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혠나날 Jul 19. 2022

은색의 미아방지팔찌

ep4. 빛나는 동생의 통통한 엉덩이


동생의 특기는 가출이다. 영영 출가를 할 수 없는 아이라 가출이라도 감행하는 것인진 몰라도 그게 동생의 즐거움임은 분명했다. 문제는 물리적인 시간보다 내면의 시간이 더 느린 이 아이가 집을 나설 때 갖춰야 할 기본 상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날은 친구들과 함께 실없는 농담을 하며 공원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갑자기 나타난 통통한 엉덩이에 시선이 꽂혔다. 그 아이는 문방구 창문을 우두커니 들여다보다, 내가 있는 공원으로 몸을 돌리더니 제자리에서 박수를 치며 위아래로 콩콩콩 뛰어댔다. 순간 모든 그늘이 나를 덮치며 깜깜해지더니 그 아이의 하얀 엉덩이만 밝게 빛났다. ‘설마’하는 직감이 곧장 현실이 되었다. 내가 보고 놀란 그 엉덩이의 주인공은 바로 내 동생이었다!


자폐증의 특징 중 하나는 진열되어 있거나 한 줄로 정렬되어 있는 사물을 좋아하는 것인데, 문방구 유리창 가득 기차와 미니카들이 전시되어 있는 그곳은 동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나는 부끄러워 그대로 동생이 어디론가 가버렸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에 대한 집중력과 집착이 엄청난 아이였기 때문에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벌거벗은 내 동생이라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왜 저러고 있지?'라는 의문과 함께 누구라도 내 동생을 알아볼까 겁이 났다.

그때 문방구 문이 열리며 우리 반에서 가장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고, 이내 알몸으로 창문 앞을 얼쩡대는 내 동생을 마주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내 동생에게 해코지를 할까 하는 또 다른 겁이 났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우리 동생이 다니는 특수학교 이름을 따 장난처럼 서로를 놀리는 그 아이들 앞에서 내 동생을 알은 체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건너려던 내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문방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혜인아. 저기 니 동생 아니야?" 하고 친구가 외쳤다. 이미 몇 번 우리 집에서 내 동생을 만나 함께 놀기도 한 친구들이 곧장 내 동생을 알아본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울상이 되어 버린 나와 달리 친구는 단숨에 횡단보도를 건너 문방구로 뛰어갔다.


내 앞에 선 동생은 밖에 몰래 나와 신이 났는지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친구는 입고 있던 분홍색 체크 남방을 허겁지겁 벗어 내게 건넸다. 나는 그 옷을 받아 동생의 허리에 둘러주곤 작은 고추가 보이지 않도록 셔츠 뒤쪽이 앞으로 가게 휙휙 돌렸다. 그 셔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생은 맨발에 엉덩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8살인 겉모습과 달리 동생의 정신연령은 2~3살이었기 때문에 부끄럽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집을 탈출할 기회만 생기면 아무 거리낌 없이 다 벗고도 쉽게 길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가 하던 것처럼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 동생을 신겼다. 신발을 신기자, 친구들은 동생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마주 잡았다. '너도 어서!'라는 신호에 나도 자연스레 함께 손을 잡았다. 엉덩이가 보이지 않도록 우리는 동생을 둥글게 감쌌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원을 유지하기 위해 뒤뚱거렸지만 운동회날 2인 3각을 하는 것 마냥 재미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어쩐지 웃음이 났다.


신이 난 동생이 또 방방 위아래로 뛰어 허리춤에 묶어둔 셔츠가 땅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옷을 꼭 묶어주고선 다시 또 웃어대었다. 나는 그만 울고 싶었던 순간을 까맣게 잊고선 아슬아슬한 게임이라도 하듯 손을 함께 잡아 둥그렇게 재빈이를 감싸고 우리 집으로 걸음을 이끌었다.







그날 그 순간 함께 내 손을 잡아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동생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날 내 친구들이 손을 뻗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랫동안 내 동생을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동생을 가린다 해도 동생이 발개벗고 있었던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다 감출 수도 없었지만 함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동생을 지켜주려는 마음 덕분에 나는 그날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때 그 엉덩이를 드러낸 꼬마 아이는 이제 29살이 되어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알아 화장실에 갈 때는 문을 꼭 걸어 잠그지만, 기회가 된다면 동생은 언제든 집을 나설 것이다. 그래서 재빈이의 팔목에는 이름과 보호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은색의 미아방지팔찌가 항상 걸려있다.





아이의 키가 커갈수록 도망가는 반경은 점점 더 넓어졌고, 이제는 동생이 옷을 정상적으로 입고 도망을 가면 더 초조한 지경에 이르렀다.


동생이 탈출일대기를 써내려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동생의 손을 잡았고, 그의 미아방지팔찌를 보고 애타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 한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장애인이 커가는 데에도 온 동네의 온정이 닿았다. 자폐인의 시계는 좀처럼 흐르지 않으니 이 아이에게는 평생 온 동네의 마음이 닿아야 한다. 그래서 동생 손목에 빛나는 은색 미아방지 팔찌는 동생을 지켜주는 희망이고, 가족들에게로 이어주는 붉은 실이다.


어쩌면 오늘도 어디선가 은색의 팔찌를 빛내며 떠도는 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부디  이가 외로운  위를 오래 헤매지 않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있길  마음으로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애는 그 자체로 욕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