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려 세계 속으로> 시리즈는, 국제협상 대표를 맡아 인천공항 자동문이 닳도록 세계 곳곳을 누비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관광지와 여행 정보보다는, 숙소와 협상장을 오가며 생긴 일화와 인상깊은 장면을 좁고 깊게 묘사합니다.
잔뜩 흐린 하늘, 끝없이 팽창한 시가지 사이에 솟은 사찰과 마천루, 더운 공기에 실려 콧속을 찌르는 묘한-온갖 향신료와 매연과 습기가 뒤섞인-냄새.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방콕 시내로 향하던 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친구들의 여행기와 TV 예능으로만 접했던 동남아시아는 언제나 흐린 뒤 맑고, 어딜 가나 라탄 재질의 바구니에 망고와 코코넛이 넘치도록 쌓여 있을 줄만 알았다. 이 또한 오리엔탈리즘의 또 다른 얼굴이었을까. 어쨌든 생애 처음으로 방문한 동남아시아는 나의 상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 중 단연 최고는 살인적인 습도와 더위였다. 민소매와 반바지로 조금이나마 더위를 비껴가는 현지인과 관광객들 사이에서, 양복을 입고 배낭을 멘 채 북적이는 도심을 가로질러 회의장까지 걸어다녀야 했다. 마치 층층이 쌓아 올린 채반에 담겨 푹 삶은 딤섬처럼, 흠뻑 젖은 셔츠와 한 몸이 되어 걸어다니는 느낌이란.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새로움이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참 알 길이 없어서, 그렇게나 싫어하는 찜통더위에 열흘 넘게 시달렸어도 순간순간 보았던 도시의 풍경 몇 자락이 뇌리에 깊게 남아,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무한한 애정과 향수에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다녀온 지 약 2년이 지난 지금 팟 타이, 싱하 맥주, 타이 마사지나 유명한 관광지 풍경은 슬슬 잊혀 가지만, 지극히 평범한 세 개의 장면들이 내 머릿속 세계지도의 정가운데쯤을 장식하고 있다.
Scene#1. 수쿰빗 로드와 MRT
우기(雨期)의 방콕은 참으로 유난스러운 도시였다. 요란하게 쏟아지는 소나기와 이를 피해 회랑 밑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행인들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곡예를 하는 오토바이의 무질서한 행렬과, 이 모든 시각적 자극에 무뎌진 듯 간이의자에 앉아 축구 경기를 보는 노점상인들까지, 혼란이 하나의 질서로 자리잡을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수쿰빗 로드는 그런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모든 사람이 몰려들고 모든 사람이 떠나는 곳.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와 같은 혼란. 그 모든 혼란을 반으로 가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MRT(지상전철) 선로였다. 무한대(∞)도 2로 나눌 수 있듯이, 이편의 혼란과 저편의 혼란이 섞이는 것을 MRT 선로가 떡하니 서서 막고 있었다. 선로와 육교를 겸하는 이 커다란 콘크리트 교각은 동남아시아의 살인적인 햇볕과 살벌하게 내리는 스콜을 피할 자리를 만들어 주지만, 한편으로는 도시 전체에 커다란 회색을 드리우는 콘크리트 흉물로 보였다.
시내의 유명한 식당에서 동료들을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수쿰빗 로드를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온갖 사람들을 관찰했다. 관찰이라기보다는 호기심 충족에 가까웠다. 맨발로 벽에 기대 앉은 걸인들은 깡통을 흔들거나 적선을 구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이들을 마주 쳐다볼 뿐이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체념의 복음을 전파하는 듯이, 누군가의 발길에 차여도 인생은 더 이상 슬퍼지지 않는다는 듯이. 진한 화장과 반짝이는 장신구로 치장한 트랜스젠더들은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를 남기며 전철역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짓궂은 궁금증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거부한 생물학적 성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자니, 화려한 치장과 맨살이 드러나는 옷 대신 튀어나온 목젖과 무릎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짙은 색의 가운을 입고 손님을 부르는 마사지사들과, 작은 오토바이 위에 위태로울 정도로 큰 짐을 실은 배달원들까지.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에는 아마 게슴츠레한 우월감이 살짝 묻어 있었을 것이다.
