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작은 가루를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빠른 변화는 인간에게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좀 더 안락하게 살고 싶고 좋은 것을 누리고 싶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풍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같은 노력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속 가능하게 한다. 이웃사촌보다 잘 살아야 하고 친구보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기에 개인의 욕망은 당연시되어 경쟁적 삶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성장이 아니라면 후퇴'와 같이 양극단의 선택만 있는 양 과정 속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타인보다 내가 먼저 취해야 빠른 성공이기에 개인의 노력은 더욱더 처절한 경쟁사회 속 긴장감을 가중시킨다.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마음이 놓이고 더 많은 자격증을 따 놔야 뭔가 준비된 막연한 느낌은 인간 내면의 진정한 가치와는 멀어지게 만든다. 더 많이 불안한 사람이 더 많은 준비를 하듯이 온 사회의 불안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된 지 오래다.
급속한 변화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삶 속에서 조급함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조급함을 누르기 위한 행동은 '과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 되었다. 어릴 때는 공부를 잘해야 기가 살고, 청년이 되어서는 좋은 대학에 가야 기가 산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좋은 직업을 가져야 기가 살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좋은 가정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좋은 가정이란 능력 있는 가정을 가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 이러한 가정을 이루지 못할 바에야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 출산을 포기하는 것쯤은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었다.
'능력 있으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이를 제대로 키울 능력이 안될 바에야 둘이 잘 사는 것도 좋지 뭐'
과거에는 결혼한 자녀를 둔 나이 든 부모들은 결혼과 자녀 출산을 강요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본인들의 선택에 맡겨두고 각자의 선택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카이로스
이탈리아의 트리노 박물관에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 동상이 있다. 카이로스는 '기회(Chance)’ 를 뜻하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순간'을 뜻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의 아들이다. 카이로스의 동상은 독특한데 벌거벗은 사람 모습으로 앞머리 숱이 많고 무성하다. 이유는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지만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뒷머리는 대머리인데 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을 수없도록 하기' 위함이며, 나의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왼쪽에 저울이 있는 것은 '일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며, 오른손에 칼이 주어진 이유는 '칼날로 자르듯이 빠른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Chance)다"
기회는 어떤 것인가? 어떤 것을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시기, 즉 타이밍을 제대로 잡는 것이다. 기회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카이로스에 의하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를 한 다음 미리 기다리다가 기회가 왔을 때 도망가지 못하게 앞머리를 꽉 쥐고, 저울을 달아보고 분별한 뒤 재빠른 결정을 내린 뒤 실행에 옮겨야 한다.
기회는 항상 오지 않는다?
기회는 늘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간의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많은 기회를 잡고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기회는 개인에게 만족감을 주고 성취욕을 불러일으키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로망이 된다. 이러한 기회가 자기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빨리 달려야 하기에 준비자세부터 남달라야 한다.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는 경쟁에서 뒤처져 실패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더욱 두렵다. 이러한 패자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비치지 십상이고 물질의 빈곤을 맛볼 수밖에 없다. 뒤쳐짐의 대가로 불안이 엄습하고 다양한 심리적 고통이 동반되기도 한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선택할 수 없는 삶의 구조가 되고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인 삶으로 다가온다.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개개인의 심리적 문제는 더 다양해질 것이다.
과거에는 삼포세대가 유행했지만 지금은 칠포 세대가 된 지 오래다.
삼포: 결혼, 연애, 출산 포기
오포: 결혼, 연애, 출산, 인간관계, 집 포기
칠포: 결혼, 연애, 출산, 인간관계, 집, 꿈, 희망 포기
를 뜻한다. 왜 이다지도 우리들은 포기를 앞세우는 것일까? 사회가 당신의 포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이 당신의 포기를 부추기는가?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는가? 결국 우리는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안 하는 것이 아닐까? 출산도, 인간관계도 당신이 안 하는 것이 아닐까?
결혼을 했다가, 아이를 낳았다가, 연애를 하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미리 포기할까 생각해본다. 시작하기 전에 포기해버리면 자존심을 보존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보존된 자존심은 자존감까지 포기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씁쓸하기까지 하다.
'아직 결혼하기에는 돈이 좀 모자라서 더 벌고 결혼하려고요'
'집값이 너무 뛰니까 집부터 먼저 사고 아이를 가지려고요'
돈은 어느 정도 모여야 모자라지 않을까? 돈을 많이 들이면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다고 부모 자격 되는 요건에 들어있는가? 이러한 인식은 일반화에 불과하다. '~이 없어서 ~못한다'라는 말에는 '나는 상처받는 걸 원치 않아요'라는 의미이다. 부정적인 경험이 반복되면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고통과 상처를 피해 '포기'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나만 이러나? 다들 이렇게 살아'
라고 하며 애써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이 무뎌지면 좋은 기회가 와도 기회인지 모른다. 기회로 보이기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며 '~했다가는 큰일 날지도 몰라. 차라리 하지 말자'라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기회는 어느 한순간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오늘의 순간에도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줄 수 있는 기회의 작은 흔적들이 당신을 안내하고 있다. 결국 당신이 그 흔적들을 끝가지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면 기회는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한꺼번에 멀리 띄어 버리려고 하지 말자. 뛰려고도 하지 말자. 그냥 한 걸음씩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빨리 걷기가 가능하게 되고 조금씩 뛸 수도 있게 된다. 달려가기에도 느려 보이는 삶이지만 자신의 속도를 고수해야 한다.
지금의 당신 모습과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원하는가?
누가 알겠는가? 기회는 당신 곁에 머물고 있을지. 지금 이 순간도 카이로스는 앞머리를 휘날리며 당신의 손에 잡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