 것이 '판단요율'이다. 국내 재보험자가 한 곳인 상황에서 재보험자로부터 요율을 받아서 사용하다 보니 계약자 입장에서는 어느 보험사에 문의하더라도 같은 요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재보험자 입장에서도 A와 B 보험사에 같은 물건에 대해 요율을 내어 줄 때 다른 요율을 준다면 거래 관계를 망치게 되니 같은 요율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보험사는 여럿이지만 요율 경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규제 당국에서 뽑은 칼이 바로 판단요율이다. 판단요율은 원수보험사가 통계적 기반이 없더라도 직접 요율을 내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인수하고 싶은 물건에 대해 원수보험사는 재보험자에게 요율을 받지 않아도 된다. 직접 요율을 제시하고 계약자가 승낙하면 그 보험료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계약자 입장에서도 여러 보험사에 문의를 하고 가장 낮은 보험료를 제시하는 곳과 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경쟁도 촉진하고, 소비자의 선택권도 넓어지는 것이다.


물론, 취지는 그랬다. 결과는 그렇지 않다.


일반손해보험이 아닌 다른 상품을 가지고 생각하면 판단요율이라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가구를 파는 상인이라고 할 때 가구 가격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내가 정하고, 고객이 승낙한다면 그게 거래 가격이 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건 일반손해보험이 가진 특성을 빼놓고 생각했을 때의 이상적인 상황일 뿐이다. 일반손해보험은 담보하는 리스크의 특성이 '저빈도, 고심도'라고 했다. 그 말은 '원가를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보험에서 원가는 보험금이다. 그리고 보험금은 사후에 결정된다. '원가의 사후 결정성'이 보험의 특징이라고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사후결정성의 극단에 있는 게 일반손해보험이다. 일반적인 소비재는 원가가 사전에 결정된다. 결정되지 않더라도 대체로 예측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격을 자유롭게 결정하게 하더라도 폐해가 생기지 않는다. 가격 경쟁을 하더라도 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경쟁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원가보다 낮은 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걸 영원히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원가가 예측 가능하다 보니 그런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시기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손해보험은 그렇지 않다. 롯데월드타워가 화재보험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 원가는 얼마가 되어야 할까? 혹은 100조짜리 건물이 있을 때 그 건물의 화재보험 원가는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 사후에 결정되겠지만 100조이 될 수도 있고 0원이 될 수도 있다. 통계를 사용해서 평균적인 수준에서 잡으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애초에 통계가 성립할 수 없다. 저 정도의 건물과 동질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격 경쟁을 위해서 풀어 준 판단요율은 극단적인 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사고가 나면 100조를 갚아줘야 하는 건물의 보험료가 10억밖에 안된다고 해도 사고가 안 나면 10억을 벌 수 있는 계약이다. 순전히 도박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그런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고가 안 나겠지'하는 생각 하에 요율 경쟁이 벌어진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보험료가 싼 것이니깐 좋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보험회사는 계약자와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보험료를 받고 이후에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 보험사의 의무인데 이런 식의 비이성적인 경쟁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막대한 보험금을 주고 파산해 버리게 되면 그때 벌어지는 혼란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금융은 신뢰의 산업이다. 은행만 봐도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 뱅크런이 일어난다. 보험사라고 보험금을 언제나 지급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손해보험에 요율에 무한경쟁을 하다가 어느 순간 보험료가 보험금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보험사가 무너지고 그렇게 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계약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보험 법규에도 보험료를 책정할 때 '비과도성'도 이야기하지만 '적정성'도 이야기한다. 최소한 적정한 보험료를 받아서 계약자와의 의무를 모두 이행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통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은 원가가 측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가를 측정할 수 없는 상품에 대한 요율 자율화, 즉 판단요율은 보험요율 경쟁 촉진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만을 가진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밖에 없다. 100조짜리 건물에 대해 작년에 A라는 보험사가 100억의 보험료를 제시했다고 했을 때 올해 B라는 보험자가 10억의 보험료를 제시했다고 하면 우리는 이것을 '요율 경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원가 없는 세상에서는 경쟁과 도박의 경계가 흐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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