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arametric Insurance (지수형 보험) 개요
우리가 ‘리스크’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회의 모습이 변해감에 따라 마찬가지로 달라진다. 과거에 주요했던 리스크가 어느 순간 주요하지 않은 것, 견딜만한 것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리스크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남겨진 가족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생명보험 시장을 키웠지만 현재의 삶이 중요해지고, 복지 제도가 갖춰지면서 그 위치를 점점 다른 리스크에 내어주고 있다. 반대로 개인의 삶이 사이버 공간에 점점 더 노출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담보하는 사이버보험이 생겨나고, 또 커지고 있다. 사회가 변하는 원인이 다양한 만큼 리스크의 위상변화가 일어나는 원인도 다양하겠지만 ‘변한다’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리고 보험이 그러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보험도 변해야 한다. 또 보험이 변하려면, 보험을 하는 사람들이 그 변화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손해보험’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져야 하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실손보상의 원칙’이다 보험이 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는 금융상품인 만큼 손실의 크기를 초과하는 보상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초과 보상은 투기적 수요, 그리고 계약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극히 적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엄격하게 제한되어 왔다. 내 물건의 가치가 100원인데 사고로 잃었을 때 120원을 준다면 사고를 방지할 생각도, 사고가 났을 때 손해를 줄일 이유도 없다. 심지어 일부러 사고를 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손해보험은 실소보상의 원칙을 지켜왔고, 법적으로는 ‘피보험이익’이라는 장치를 둬 이를 실현해 왔다. 보험에 가입하려는 자는 그 사고로 인해 잃어버릴 수 있는 가치, 즉 지키고 싶은 ‘피보험이익’을 가져야 하고, 피보험이익을 숫자로 환산한 ‘보험가액’을 초과하는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중복을 통한 초과도 마찬가지다. 보험금을 더했을 때 보험가액을 초과하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보험의 본질적인 역할을 지키고, 사행성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능해 왔던 실손보상의 원칙은 손해보험이 바르게 성장하는 데 기여해 왔다. 하지만 리스크가 가진 성질이 다양해짐에 따라 실손보상의 원칙이 가진 ‘엄격함’이 보험이 리스크를 따라잡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손해액의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사고의 심각성에 따라 달라지는 손해보험의 특성상 실손보상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손해사정이 필수적이다. 사고가 나게 되면 손해사정을 통해 어느 정도의 손해가 발생했는지를 측정하고, 그 크기에 맞춰서 보상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차보험도 마찬가지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손해액을 측정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실 여기에는 측정뿐 아니라 합의의 과정도 포함된다. 물건의 가치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그 물건에 어느 정도의 손실이 발생했는지를 모두가 동의하는 수준으로 확정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피해자와 보험자 간의 이견이 발생하는 경우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보상을 받기 위해 가입한 보험이 결국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개 큰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보상을 원하지만 보상에 이르는 과정이 길다 보니 계약자는 사고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보상을 위한 절차도 진행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Parametric Insurance’, 즉 지수형 보험이다. 지수형 보험은 특정 변수를 ‘트리거’로 설정한다. 농작물을 예로 들면 전통적인 보험 상품에서는 농작물에 발생한 피해를 특정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지수형 보험으로 전환한다면 ‘사고 발생’이라는 것을 농작물에서 확인하지 않고 ‘기온’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를 트리거로 설정해서 이러한 날이 발생하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보상을 하는 것이다. 물론 영하로 내려간 날이 3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 혹은 영하 1도, 3도, 10도마다 보상금액의 크기를 달리 하는 것처럼 구조를 다양하게 만들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고 발생’의 트리거가 보험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지수’에 있다는 점이다.
지수가 특정 수치를 넘어서게 되면 정해진 금액을 보상하는 것이다 보니 실손보상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어 국내에서는 제대로 논의된 적이 많지 않다. 하지만 보험의 본질적인 목적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보호다. 실손보상의 원칙도 결국 보험이 본질적인 기능을 잘 수행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원칙이다. 그것의 엄격함이 보험의 본질적인 기능을 방해한다면, 그리고 그 정도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커지고 있다면 그것을 수정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분명히 필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으로의 ‘조정’이 필요한 것이고 그에 따라 지수형 보험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했을 때, 지수형 보험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리스크를 담보할 수 있는지, 어떤 상품들이 시장성이 있을지, 또 어떤 구조를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