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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n Jan 03. 2022

등 떠밀려 세계 속으로 - 우루과이 편(上)

나 홀로 36시간, 지구 반 바퀴 비행기(記)

   우루과이 출장은 한 편의 거대한 로드 무비였다. 서울과 우루과이를 왕복하는 데 걸린 사흘, 그리고 우루과이에 머무르는 사흘 동안 쉼 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계절도 정반대, 낮과 밤도 정반대, 하다못해 변기 물이 내려가는 방향도 정반대인 남미의 수도는, 의외로 친숙하고 꽤 많이 정겨운 곳이었다.

    유난히 더웠던 2018년 늦여름이었다. 저번 글의 무대였던 방콕 출장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넘었건만 더위는 가실 줄을 몰랐다. 유일한 위안거리라면 8시가 다 되어 퇴근해도 해가 아직 떠 있다는 것. 통상교섭본부 L 사무관이 메일 한 통을 전달해 주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는 아니고, 남미에서 날아온 이메일이었다. 한국-메르코수르(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FTA 협상에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사전 조사와 내부 검토를 거쳐 결재를 받고, 우루과이로 가는 항공권을 예매하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2018년의 나는 의욕에 차 있었고, 두어 번의 협상을 거치다 보니 말문도 트였기 때문에 협상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었다. 두 번의 환승과 편도 36시간의 비행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그러나 가기로 결정된 이상 안 갈 수는 없었다. 이렇게 또 한 번, 등 떠밀려 세계 속으로 나가게 되었다.


인천공항(T+0)


    추석을 2주 앞둔 월요일이었다. 시대는 달라졌고 이제는 추석 전에 경부고속도로보다 공항이 더 붐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이륙 한 시간 반 전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천의 단체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부끼는 깃발과 현수막의 행렬은 예루살렘으로 출발하는 십자군처럼 경건하고 웅장하기까지 했지만, 30분 안에 어떻게든 체크인과 보안검색을 모두 마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관용여권을 든 주제에 시민들의 소중한 여행을 시작부터 새치기로 망칠 수는 없었다. 이젠 진짜 틀렸다고 생각할 때쯤 내 차례가 돌아왔다.

"손님, 비행기가 만석이네요."

    너무 늦게 온 나를 나무라는 줄로만 알았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읍소'를 할 요량으로, 난감한 한숨을 쉬며 시동을 걸던 참이었다.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소문으로만 듣던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체크인한 자에게 하늘이 점지해 주는 오버부킹 업그레이드. 급한 와중에도 새치기를 하지 않은 덕분에 받은 '양심 냉장고'였을까? 다가올 불행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항상 지나쳐 가기만 하던 비즈니스 클래스에 처음으로 엉덩이를 붙였다. 출장을 갈 때는 수트 두 벌을 캐리어에 넣고 나머지는 강도에게 홀딱 빼앗겨도 되는 옷만 입고 다녔기 때문에, 한껏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곳의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승무원들은 내 49,900원짜리 카디건을 '외투'라고 불러주며, 손수 받아 걸어주었다.

    좌석은 180도로 펴졌고, 승무원들은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나는 처음 타 본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눈을 굴리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알루미늄 용기가 아닌 접시에 담겨 나오는 식사는 물론,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는 와인과 줄 설 필요가 없는 화장실까지. 비즈니스 클래스는 왜 그렇게 비싼 건지, 해외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궁금해했었다. 장거리 이동을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불편감. 그 불편을 해소해 주는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의 대가였다. 평소에 비싼 상품이나 서비스를 볼 때마다 '그 돈이면 뜨끈한 국밥 00그릇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사마시겠다'는 실없는 농담을 자주 하는 편이고, 가끔 사치를 부려도 '한 번 경험해 봤으면 됐다'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비즈니스 클래스에서의 13시간은 '열심히 벌어서 또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국제공항(T+13)


     착륙 안내 방송이 나오며 좌석벨트 등이 켜졌다. 하늘에서 누리던 호사가 끝나고 땅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유럽의 서쪽 끝에서도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멈추자 함께 탄 여행객들은 밤이 오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도시로 나갈 생각에 입국 수속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을 즐거운 경험과 그들이 갖고 있는 설렘을 부러워하며, 환승 게이트를 향해 느린 걸음을 옮겼다.

 공항 면세 구역은 아직 환했다. 지난 여행에서 큰길을 지날 때마다 마주쳤던 익숙한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남자들이 옷 잘 입기로 소문난 나라답게 마시모 두띠(Massimo Dutti) 매장도 있었다. 마드리드에서든, 세비야에서든, 바르셀로나에서든, 마시모 두띠 매장에서는 항상 오렌지 같으면서도 쌉쌀한 좋은 향기가 났다. 1월 세일 기간을 맞아 유리창에 덕지덕지 REBAJAS(할인), 혹은 카탈루냐어로 REBAIXAS라 적힌 종이도 붙어 있었다. 어떤 곳은 도떼기시장처럼 매대 여기저기에 입어보고 만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따뜻한 전구색과 좋은 향기만큼은 어딜 가나 같았다.

