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8일 화요일, 고척스타디움에서 삼성라이온즈와 키움히어로즈의 올 시즌 첫 경기가 열렸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선발 라인업은 백정현 / 장재영.
2021시즌 14승 5패 방어율 2.63, 커리어하이 시즌을 써낸 후 기량이 떨어지고 있는 우리 팀 4선발 백정현과 1군 무대에서 검증되지 않은 유망주 상대팀 5선발 장재영. 경기 초반에 몇 점씩 주고받다 불펜 싸움으로 이어지는 쉽지 않은 경기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도 그런 게, 백정현 선수의 기록만 보자면 직전 시즌 개인 13연패와(승패는 온전히 투수의 평가 지표가 될 수 없지만 경기 내용으로도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점점 체감되는 구속 저하, 올 시즌 시범경기와 앞선 2경기 성적도 기대에 못 미쳤고 서른다섯의 나이가 돼 힘겹게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투수를 바라보며 이제는 정말 대안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대팀 투수가 제구 난조로 2.1이닝 동안 6실점을 하고 강판되는 동안 백정현은 3회까지 한 타자도 루상에 허용하지 않고 칼 같은 제구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공략하며 막아내고 있었다. 2021시즌 좀처럼 무너지지 않던 모습의 백정현의 실루엣을 보면서 오늘 경기는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TV를 켜놓고 동시에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4회, 5회까지 삼자범퇴. 최고의 피칭을 하는 백정현을 보며, 야구장의 선수와 팬들도 TV 앞의 나도 현장의 분위기가 달라진 걸 느꼈다. 이때부터는 저녁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오늘 대단한 경기를 보고 있구나 싶었고 두 손을 꼭 붙들고 6회부터 7회 역시 퍼펙트 피칭을 이어가는 백정현을 응원하고 있었다.
2007년 2차 1라운드 전체 8번으로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한 당시 대단했던 유망주 좌완투수, 이후 삼성라이온즈에서만 선수 생활을 쭉 이어가며 한국야구계에서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고 오늘 경기 직전까지 통산 54승 54패 2세이브 24홀드 방어율 4점 중반대의 기록이 말해주듯 2021년 커리어 최고의 성적을 내기 전까지 인정받지 못했다. 대기만성형 투수라는 평가 이후에도 성적이 하락하며 30대 중반의 투수는 이제 저물어가나 싶었다.
8회 1사까지 한 명의 타자도 루상에 허용하지 않았고 이후 아웃 코스의 땅볼을 놓치며 한국야구에서 한 번도 없었던 퍼펙트 피칭의 대기록은 아쉽게 날아갔다. 정말 숨 막히던 상황이었다. 이후 9회까지 등판해 2실점했지만 백정현의 말도 안 되는 피칭 덕에 경기를 6대 4로 승리할 수 있었다.
흔히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일상에서도 특출난 누군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목받지 않아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간다. 나 역시도 그런 위치에서 경기를 바라보면서 백정현이 그렇듯 나도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며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잊지 못할 하루가 지나가는 게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