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혠나날 Jun 10. 2022

장애는 그 자체로 욕이 된다.

ep3. 밀알학교에 입학한 동생


세상에 있는 많은 욕들은 장애에서 비롯된다.

'병신'은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앉은뱅이, 벙어리, 귀머거리 등의 장애를 속되게 이르는 단어들이 숱하다. 내가 어릴 적에는 '애자'라는 욕이 유행이었는데 '장애자'에서 뒤에 두 글자를 따서 부르는 비하용어였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고, 부족함은 곧 약점이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 상처 입은 생명이 곧장 먹잇감이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초등학교에는 '밀알'이라는 생소한 욕이 하나 있었다. 상대를 '밀알'이라고 부르며 모욕하기도 하고 그저 자기들끼리 '밀알'이라 내뱉으며 낄낄거리며 하릴없이 웃기도 했다.

나에게 이 '밀알'이라는 단어는 아주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단어였는데, 그건 바로 아이들이 욕처럼 내뱉는 이 단어의 유래가 우리 동생의 학교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밀알'은 다름 아닌 우리 초등학교 근처에 있던 특수학교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3년의 대기를 걸어둔 덕분에 8살이 된 동생은 무사히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밀알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나는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일반 사립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처음 이 학교에서 '밀알'이라는 말을 들을 때 나는 굉장히 의아했다. 어리더라도 눈치라는 게 생길 때였으니, 우리 동생의 학교 이름이 안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빠르게 파악되었다. 짓궂은 아이들이 그 말을 내뱉을 때 나는 못 들은 채 할 때가 많았다. 사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먼저 '왜 동생의 학교는 그런 나쁜 말을 가지고 학교 이름을 만들었을까?' 하고 궁금했다.

밀알의 뜻은 "밀의 낟알"이었고, 그 어떤 비속어의 뜻도 지니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밀알은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한 알의 밀알이 되자'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뜻과는 상관 없이 그저 장애인들이 다닌다는 이유로 우리 초등학교에서 욕처럼 쓰이게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알고 난 뒤에도 나는 어쩐지 '밀알'이라는 단어에 부끄러움이 스리슬쩍 물들어버렸다. 아이들이 놀려대는 그 학교에 우리 동생이 다니고 있었고, 오늘 아침에도 밀알학교라고 대문짝만 하게 적힌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내게 '밀알'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밀알'이라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그들이 그 단어에 쉽게 담은 악의가 내게로 쿵쿵 내려앉았다.


욕으로 변해버린 그 단어를 듣는 것이 언짢아져 나는 누군가가 내게 '밀알'이라며 그들만의 비하의 뜻을 담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씩씩거렸다. 

내 생각이 텔레파시가 되어 한 아이의 머릿속을 울렸는지 며칠 후 한 남자아이가 내게도 그 말을 내뱉으며 시시껄렁한 시비를 걸었다. 미숙한 남자애들이 여자아이에게 말을 붙이는 유치한 방법이었다. 나는 내내 꾹꾹 눌러 담아왔던 말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야!! 너 밀알이 무슨 뜻인지나 아냐? 밀알 엄청 좋은 뜻인데 고맙다!? 그리고 내 동생 밀알학교 다니는데 그 학교 엄청 좋은 학교야!! 알지도 못하는 게."


유치한 윽박질이었지만 내 말에 그 남자애는 이내 자리를 떠버렸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그 아이와 나는 끝내 가까운 사이는 되지 못했다.

사실 그 애는 밀알이 어떤 뜻인지도 몰랐을 것이고, 어쩌면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그 말을 욕처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내 으름장에 "어쩌라고! 거기 병신들이 다니는 학교잖아!"라고 짓궂게 이야기할 못된 마음일랑 품지 못한 아이였다.


고작 10살의 아이들은 어째서 남들과는 다른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를 그 자체로 욕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그들이 정말 10살이라 몰라서 그런 것이었을까?




물레 돌아가는 것이 신기한 동생



여전히 어딘가에는 내가 들었던 '밀알'이 있을지 모른다. 나래, 정애, 자운, 동현, 다니엘, 예원, 서진과 같은 예쁜 이름의 학교들이 편견 그득한 입에서 욕처럼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특수학교가 동네에 들어선다고 하면 시위가 벌어진다.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을 꿇고 읍소해야만 사회의 단단한 벽을 통과할 수 있다. 어른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행동이 남과는 다른 아이들을 비웃고 멀리하는 사회의 기조가 '밀알'이라는 무고한 단어를 욕으로 변질시켰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내게  말을 건넸던 10 남자아이는 이해하지만,  아이가 그런 욕을 하게 만든 사회 분위기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적어도 다소 느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기피 시설로 낙인찍혀 어린아이들마저 차별에 더 가까워지지 않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는 다른 느린 그 아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보면 가까워지고, 가까우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편해질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 동생을 소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