 그런 포근한 기억을 안은 채 반가움에 이끌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만 빼고 모든 게 달랐다. 새하얀 조명과 철제 진열대 몇 개가 놓인 매장은 그야말로 무색무취였다. 1월에는 모든 가격표에 할인된 가격표가 덧붙여져 있어 원래 가격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여기 매장은 차가운 정찰제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예전에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길에서 마주쳤을 때, 반갑게 인사했지만 정작 상대방은 떨떠름하게 나를 바라보는 듯한 익숙하고 화끈거리는 느낌. 일 년 반 전의 여행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환승 게이트 앞에서 지난 여행의 흔적을 되짚어보았다. 나흘밖에 머무르지 않았으면서 바르셀로나가 어떤 도시인지를 묘사하기는 조금 부끄럽다. 그러나 내게 바르셀로나는,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거인이 위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며 조각한 듯한 아름다운 외형 속에 카탈루냐 사람들의 열정과 자부심이 가득 채워진, 예술작품 그 자체이면서 무수한 삶이 피고 지는 정원이었다.

사진을 넘길 때마다 그리운 기억들이 떠올라 머리털이 곤두섰다. 없던 신심도 생기게 만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외벽과, 까사 바뜨요 속 온갖 기호와 신화와 영감을 담은 가구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휙휙 스쳐갔다. 육지에서 바다까지 이어진 람블라스 거리를 걸으며, 어쩌면 이곳에 지상의 모든 풍요로움이 담겨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지난 여행을 돌이켜볼 때, 눈으로 본 풍경만 떠오르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감정까지 떠오르는 도시도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던 순간에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생생히 떠오른다.

 승 게이트 앞에 선 나의 운명은 그래서 더 얄궂게 느껴졌다.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처럼, 꿈꾸던 도시를 코앞에 두고 공항에 발이 묶였다. 비행기가 지연된다면 잠깐이라도 스탑오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그 순간, 마드리드행 탑승이 시작되었다. 차를 고려하더도 하루 두 번의 행운을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었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T+17)


 다시 한 번 하늘에서 마드리드의 밤을 내려다보았다.

(위) 2017년 1월 6일 오후 7시 30분, (아래) 2018년 9월 10일 오후 9시 30분

  2017년 1월 6일 오후 7시 30분, 평생 잊지 못할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을 바로 여기 마드리드에서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613일하고도 두 시간이 걸려  돌아왔지만, 두 시간 후에는 또다시 떠나야 할 운명이었다.

613일마다 마드리드에 갈 수 있다면, 지금쯤 설레는 마음으로 세 번째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마드리드와 나 사이의 공전 주기는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다. 그리운 무언가와의 인력(引力)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이렇게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던가.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두 도시를 반나절만에 지나쳐가야 한다는 사실은, 참기 힘든 분리불안을 몰고 왔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동양인이 꼭 한 명쯤 있었는데, 이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장에서는 나만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찰나의 순간, 불길한 느낌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치 동화 속에서 요정이나 산신령이 하는 경고처럼, 인천공항 체크인 카운터 직원은 기쁜 표정으로 돌아서는 나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에어 유로파는 수하물 분실이 자주 일어나니까, 마드리드에서 꼭 수하물이 실렸는지 확인하세요."

 저 멀리 보이는 수하물 창구로 가서, 영수증을 보여주며 내 짐이 잘 실렸느냐고 물었다. 꽤 열심히 딴짓을 하고 있던 직원은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듯이, 당연히 잘 실렸으니 걱정 말라고 답했다. 비행기 안에 직접 들어가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 못 미더운 한 마디에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환승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마지막 여정인 몬테비데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연식이 족히 40년은 넘어 보이는 협동체 항공기였는데, 좌석은 3-4-3열로 배치되어 있었고 모니터에는 라디오, 음악, 게임(체스) 딱 세 개의 아이콘이 표시되었다. 모니터를 눌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옆 자리를 훔쳐보니, 터치스크린이 아닌 버튼식이었다. 오히려 신선한 경험이었지만, 이 시점에서는 비행기 내 시설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륙하자마자 시차가 두 눈꺼풀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착륙 즈음에야 겨우 눈을 떴다. 생애 처음으로 대서양을 건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36시간의 지난한 여정은 남미 대륙에서 드디어 끝이 났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국제공항(T+36)

 드디어 어딘가에 발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입국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수하물이 하나둘 사라지고, 마침내는 다른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의 수하물이 쏟아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누구 것인지도 모를 수상쩍은 천 가방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카디건, 반팔 티셔츠, 헐렁한 린넨 바지와 가죽 샌들 차림을 한 채, 빈 손으로 늦겨울 남미에 던져졌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차림을 한 채로 관광지가 아니라 협상장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등 떠밀려 세계 속으로> 시리즈는, 국제협상 대표를 맡아 인천공항 자동문이 닳도록 세계 곳곳을 누비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관광지와 여행 정보보다는, 숙소와 협상장을 오가며 생긴 일화와 인상깊은 장면을 좁고 깊게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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