명품 쇼핑몰 안에 있는 비싼 식당에서 거한 저녁을 먹고, 취기에 온몸이 벌게진 채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두 개의 빗방울이 경고하듯이 머리에 떨어졌고, 가까운 건물로 피할 새도 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빵조각 하나에 모여드는 공원의 비둘기들처럼, 거리를 지나던 이들 모두가 전철 선로를 떠받치는 커다란 기둥 아래 한 자락의 공간에 모여들었다. 아무리 권세를 부리는 인간이라도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만들어버리는 폭우 앞에서, 나는 몇 시간 전 깔보던 이들과 함께 비를 피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포도주의 취기와 폐 속을 가득 채우는 습기 속에서,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맞댄 채 가만히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소리를 듣는다는 것, 그것은 감히 말하자면 영성의 체험이었다. 거대한 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젖은 깃털을 말리는 비둘기 한 마리에 불과했다. 수쿰빗 로드의 바쁜 발길들과 복작대는 생활들이 전부 잠시 멈춘 그 시간에, 불현듯 소설 <사평역>이 떠올랐다. 간이역에서 누군가가 던진 한숨 섞인 질문, "산다는 게 대체 뭣이간디". 나와 함께 비를 긋던 이들은 어떤 대답을 떠올렸을까?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 -
이런 감정과 생각들은 영성의 체험이라기보다 취기가 불러온 감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대학병원이 아닌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부처는 스터디 카페가 아닌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듯이. 콘크리트 교각 아래에서 영혼이 동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어릴 적부터 콘크리트 구조물은 내게 거대한 흉물로만 여겨졌었다. 콘크리트 특유의 균열과 습기와 거친 표면을 볼 때마다 언제 내 위에서 붕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고, 그 딱딱함과 육중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영 좋지 않았던 탓이다. 수많은 인파와 빽빽한 집들과 고층 호텔들을 반으로 가르는 MRT 콘크리트 선로 역시 처음에는 마치 도시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지막지한 말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 기다란 콘크리트 관(棺) 같은 선로는 사실 방콕이라는 화려한 식물 속을 끊임없이 지나다니며, 그 식물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다양한 사람을 날라 주는 관(管)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Scene #2. 에라완 사원
테러가 발생했던 장소는 참으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장소가 일상의 공간이라면 당연히 공포감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것이다. 일상의 공간이 아니더라도, 가장 상서로운 추억이 깃든 거리와 도시가 가장 끔찍한 현대의 폭력에 찢겨나가 버렸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또 어떠한가.
나에게는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가 그랬다.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거장의 애정 어린 손길과 카탈로니안들의 자부심과 정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담장과 울타리가 없이 활짝 열린 거리. 아이러니하게도 그 열린 거리는 가장 잔인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가장 사랑받아 마땅한 도시가 반년만에 네 개의 바퀴 아래 짓밟힌 채 슬픔과 공포에 뒤덮인 모습을 보며,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말았던 그때의 경험이 생생하다.
방콕 사람들, 그리고 태국인들의 마음속 람블라스 거리는 어디일까? 고급 상점이 즐비한 라짜쁘라송 거리 한복판에서, 거대한 쇼핑몰들을 잇는 공중 통로를 지나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어느 곳인가를 향해 잠시 고개를 숙인다. 남자도 여자도, 부자도 빈자도 예외는 없다.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건물들 사이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성역(聖域), 그곳은 바로 에라완 사원이었다.
사실 사원이라기에는 많이 소박한 곳이다.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은 파고다 한 채와 불단(佛壇)이 전부이다. 미얀마 황금사원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웅장함에 빗대려면, 왓 포(Wat Po)나 왓 아룬(Wat Arun)에 대해 쓰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도심 한가운데, 고층건물 사이 가장 낮은 한 자락의 땅을 향해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풍경이 어디 흔하던가. 신자들이 바치는 노란 꽃의 물결은 끊일 줄을 몰랐고, 우중충한 하늘 아래 파고다의 지붕은 금빛으로 빛났고, 무용수들은 느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소비와 소유를 한껏 부추기는 도심 속 무념무상의 공간. 모두가 붓다처럼 꽃을 든 채 미소를 띠며 서 있는, 하나의 커다란 보리수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곳에서 5년 전에 폭탄이 터졌다. 눈을 감고 소원을 빌던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폭발의 화염을 보지도 못한 채 끔찍한 테러의 희생자가 되었다.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평화로워 보이는 공간 바로 바깥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인간의 나안(裸眼)으로 불자와 마군이를 구별할 수만 있다면, 그 참혹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2015년 8월 17일로부터 일주일 전, 하루 전, 어쩌면 5분 전까지 에라완 사원을 바라보며 크고작은 소원을 빌던 사람들은 아마 이와 같은 안타까움을 공유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테러의 공포와 혼란에 지지 않으려는 듯, 다시금 평화로이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 곳에서 그 어떤 설법(說法)보다도 큰 교훈을 얻어 간다.
