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혠나날 Mar 21. 2022

내가 사기를 당하다니!

눈 떠도 코 베어 가고 웃는 얼굴에도 침은 뱉는군요!


 사기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남을 속이려드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눈떠도 코를 베어 가고, 웃는 얼굴에도 침을 뱉는다는 것은 모두 사기꾼들에게 해당하는 격언이었다. 안타깝게도 이건 내 인생에 발을 걸친 사기들을 통해 손수 옛말 틀린 것 없다는 것을 체험하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사기의 역사 1 - 사회초년생 사기

 

 21살에 PC방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수능이 끝난 직후에 단기 알바는 해보았지만, 정식으로 면접을 보고 일을 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질 무렵, 가게로 어떤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천장 공사대금으로 돈을 맡겨두었다고 했다. 내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니까 사장님과 전화를 하더니 "어어, 아 그래? 그 금고 들어보면 아래에 봉투가 있다는데?"하고 말했다. 금고를 들어보니 실제로 흰 봉투에 돈이 들어있었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봉투를 건네고선 친절하게 웃으며 "안녕히 가세요!"하고 인사했다. 실제로 며칠 전에 천장 공사를 진행했고, 금고 아래에 봉투도 있었고, 저 아저씨가 사장님과 통화도 했으니까!


 같은 타임에 일하는 H가 자리 청소를 마치고 돌아와 이야기를 했다. 싸한 기분이 들어 곧장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당시 내가 그 아저씨에게 건넸던 돈은 PC방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새벽타임과 오전타임을 정산해둔 것이었다. 내 월급이 한 달에 27만 원이었고, 그 2배 정도를 건넸으니 어린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알바에서 사기를 당하다니. 돈도 돈이지만 나는 그런 멍청한 사기꾼에게 당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고, 주변 이들을 볼 면목이 없어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처음으로 진술서도 작성해보았다.


 나는 그날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먼저 나와 같은 타임의 H는 자기도 그 시간에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으니 배상해야 하는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이런 사기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본인이 먼저 알려주지 않은 책임도 있으니 자책하지 말고, 오히려 내가 그만두어버리면 그게 더 손해가 크니까 함께 책임을 반씩 나누자고 했다. 당시 나는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으로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는데, 이렇게 말해주는 내 주위 좋은 인연들에게 느낀 고마움이 그때 그 감정보다 더 오래오래 남게 되었다.

 

(나는 그 PC방에서 2년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당시 나와 함께 알바를 했던 H와 연인이 되어 9년째 연애 중이다.)



사기의 역사 2 - 보이스피싱


 H와 내가 장거리 연애를 할 때였다. 호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H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빨간 날에 조각 모음하듯 남은 휴가를 붙여 약 3주간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들뜬 마음으로 호주에 가는 비행기에 탔다. 벌써 3번째 오르는 멜번행 비행기였다.

도착해 H의 친구들과 홈파티를 즐기다 새벽에 자리에 누웠다. 뒤늦게서야 핸드폰 카톡을 열어보니 숫자가 꽤나 많이 쌓여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문자가 있었다.


"경찰입니다. 지금 괜찮으신가요?" 나는 뭔 이상한 피싱인가 생각했다. 아래를 보니 친구들의 문자가 쌓여있었다. '뭐지?'하고 읽어 내려가던 참에 친구 한 명에게 전화가 왔다.

 "괜찮아?" 대뜸 그렇게 물었고, 나는 또 의아했다. 친구는 일단 어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라고 했다. 친구의 진지한 목소리에 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엄마는 울고 있었고, 그런 엄마를 대신해 경찰이 나의 안부를 또 물었다. 당황한 나는 "에...?"라고 대답했다.


그날은 내가 호주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모르는 해외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엄마는 나인 줄 알고 신나게 전화를 받았지만 곧 울고 있는 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엄마. 살려줘."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가 곧 나였다고 했다. 엄마는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 곧 사기꾼은 엄마를 협박했다. 돈 5천만 원을 송금하라는 말에 엄마는 지금 당장 그런 돈이 어딨느냐 물었더니 그 사기꾼은 "이 미친년아. 너 강남 살잖아!! 장난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몸안에 있는 어떤 구렁이 같은 것이 식도를 가득 채워 돌아다니는 듯한 역겨움을 느낀다. 어떤 이가 나의 부모에게 몇십 분 동안 쌍욕을 해가며 나를 볼모로 협박했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엄마 곁에는 이모가 있었고, 이모가 경찰을 불러 사태를 진정시켰다.


