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귀여운 부분
귀여움을 이야기하려면 남편을 처음 만난 때로 돌아가야 한다. 지긋지긋한 연애를 끝내고 싶어 능력 좋은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래 결혼은 능력이지. 나이가 들수록 상대의 능력을 따지는 속물스런 속내가 드러났다. 그 남자는 에너지 공기업에 다닌다고 했다. 오케이 합격. 결혼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만난 남자의 첫인상은 못생겼었다. 남자의 어릴 적 별명이 돼지라고 하는데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외모였다. 나는 그런 남자에게서도 귀여운 부분을 보았다. 인도영화를 좋아한다는 첫인상부터 오통통하고 보드라운 손이 모두 귀여웠다. 나는 깨달았다. 난 귀여운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겠구나. 같이 살아 지낸 지 어언 2년이 지났다. 아직도 귀엽다. 오히려 더 귀엽다. 어디가 귀여운지 한번 쓰고 싶었다(자랑은 아니다).
1. 남편의 다이어트
남편은 소개팅 때보다 딱 15kg이 불었다. 엄밀히 말하면 찐 것이 아니라 원래 몸무게로 돌아간 것이다. 남편은 몸이 무거우니 골반도 아프고 허벅지가 쓸려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1년 365일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매일 회사에서 사 온 도시락을 저녁으로 먹었다. 풀떼기뿐인 샐러드 도시락. 그것을 씹고 있는 그는 꼭 여물을 씹는 소 같았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의 움직임은 건조했다. 대충 맛없게 먹는다는 소리다.
"샐러드 먹기 싫어"
남편이 미운 4살처럼 칭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입은 양상추를 집어삼키며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생기가 없었다. 나는 식욕 떨어지는 먹방을 보고 있었다. 나의 침묵을 깨고 남편이 이어서 말했다.
"근데 햄버거 냄새나"
양상추에게서 햄버거 냄새를 발굴하다니 피식 웃음이 난다.
2. 무한 알람
나는 남편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난다. 적당한 온도에 포근한 이불, 적당히 시린 코. 이 세 가지 조합은 나를 한 번에 못 일어나게 한다. 첫 번째 알람을 끄고 10분 뒤 또 알람이 울린다. 5분 뒤에도 또 10분 뒤에도. 그렇게 계속 알람을 끄고 자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늦게 일어나 버렸다. 남편은 아침마다 알람과의 전쟁을 치르는 나를 몰랐다. 그렇다. 남편은 잠 귀가 어둡다. 저녁을 먹다가 남편이 말한다.
"자기 알람 한 번에 듣고 일어나데. 대단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옆에서 그렇게 알람을 울렸는데 마지막 알람소리만 남편에게 들렸나 보다. 나는 어이가 없어 대답한다.
"그거 열 번째 울린 거였어."
3. 남편의 다이어트 2탄
남편은 보이는 것을 다 먹는 습관이 있다. 한 번에 많이 먹지는 않는다. 한 날은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소리 없이 먹어버리고 빈통만 덩그러니 식탁 위에 올려두었고, 코스트코에서 할인해서 샀다며 단백질바를 3박스나 사와 식전 식후 빠짐없이 먹었고, 아몬드 우유를 한 박스 사와 틈이 날 때마다 마시고 우유팩 줄을 세웠다. 내가 먹으려고 사 왔던 것들이 서서히 티도 안 나게 그의 뱃속에 들어가 앉으니 나는 방어를 해야 했다. 나는 나의 간식들을 눈에 띄지 않게 숨기게 되었다. 시어머니도 가끔 그러신다고 한다.
삼겹살에 곁들일 미나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골라 담아 가슴팍에 안고 계산대로 향하다가 과자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지 않으려 했던 것도 사게 만드는 마트의 상술에 꼬였던 것이다. 그렇게 샤브레 한 박스를 샀다. 그리 좋아하는 과자는 아니지만 버터향이 달달하게 나고 딱딱하면서도 바삭한 그 과자에 손이 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어본다.
"샤브레 몇 개 먹을 거야?"
요즘 다이어트를 결심한 남편은 하나만 먹겠다고 말한다. 나는 샤브레 하나를 통 크게 남편에게 건네고 과자 박스를 들고 화장대 앞으로 갔다. 숨기려고 말이다. 통째로 화장대 아래 서랍에 넣었다가, ' 아 이거는 바로 걸리겠는데 ' 싶어 낱개로 포장된 과자 7개를 다이슨 파우치 안에 3개, 샤넬 파우치 안에 1개, 서랍 안에 3개 나눠 숨겼다.
그러고 속이 텅 빈 상자를 소녀처럼, 책을 안듯이, 속이 텅 빈 게 티 나지 않게 팔로 감싸 안고 거실로 나왔다. 씩 웃으면서! 그 빈 상자를 조용히 가스레인지 아래에 있는 오븐기에 숨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막 웃기 시작했다. 여태 만나면서 본 웃음 중에서도 느낌이 좀 다른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왜 웃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간신히 웃음을 가라앉힌 남편이 또 막 웃으면서 소파로 다가왔다.
" 과자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상자가 ㅎㅎㅎㅎ 없네? 일부러 보이게 넣어놨지? 저기 저 빈 통을 넣어놓은 이유가 뭐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눈이 완전 초승달이 된 남편이 어이없음과 웃김과 배신감을 다 섞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면서 나보고 성악설이라며 씩 웃더니 과자를 숨기는 척 반투명 오븐기에 넣어놨다며 진짜 과자를 찾아 나섰다. 빈 상자를 찾고 웃던 남편의 표정은 잊을 수 없이 좋았다. 내가 본 최고의 얼굴이다. 놀리는 맛이 있다.
지난 추석에 시댁에서 남편의 어릴 적 사진을 보았다. 어려서부터 항상 인기가 많았다던데 그 이유가 느껴졌다. 나는 남편의 귀여운 부분이 계속 보인다. 내가 산후우울증이 걸리면 안 보이게 바닥에 기어 다녀야겠다는 말도 귀엽고, 뒤뚱뒤뚱 걷는 뒷모습까지 귀엽다. 콩깍지의 끝은 귀여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