Scene#3. 수완나품 국제공항
방콕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자정 즈음에 출발한다. 머무르는 열흘 동안 교통체증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여유로운 저녁식사는 포기하고 일찌감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동에 들어서자마자, 실물 크기의 거대한 조각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면세 쇼핑을 하러 바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가만히 서서 영어 안내판을 읽었다. 한 쪽은 선, 다른 쪽은 악인 것 같기는 한데,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사이에 두고 머리와 꼬리를 당기고 있는 생경한 모습. 직관적으로 보자면 서로 그 뱀이든, 다른 보물이든,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안내판에 쓰여 있는 내용은 사뭇 달랐다.
<Churning of the Milk Sea>. 젖으로 이루어진 바다를 젓고 있는 모습이란다. 그러니까 다시금 이 세상에 생명수(암리타)가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 천사(데바)와 악마(아수라)들이 힘을 합쳤다는 이야기다. 어떤 식으로? 세계의 축이 되는 만다라 산을 뽑아서 막대기로 썼다고 한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뱀인 '나가(naga)'족이 제 몸으로 산 허리를 감아 놓으면, 양쪽에서 머리와 꼬리를 잡아당겨서 산을 회전시켰다는 거다. 조각상은커녕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이 광경을 생각해낸 힌두교도들의 신화적 상상력이란.
그런데 이 감동적이고 훈훈한 장면을 백과사전으로 검색해 보니, 이 장면 전후에 참 사연이 많다. 악마들이 머리 쪽을 잡고 있는 이유는, 뱀의 입에서 나오는 독을 맞기 싫어서 신들이 꼬리 쪽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고된 노동의 대가로 신들은 암리타를 악마들과 나누어 갖기로 했지만, 약속을 어기고 자기들끼리 독차지했단다. 이쯤 되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어른이 되고 나니 절대악으로만 보이던 만화영화 속 악당들이 둘도 없이 불쌍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인 걸까?
아무튼, 상상력이 뛰어나다 못해 '악마를 등쳐먹는 천사'의 이미지까지 창조한 것은 참으로 인상깊었다. 그런 뒷이야기를 알고 나니, 열심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조각상의 얼굴에 방콕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걸어서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300밧(12,000원)이나 받고 빙빙 돌아간 택시기사의 얼굴, 주문을 잘못 받아 혼자 온 나에게 세 개의 요리를 갖다 주고는, 고스란히 세 접시 값을 받아간 식당 주인(맛있게 다 먹어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왜인지 그 얼굴들이 밉지는 않았다. 나 역시 점잖은 얼굴을 하고서는 응당 남에게 돌아가야 할 것들을 슬쩍 가로챈 적이 여러 번이기에. 그들과 나는, 데바와 아수라 중 어느 쪽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부귀영화를 누려 보겠다고 양편에서 쉼 없이 뱀의 머리와 꼬리를 잡아당기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이기에.
방콕의 정식 명칭은 '끄룽 텝 마하나콘'이고, 이는 '천사의 도시'를 뜻한다. 완전무결한 신성(神性)을 자랑하는 천사라면 중세 유럽의 고딕 양식 도시가 어울리겠으나, 인간 세계를 관장한다는 따분하고 고결한 사명을 벗어나 세상의 좋은 것들을 욕심내고 가끔 거짓말도 하는 천사에게 바로 이 곳 방콕보다 어울리는 도시는 없을 것이다. 전자에 관한 이야기는 수많은 대성당들을 다니며 익숙해져 그런지, '지극히 인간적인' 천사의 도시에서 보낸 열흘은 내 머릿속에 진한 잔향을 남겼다.
자정 넘어 이륙한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던 수많은 불빛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찜통 같은 열기와 흐린 하늘빛과 그 아래를 바삐 지나가는 수많은 인파와 툭툭의 행렬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열흘 동안 언제나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한 쪽 얼굴만 보여주던 도시. 다른 한 쪽이 궁금해서 떠나가는 순간에 다음 여행을 기대하게 만드는 도시. 이것이 세 개의 장면으로 남은 내 마음 속의 방콕이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