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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Jan 19. 2024

경청과 접촉, 지금 우리에게 가장 간절한 두 가지   

(독서일기) 한병철 <서사의 위기>를 읽고  


얼마 전 어이없는 실수로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날려버렸다.


비밀번호를 바꾸고 바로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눌러보니 틀린 번호였다. 연달아 몇 번을 시도했고 너무 많이 시도를 했더니 어느 순간 아이폰은 완전히 잠겨버렸다. 서비스 센터에 찾아가 봤지만 공장초기화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데이터 백업도 해놓지 않아 수많은 노트, 메시지, 사진, 녹음 파일이 모조리 허공으로 사라졌다.


상념들을 적어놓은 메모들,

통역하면서 공부한 용어들,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사진들


 언젠가 ’한가해지면 정리하자 ‘ 생각하며

미루고만 있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날아가버렸다.


보물을 쌓아두기만 하느라 집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는데 하루아침에 도둑을 맞아버린 심정이랄까?  


내가 어떤 보물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쓰라려서 며칠간 잠을 설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쓰라림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홀. 가. 분했다!


마침 새해도 다가오는데 이 기회에 산뜻하게 시작해 보자 마음먹었다. 마치 새로운 집이라도 생긴 듯 필요한 순서대로 앱을 하나씩 다시 깔았다.


   당장 연락해야 하니 카카오톡

일에 반드시 필요한  Gmail

매일 듣는 라디오,

은행 업무에 필요한 앱,

아이 학교 알림,

유튜브, 브런치 순이었다.


필요한 앱들을 하나씩 깔고 있는 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모든 앱들이 날아간 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아직 설치할 일이 없었다.  

소셜미디어를 쓰지 않겠다고 딱히 결심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필요하지가 않았을 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간 주로 감식력이 남다르거나 필력이 좋은 페친의 글을 읽거나 좋아하는 몇몇 지인들의 근황을 알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가끔 들렀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따지고 보면 우리의 ’ 소셜 라이프‘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서사의 위기> 한병철 저

<피로사회>(2012)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재독 교수 한병철은 <서사의 위기>에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오히려 우리를 고립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스마트한 지배’에 인간 스스로를 예속시키는 도구라고 진단한다.


“실제로는 자기 묘사에 다름이 없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도 사람들을 끊임없이 고립시키고 있다. 이야기와 달리 스토리는 친밀감도, 공감도 불러내지 못한다.  이들은 결국 시각적으로 장식된 정보, 짤게 인식된 뒤에 다시 사라져 버리는 정보다.  이들은 이야기하지 않고 ’ 광고‘한다. 주목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 시대에 이야기와 광고는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지금 서사의 위기다.”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정보체제가 자리 잡는 과정이 억압적이지 않고 오히려 매혹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들은 스마트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명령이나 금지로 작동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침묵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마트한 지배는 지속적으로 우리의 의견, 필요, 선호를 소통하라고, 삶을 서술하라고. 게시하라고, 공유하라고, 링크로 걸라고 요구한다. 이때 자유는 억압되기는커녕 철저히 혹사된다. 자유가 결국 통제와 제어로 전복되는 것이다.  스마트한 지배는 그 존재를 특별히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이들은 자유와 소통의 탈 속에 숨어 있다.  게시하고, 공유하고, 링크를 거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지배의 흐름에 예속시킨다.”


저자는 경청과 접촉을 통해 ‘스마트한 지배’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법을 제시한다.

 

“오늘날은 스토리텔링이 넘침에도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작가 Michael Ende의 <모모>는 경청만으로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중략)  모모의 우호적이고도 사려 깊은 침묵은 상대를 자기 혼자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었을 생각으로 데려간다.


모모는 뭔가를 말하거나 질문함으로써 사람들을 그러한 생각으로 이끄는 게 아니다. 그렇다. 그저 앞에 앉아 경청만 한다. 모든 사려와 공감을 다해. 모모는 타자가 스스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놓도록 배려해 준다


경청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되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 즉 타자가 누구인가다.  모모는 자신의 깊고 다정한 시선을 통해 타자를 그 사람의 타자성 안에 그대로 둔다. 경청은 상대에게 이야기할 영감을 주고 이야기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소중히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사랑받는다고까지 느끼는 공명의 공간을 연다. “


“어루만짐 또한 치유력이 있다.  접촉은 이야기하기처럼 친밀함과 근원적 신뢰를 형성한다. 촉각적 이야기로서 접촉은 고통과 질병으로 이끄는 긴장과 막힘을 풀어낸다. 접촉하는 손은 이야기하는 목소리와 동일한 치유 효과를 발휘한다. 오늘날 우리는 접촉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커져가는 접촉의 빈곤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우리에게서 접촉이 완전히 없어지면 우리는 스스로 자아 ego 속에 불치의 상태로 사로잡힌 채 잔류할 것이다.  접촉은 우리를 자아 안에서 밖으로 꺼내준다. ”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과연 수백, 수천 명과의 교류가 필요할까?


수십억 명이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갈 의미를 찾는 게 우리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사려와 공감으로 경청해 주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는 칠흑 같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The first rule is listen.”

Stephen Covey


커버사진: https://unsplash.com/ko/@dbeamer_jpg

기타 이미지: https://unsplash.com/ko/@gustavolanes


#서사의 위기#한병철#소셜미디어#경청#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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