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공부
서울은 문학 소년이다. 노안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한 때는 문예창작학과 진학을 고민했다. '백일장에 나가 장려상이라도 탄 적이 있냐'는 누나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자연계 학과로 진학을 하고서도 책을 읽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읽고, 에티오피아에서도 읽고, 영국과 미국에서도 읽었다. 용인이 태어나고 한글을 깨치면서 도서 목록을 작성했다. <소공녀>. 자본주의판 신데렐라 이야기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자극적이지 않아 어린 소녀가 읽기에 딱이다. 용인은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순수 문학이 다가 아니다. 대중 소설의 흡인력을 보려면, 추리 소설의 시작이라 할 만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용인은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를 처음 접하기에 적절하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거장의 반열에 오르고 나서 초로에 우화 형식으로 쓴 글이다. 용인은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푸시킨의 <대위의 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모두 포기하고 읽기 쉬운, 꾸밈이 없고 간결한 문체로 독일 교과서에도 실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혔다. 이것 역시 재미가 없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서울은 좌절했다. 더 이상은 책을 권하지 않았다.
평생 읽은 책의 권수가 자기 나이보다 적은 용인은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어휘력이 부족해 사회 시험 문제를 풀지 못했다. 비문학 공부라도 시켜야 하나 생각에 고등학교 국어 과정을 살펴보다 그 이름을 발견했다. 성석제. 우울증에 걸려 실컷 고생하던 시기에 세상을 향해 실금 같은 문을 열어준 작가다. 그의 글은 유쾌했고 사진도 웃상이다(대부분의 작가들이 오만상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이 서울은 못마땅했다). 서울 나름의 계보에 따르면 그는 김영하, 천명관과 함께 비주류에 속한다. 김영하가 그중 기성 문단에 가깝다면 그 반대편에 천명관이 있고 그는 중간쯤에 속한다.
김영하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테레비에 얼굴을 비추는데 비해 성석제는 언제부턴가 신작이 끊겼고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나 홀로 좋아했던 작가로 사라지나 싶었는데 웬걸, 고등학교 교과서에 그의 글이 실려 있다. 한두 문단에 불과하지만 그 작품을 알고 있다. 인용된 문장 앞의 이야기가 어떠한지 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이 글을 발표하기 전에 어떤 소설이 있었고 그 후로 어떤 소설을 썼는지도 안다. 야당의 단일화 실패로 군사 정권이 이어지던 시절, 당시 문학계는 소위 운동권 후일담 일색이었다. 좀 더 치열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떠난 이들을 야속해하고, 생활고에 힘겨워하는 글로 가득 찬 시기에 그의 글은 날렵하고 명랑했다. 진실되려고 꼭 진지할 필요는 없음을 말했다. 서울은 오랜만에 동네 형을 만난 듯 반가웠다. 국어 공부는 잠시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