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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 Jan 14. 2024

20240114

옷장

어제보다 어떻게 더 괜찮아진 걸까. 시계를 보지 않았다. 졸리면 잤고 고프면 먹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했다.


작년 여름 감정을 겪는 걸 틀어막았다. 어느 순간 무거워지기만 하는 것도 싫었다. 일상은 더 산뜻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다. 숨 쉬는 것처럼 감정하지 못하더라도, 물감에 섞여 쏟아졌다.


피부가 따갑다고 생각하면서도 멍하니 타던 옥상 테라스 그네 밑에서,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 그 안에서는 생각이 많았다. 고작한 내 생각을 가열차게 하는 건 나 밖에 없으니 아무렴 당연했다. 녹지대에 매일 새 때가 날았고, 반이 비워졌다는 표현이 어울려보이는 조형물을 보면서, 그 앞에서도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졸리면 잤다. 잠이 많아져서 좋다고 계속 생각했다. 또, 동시에 여기도 그림도 그만두면 뭘 하면 좋을지 같은 생각도 했었다.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는다던가 짧게 축이던 문장을 길게 늘려 스스로를 관통하는 글을 짠다던가. 멍하니 꽉 찬 캔버스를 봤다.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지었던 그림이었다. 그림이 좋았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것 처럼 좋아서, 하지 못 하는 것만으로 슬펐다.


피아노 밑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노래나 부르던 손과 다리가 몽툭하게만 느껴지던, 손가락 사이사이로 햇빛을 만지던 날. 건지지 못 한 조언이 매미 소리같이 스쳤다. 고목나무 같을줄 알았던 인연은 말라붙어 떨어졌다. 봄이 되면 다시 가꿀 수 있을꺼라 여긴 벌이겠지, 다음 계절엔 남을 사람은 남는다는 문장에 공감하겠지.


어떤 문장은 곱씹힌다. 낯선 식감에 혀에 올려놓고 씹지도 않고 측정해본다. 생각을 열게하는  전제는 즐거운 상상이었지만 불편함을 품고 있다. 적힌 문장은 내 현실이 아니라 즐겁다는 것에 그칠 수 있다. 그치지 않고 이어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세계가 반영된 것들은 독특한 맛이 난다고 했는데 독특은 하다만, 간이 체 다 맞지 않았다. 창작자라는 이들도 도마에 오른 문장을 자기 것 처럼 가져다 쓰면서, 자기 페이스로 끌고가려는 시도로 방점을 쓰는걸 볼 때 마다, 허기진 체 혀가 굳는다. 굳어버린 혀를 차기보다, 그냥 맛보지 않은 것 처럼 지나가는 일을 노력한다. 창작이라는걸 보는데 배부른게 아니라, 반대로 배가 고프다.


무지성 반작용. 학습의 이수가 사고의 자정작용을 막는다는데 가끔은 그렇다. 배움을 소망하는 저 사람은 누굴 그렇게 웃겨주고 싶어서, 스스로 코미디언이 되었나.


올 해는 그림으로부터 천진한 사랑이 받고 싶다. 긴 호흡으로 쌓은 노력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건 없었는데, 무심코 바랬다. 이기적이라는걸 알면서도 직접 자신에 대해 속 시원하게 말해줬더라면. 여전하게도 명쾌한 답을 바랄 때가 있고, 어디에도 없다. 가볍게 깊은 모호함이 좋다.


월동을 준비하기엔 조금 늦고, 한파를 대비하기에는 빠른 때 태어났다. 출산 직후에 몸조리를 하던 엄마는 유별나게 더웠고 지나치게 추웠던 계절이라고 하지만 좀처럼 실외생활을 할 일이 없는 나는 커가면서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몇 년을 봐도 예뻐보이는 물건을  갖게된다고해서 설레지도 않고, 뜯어보는 대신 이 핑계로 혹은 또 덕분에 청소를 했다. 옷장에 아무데나 벗어놨던 옷가지를 걸어놓으면서 평생 행복하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불행이 오래 된 것 같아서, 지금이 행복한건가 곱씹었다.


40대에 나의 행복에는 거시적인 관점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좁은 내 세계가 곧 깨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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