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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y 05. 2023

[한자썰84] 夢, 뇌신경의 전략

꿈은 대부분 시각적이다.

夢(꿈 몽) : 艹(초두머리 초)+罒(그물망 망)+冖(덮을 멱)+夕(저녁 석)


갑골문 夢(꿈 몽)은, 침상(丬(=爿, 床)), 눈썹(眉), 그리고 사람(人)이다. 눈을 감으면 눈을 대신해서 눈썹(眉)이 시선을 끈다. 그러므로, 갑골문 夢 우상부에 눈썹은 감긴 눈이고, 거기에 침상(床)까지 옆에다 두었으니, 영락없이 갑골문 夢은 '수면 상태'를 그렸다.( 【 표 】 1 )


수면 중에 보이는 환상이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을 꾸기 위한 필요조건이 '편안히 잠든 상태'이다. 그런 상태 자체를 꿈이라 가리킨 것이 夢이다. 주목할 부분은 과장스러우리만치 크고 선명하게 그려 넣은 눈썹과 눈이다.


【 표 】 夢의 자형변천

꿈꾸는 동안에는 안구가 바삐 움직인다. 그래서, 꿈을 꾸는 수면구간을 특별히 REM(Rapid Eye Movement)수면이라 부른다. 그 안구 요동의 영향으로 눈썹과 눈꺼풀이 함께 흔들린다. 갑골시대 선인들은 꿈과 눈썹의 이런 연관성을 이미 알아차렸음에 틀림이 없다. 하필이면 잠든 사람의 눈썹을 생뚱맞게 포착해서 꿈과 연결시켜 놓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갑골문 夢의 침상(丬(=爿, 床))은 일찌감치 전국고문에서 冖(덮을 멱)으로 바뀌고, 夕(저녁 석)이 새로 등장한다. 침상에다 밤까지 보태어서 잠과 꿈의 배경을 보다 구체화시킨 것이다. 이후 변천에서 눈썹이 그 모양을 닮은 艹(풀 초)가 되었을 뿐, 전국고문 夢의 자형구조는 해서에까지 줄곧 이어진다.( 【 표 】 2 )


冖(덮을 멱)이 丬(=爿, 床)의 간화라는 것이 보통의 설명이지만, 형태와 의미가 너무 달라서 다소 무리가 따른다. 모양의 구조적 차이는 물론 방향의 종횡이 바뀌어 완전히 다를 뿐만이 아니라,  冖이 원래 무언가를 덮어서 가리는 보자기였으니 침상과는 아무런 연관점이 없다. 그런 설명보다는, 밤(夕)을 격리(冖)시켜서 어둠에 빠지지 않게 하여 수면 중에도 시각(視覺)을 계속해서 작동하게 만드는 순간, 즉 그래서 꿈! 이것이 보다 글자의 서사성에 보다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간체 梦은 夢의 그 모든 전승을 버렸다. 대략의 실루엣만 흉내낸 글자일 뿐이다. 고작 숲(林)을 찾아든 밤(夕)이라니...! ㅠㅠ


사족, 뇌신경은 어떤 종류의 정보가 입력되는 시간과 강도에 따라 그 구조와 기능이 스스로 변화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해당 정보의 처리 효율을 자율적으로 높여 나간다. 이를 뇌신경의 가소성(可塑性)이라고 말한다. 塑(흙빚을 소) 자가 무형의 흙을 빚어서 기왕에 없던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뇌신경의 가소성이란 뇌신경이 새로운 구조와 기능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속성을 의미이다.

뇌신경은 입력되는 정보에 적응해서 그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스스로 강화한다. 따라서 보다 오랜 시간 그리고 보다 강하게 입력되는 종류의 정보에 적응한다. 예를 들어서, 시각정보가 뇌에 오랜 시간 강하게 입력되면 시각정보를 보다 많이 저장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뇌신경 스스로가 물리,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반대로 시각정보의 입력이 약해지면 나머지 감각들인 청각, 촉각, 후각 또는 미각들을 처리하는 능력이 뇌신경 내에서 더 발달하게 된다. 시각장애인이 훨씬 예민한 청각과 촉각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 가소성 때문이다. 그 능력은 단순히 훈련을 통해서 시각기관이 숙달되어진 결과가 아니라 뇌신경의 구조와 기능이 시각 중심으로 강화된 결과이다.


꿈은 뇌신경의 이 가소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수면 중에 그 작용을 멈추는 유일한 감각이 시각이다.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은 수면 중에도 여전히 열려 있다. 즉, 외부 자극에 대해서 계속해서 반응을 하면서 유입되는 신호가 뇌로 계속해서 보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직 시각만이 그 활동을 중단한다. 눈 뜬 채 잠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뇌부위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뇌신경의 가소성은 어떤 감각 처리의 강화가 나머지 감각 처리의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 의해서 수면 중에 사람은 다른 감각들과는 다르게 시각을 처리하는 뇌기능이 약화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꿈은 수면 중에 시각의 불리함을 보상하는 작용을 한다. 꿈속에서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촉감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처럼 예외적인 경우에는 다른 감각의 꿈을 꾸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특수한 경우이다. 꿈의 내용은 대부분 시각적이다. 곰곰이 되짚어 보시라! 당신의 꿈은 대부분 시각적이다.


목불인견(目不忍見)! 보고 싶은 것이 별로 없어져 버린 지루하고 답답한 세상이다. 비록 그런 세상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래도 살아 봐야 하지 않겠니!' 하시면서, 인간들을 기만할 목적으로 신이 마련해 놓은 꼼수가 꿈인지도 모르겠다. 哈哈。


주) 대문사진은 영화 메트릭스(Matrix)의 한 장면이다.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통제하고 이용하기 위해서 그 뇌 속에 심어 놓은 프로그램이 메트릭스다. 꿈은 기계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우는 저항군의 활동일까, 아니면 독립한 인간을 다시 정복할 기회를 노리는 AI의 전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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