  소름끼치는 점은  일이 있고   후에 나와 함께 일하던 선생님   분이 캐나다 어학연수를 가게 어 내가 당한 보이스피싱에 대해 알려주었다. S쌤이 캐나다에 도착한 당일에 나와 똑같은 보이스피싱 전화가 갔다.  사연을 미리 전해들은 S쌤의 부모님조차도 딸의 목소리를 흉내  음성을 듣자마자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몇 번의 사기를 가까이 겪어보니 사기란 멍청하거나 부족해서라기보단 '홀린다'라는 말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 세계가 정당화되고 현실이 된다. 소름 끼치는 사전조사인지 어이없는 우연인지 모르지만, 타로나 사주처럼 어쩌다 나의 상황과 맞는 조건이 초침과 분침이 마주치는 순간처럼 겹치게 되면 그것을 동력으로 이 사기의 블록은 맞물려 움직이게 된다.


 사기는 어떤 사회초년생의 시작을, 어떤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어떤 가장의 버팀목을, 어떤 노부부의 오랜 꾸준함을 앗아가 버린다.

 이런 사건에 또 어떤 이들은 "왜 그런 바보 같은 사기에 넘어가? TV에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 정말 답답하다."거나 "아니 그런 똑똑한 사람이 왜 그랬대?"와 같이 속은 것이 개인의 지능이나 실수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거대한 우연과 경우의 수가 맞아떨어지는 기묘한 법칙을 이용하는 동시에 그들은 어떤 이의 가장 말랑하고 부드럽고 소중한 것들을 건드린다. 취약해질 수 밖에 없는 부분만 교묘하게 물어 노린다.

중요한 것은 사기당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속이려든 인간의 잘못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기당한 무고한 이들은 아는 인연 또는 모르는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를 수습하기에도 바쁘다. 인생사 새옹지마인데 섣부른 판단은 넣어두는 편이 좋다.



 


사기를 당하고 난 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속았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사기는 그 죄질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 천부인권의 존엄성을 지닌 인간을 작정하고 속이고 농완하는 행동은 그 모든 것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로 정당하지 못하다.

 누군가가 나를 속였고, 나는 그 사기에 낚여버린 고기였다. 피해는 물질과 마음 모두에 남는다. 이런 내가 바보같이 느껴져 괴롭다.


 그렇지만 현재를 괴롭게 하는 것은 과거의 반추와 미래의 추측으로부터 비롯된다. 자책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인생, 어쩌다 바보 같은 날쯤 있을 수 있지! 이 기회를 통해 더 배워나가려고 그런 거야."라고 말해주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의 손아귀에 가만히 있을 순 없다.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내 삶을 살아가야지.


상투적인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지만 사기에 걸리고 나면 더욱더 조심하게 된다. 같은 사기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레이더가 몇 개 더 설치된달까. 직접 실전 전투에 뛰어들어 얻어온 사기감지장치이니 아예 의미 없는 시간만은 아니라는 점으로 상처 위에 후시딘을 얇게 발라주고 싶다.


 며칠 전 한 카페 주인분께서 보이스피싱에 걸린 손님에게 대처법을 안내해드려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현명한 대처를 하신 카페 주인분도 과거에 보이스피싱 사기에 걸린 적이 있어서 유심히 보게 되신 거라고 하니 나를 포함해 한 번쯤 크고 작은 사기를 당한 모든 이들이 경험을 통해 성장해가리라고 믿는다.







 며칠 전 아빠에게서 핸드폰 액정이 왜 깨졌느냐고 전화가 왔다. 나는 입이 떡 벌어져 "아빠!!!"하고 소리쳤다. 아빠는 당황했고, 나는 그건 사기라고 여러 번을 강조했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 지겨워졌는지 알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 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남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은 자꾸만 더 진화하고 있다.


 사기는 현혹되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알아둘 경우 더욱 대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부디 오늘도 걸어가는 길이 무탈하길 바라며 스스로 느낀 사기예방 가이드를 남긴다.



<사기 예방 가이드>


1. 사기의 손아귀는 어디든 뻗칠 수 있다. 방심하지 말자.

2. 돌다리도 무조건 두드리고 건너자. 의심될 땐 확인 전화 필수!

3. 공공기관은 웬만하면 뭘 깔으라는 요청은 안 한다. 상대가 준 링크는 클릭하지 말자.

4. 게임 계정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청하는 것은 모두 사기다.

5. 가까운 이가 외국에 나간다면 항상 보이스피싱을 조심해야 한다. 도착하자마자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자. 보통 이런 전화는 유심이 개통되기 이전 첫날에 주로 발생하고, 현지에서 통화가 어려운 시간에 걸려온다.

6. 지나가다 "요즘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하고 묻는다면 결론은 결국 굿을 하라이다. 궁금해서 듣다가 시간 뺏길 필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은 시나브로 와 나를 낙엽으로 물들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