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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n 04. 2023

이창용 한은 총재 기자회견에 대해

장기 저성장 국면과 단기 정책적 해결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에 했던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PQM61Osa_0&pp=ygUJ7J207LC97Jqp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를 재정, 통화정책을 통해서 단기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는 말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그 후에 또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비판은 물가안정, 실업, 경제성장 같은 거시경제적 문제와 이를 위한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한국은행 총재가 교육, 연금, 사회와 같이 비경제적이거나 거시경제 문제에서 약간 벗어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서 나오기도 하고 구조적 문제를 재정, 통화정책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는 주장 자체에 다른 석학들의 반응을 인용하며 나오기도 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91188&ref=A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창용 총재의 말에 공감한다. 한은 총재라고 해서 비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아야 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조적 문제의 '돈 풀기'를 통한 해결은 절대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다. 다만, 기자회견은 비교적 짧은 담화였고 그 시간 내에 이창용 총재가 그런 생각과 말을 하게 된 이유를 경제나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 조금 풀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각종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통화정책 수장의 의견 발표가 적절하지 않다는 말은 '경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비판이다. 경제는 세상을 보는 창이고 렌즈다. 우리는 신문을 통해 세상의 수많은 현상,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의 분류가 경제든 경제가 아니든 어느 지점에서는 경제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다툼과 의사결정 안에도 잘 따져보면 누가 이익을 보고, 이익을 보지 않는가와 같은 경제적인 문제가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 사회, 심지어 범죄까지도 경제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문화를 소비하는 것도 돈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서 문화의 소비 행태도 달라진다.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의 어려움이 높아지는 것은 크고 작은 범죄가 늘어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경제의 수장이라면 모든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를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뀌고, 반대로 모든 것이 바뀌면 경제도 바뀐다. 물론 그 관심을 대외적으로 표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 다소 소극적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세상은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고 통합되었다. 지금은 한 분야 내에 묶여 있는 전문가보다는 한 분야에 뿌리를 두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의견을 표현하고 공개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어줄 수 있는 전문가가 보다 필요한 사회다.


그리고 발언의 내용 자체, '구조적인 문제를 단기적인 통화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창용 총재는 분명히 자신이 가정하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이 가정을 깔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고, 비판을 하고 싶다면 가정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거나,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도 단기적 통화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후자, 즉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단기적 통화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이전에 나도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은 반드시 그 비용을 지출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비용의 지출 시점이 조금 뒤로 이연 되는 것뿐이지 무한정 쓸 수 있는 비법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기에 풀었던 막대한 양적완화, 저금리 정책의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https://brunch.co.kr/@actuary/55 (경기부양책의 함정)


금융에서 한 가지 본질적인 법칙을 꼽자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이고 정책에도 그 법칙은 성립된다. 다만 그럼에도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쓰는 이유는 일시적인 펌프질을 통해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 때, 혹은 특정 목적을 위해 다른 곳에서 비용을 끌어다가 써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심정지가 온 사람이 있을 때 심폐소생술로 그 순간을 넘어가기만 하면 갈비뼈가 조금 부러지더라도 다시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잠시 경제의 흐름이 멈춰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돈을 뿌려서 흐름을 만들고, 그 후에 비용을 지출해야 할 때 다시 회수하면 된다. 그게 정책이다.


다만 '장기 저성장 국면'과 '구조적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는 심폐소생술이 먹히지 않는다. 일시적인 저성장으로 인해 성장률이 1%인 국가에서 정책으로 펌프질을 해서 성장률을 3%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경제가 활성화되어서 만들어진 2%라는 여유분으로 정책의 비용을 갚으면 된다. 그러나 장기 저성장 국면이라는 건 늪에 빠졌다는 말이다. 1%인 국가가 돈을 풀었는데 성장률은 그대로이고 비용만 지출하게 생겼다면 경제는 망가진다.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은 늘어나지 않았는데 물가만 상승하게 될 것이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 취약차주들에게 전가된다. 나라의 두터운 층을 이루는 사람들이 힘들어지게 되면 사회적 갈등은 높아지고, 금융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장기 저성장 국면을 만드는 것은 대체로 구조적 문제에 기인할 텐데 구조적 문제는 당연하게도 돈 풀기로 해결할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펌프질을 통해 일시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혈관 자체가 꼬여 있다면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피가 제대로 돌 수 없다는 말이다. 길을 제대로 내지 않은 상태에서 수혈만 하고 펌프질만 하게 되면 결국 아무런 효과도 볼 수 없고 나중에 비용만 지출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으로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면 선순환이 이어질 수 있지만 반대로 무용한 정책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는 악순환이 시작되고, 일단 시작된 저성장 국면에서는 그 악순환을 다시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한 번의 정책이 정말 소중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순간이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연금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연금에 정부가 돈을 충당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연금 재정이 고갈될 것인지 아닌지, 고갈된다면 언제쯤 고갈될지는 현재 가진 재원과 여기에 적용되는 투자수익률, 인구증가율과 같은 기초 가정에 의해 결정된다. 돈을 부어서 일시적으로 해결한다고 치더라도 경제가 악화되어 지금 가정했던 투자수익률이 더 낮아지거나 인구증가율이 더 낮아지게 되면 또 고갈될 뿐이다. 장기적인 문제는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한은 총재의 발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적 합의와 이를 통한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길이 열렸을 때 자신이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는 모든 것에 영향을 받지만, 경제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기자회견 이후에 석학들과 만나서 한 질의응답에서는 다른 석학들이 이창용 총재의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대답을 잘 들어보면 '장기 저성장 국면, 구조적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는 어떠하다'와 같은 것은 없다. 이 가정은 한국에 보다 특수하게 깔려 있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들이 비슷한 가정을 공유할 수도 있지만 핵심이 되는 가정은 다르다.


경제는 하나의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가 무엇을 목표로 세우고 어떤 가정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다른 국가의 석학들에게 우리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동의했냐 동의하지 않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주장에 논리적인 결점이 있는가, 혹은 가정에 문제가 있는가와 같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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