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시작은 없다.

by 한꽂쌤

'완벽이란 말이 왜 좋을까?'를 생각해 본다. 완벽한 얼굴, 완벽한 몸매, 완벽한 파트너, 완벽한 이해, 완벽한 공부 등 완벽하면 뭐든 자신감 넘치고 기분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완벽이라는 단어가 정면으로 쳐다보기가 부담스럽고 자꾸 곁눈질로 봐지는 건 왜일까.


나 역시도 완벽을 추구한다. 강의 준비를 할 때, 계획서를 쓸 때, 공부를 할 때, 엄마 역할할 때에도 완벽했으면 좋겠다. 그 역시 안타깝지만 완벽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저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참 코로나가 시작될 즈음에 오프라인 강의가 갑자기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강의 내용을 녹음해야 했을 때의 일이다. 평소에 전혀 하지 않던 녹음 작업, 강의 영상 만들기는 내게는 스트레스였다. 학교가 멀어서 학교의 녹음실을 사용하기는 귀찮고, 예약해야 하고,,,,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일단 집에서 녹음 작업을 하여 들어보니 잡음이 심했다. 다시 녹음을 했더니 역시 잡음이 심했다. 이어폰도 바꿔보고 방 이동도 해보았으나 역시 맘에 들지 않았다. 좀 더 완벽하게 학생들에게 제공을 해야 체면을 유지할 거라는 생각에 끙끙 대고 있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다가 제 명에 못살지

코로나는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대면 강의면 몇 시간이면 끝날 일을 며칠째 이러고 있는 거야

시간이 너무 아까워 누가 내 시간을 보상해 준담?


라는 생각에 갑자기 뭔가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고 과감히 그 수준에서 만족하기로 하였다. 집에 녹음실이 있을 리 없고 갑자기 해보는 영상 녹음 작업이 쉬울 리 없지... 그럴 수 있지... 이런 마음으로 완벽을 포기했다. 지금의 환경에서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즐겁게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강의가 고통스러운 강의가 되는 것에 더 이상 동조할 수없었다. 완벽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처음부터 인식하고 시작하면 예방주사 맞은 것처럼 편안해질 수 있다.


일단 시작하고 하면서 더 완벽해져도 돼

누구나 다 완벽하진 않아

그래도 시작이 어디야. 일단 해보자


미래에 올 후폭풍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과정 속의 완벽 추구는 성장을 촉진한다. 그러나 시작부터의 완벽은 환상을 촉진할 뿐이다.


완벽을 추구하려다가 계획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계획을 디테일하게 세워놓으면 뭔가 이뤄질 것만 같은 그런 착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계획은 얼마든지 중간에 수정 가능하기 때문에 계획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느라 실천하는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생각의 양이 많을수록 행동의 양은 줄어든다. 매번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계획하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지, 생각이나 걱정을 하느라 자꾸 뒤로 미루는 태도가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완벽에 대해 집착하게 되면 두려움이 친구가 된다.


완벽해야 인정받을 거야

완벽해야 사랑받을 거야

완벽해야 성공할 수 있어


자신에게 있는 본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실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다. 심리학에서는 완벽을 하나의 방어기제로 본다. 이는 '모든 것에 완벽해야만 비난을 받지 않을 거야'라는 비합리적 믿음에서 온다는 말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은 타인으로부터의 애정 욕구가 과하다. 누구나 인간은 애정 욕구가 있어서 타인의 애정을 갈망하지만 과하다면 문제는 다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완벽한 자신'만을 오픈하는 사람들이 많다. 타인과의 관계 시에는 늘 완벽의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집에 오면 탈진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가끔 '허당'의 모습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저런 틈이 있구나. 너무 인간적이다'라는 생각에 안도감마저 든다. 내가 가까이 가도 될 것 같고 나의 틈을 인정해줄 것만 같은 너그러움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완벽한 사람을 가까이 둔다면 업무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족한 듯 하지만 성실한 자세로 과정에 임하는 사람이 훨씬 인간미가 넘친다. 대단한 완벽주의도 좋지만 지나친 완벽 추구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소중한 친구들을 잃을 필요는 없다.


하마 체크라는 학자는 정상적 완벽주의와 신경증적 완벽주의에 대해 말했다. 정상적 완벽주의자의 특징은 고통스러운 노력을 즐거움으로 환승하는 능력을 가진 자라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부족함을 허용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은 보존된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겸손한 자세는 성취감과 자기 유능감을 불러온다. 신경증적 완벽주의자는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자기만족이 없는 사람이다. 늘 부족하며 늘 불평이 많은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지나친 목표를 세우기 때문에 긴장감이 높고 소진, 불안, 두려움 등에 시달린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나중 문제다. 자신을 가치롭게 여기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내 수준에 맞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과도한 자기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한다. 할 수 없는 것을 계획하느라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허술한 계획이 차라리 도움이 된다. 행복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행복 안에는 넉넉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


날마다 후회하는 일이 있고, 날마다 해내지 못하는 일 투성 이이다. 내가 나눈 말 중에 진실이 아닌 부분이 있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후회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나만 그러한가? 아니다. 누구나 다 그런 모양새로 살고 있다. 틈이 있는 자신을 허락한다면 지금 당신이 미룬 일을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완벽한 계획을 내려놓고 빈틈 있는 계획을 세워보자. 빈틈 있는 계획이야 말로 당신이 시작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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