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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노운즈 Feb 21. 2022

[사춘기아들공부]
오늘도 공부를 해야 돼?

주말에 아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큰 아들은 운동선수입니다. 올해 중3이 되는데, 고입과 진로 결정에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닌 평범한 운동선수에겐 매 시합과 그 결과가 이 길을 계속 갈 것 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기로가 되는데요. 저희 아들도 이런 삶을 3년째 살아왔습니다. 학교와 코치님은 매번 아이의 경기력을 향상하고 좋은 결과를 맺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집에서도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격려하려고 아슬아슬한 눈치게임을 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저희 아이는 늘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못 하는 것도 아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늘 1등이 아니어도 1등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아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이 시간들을 버텨왔습니다.

  일주일 조금 넘은 기간의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어제 돌아왔으므로 어젠 쉬었으니까, 오늘은 주말에 해야 할 공부를 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벌써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드는지 살짝 아쉬운 눈빛을 보입니다. '00도 오늘 학원 갔어. 중3인데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에 '걘 운동 안 하자나.'라고 답을 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매일 하지.'라는 제 답에 '아, 별로 쉬지도 못했는데...'라고 아이는 말끝을 흐립니다. 다정하게 저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지금 공부는 네가 어떻게 살아갈지 그 기본을 닦는 거야. 운동도 중요하지만, 공부도 중요해.' 옆에서 빨래를 개던 아빠도 거듭니다. '너 운동선수로 얼마나 오래 살 것 같아. 인생은 길고, 그래서 운동하지만 공부도 해야 해.'

  이런 부모의 답은 아이에게 아마 익숙할 거예요. 공부하기 싫다고 해도, 공부 안 해도 되냐는 징징거림에도 일상의 대화처럼 비슷한 의미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부모에게 체념한 탓일까요? 올 겨울은 상비군 훈련과 전지훈련, 2차 백신 후유증 등으로 거의 한 달 가깝게 공부를 하지 못핸던 터라 스스로도 좀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일까요. 아이가 놀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공부한 아이의 책을 열어봅니다. 중학생이 된 후에는 한 달이나 한 달 반에 한 번 정도 아이가 공부한 책을 살펴봅니다. 초등학생 내내 스스로 학습했던 습관이 있어서 아무리 게으름을 부려도 계획의 80% 정도는 완수하는 편이긴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잘하고 있냐고 질문하고, 2주일에 한 번은 얼마나 했는지 질문을 해야 아이도 해야 할 일을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가지고 열심히 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책을 열어보는 날입니다. 늘 그렇듯이 수학 문제가 풀려있지만 채점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예전엔 수학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한 후 틀린 문제를 고쳤습니다. 하지만 체육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책의 난이도와 공부방법을 많이 조정했습니다. 오전 수업을 듣고 오후에 네댓 시간씩 훈련을 하고 돌아오는 아이의 어깨는 늘 축 쳐져있습니다. 아무래도 운동이 잘 되는 날보다 안 되는 날이 많기 때문이겠죠.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다 보니 학교 시험문제가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1학년까지는 수학의 심화서까지 문제를 풀렸지만, 2학년이 되면서 응용 수준의 문제로 문제의 난이도를 낮추고, 두 번 정도 시도해 본 후 풀리지 않는 문제는 별표를 체크한 후 답지를 보고 확인하게 합니다. 그래서 채점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별표 친 문제가 대부분 틀린 문제라고 보면 됩니다. 

  학원에 다닌 적 없이 혼자 수학을 지금까지 공부해온 큰 아이는 논리력이나 추론력이 나쁘지 않고, 도형 감도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학습량이 적어 문제를 풀어나가는 속도가 느리고, 선행이나 심화를 나갈 수 있는 여건도 되지 못합니다. 3학년 1학기 문제를 풀기 시작한 지 5개월인데 이제 이 한 권이 마무리되어갑니다. 아이가 게으르게 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지난가을과 겨울 훈련량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11월엔 소년체전이 있었고, 손목 부상으로 한동안 병원을 다니느라 여유가 없었습니다. 1월엔 상비군 합숙을, 2월엔 전지훈련을 다녀왔으니 정말 바쁜 겨울을 보냈지요. 상황이 이해는 가지만 아이의 더딘 학습 속도가 엄마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보채는 동생을 달래려고 놀아주는 큰아이에게 큰 소리로 물어봅니다. '이번 문제집은 오답이 많네. 이차함수까진 괜찮은데 그래프 부분은 개념을 잘 이해 못 하는 것 같아.' 아이는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그래프는 잘 모르겠어. 이해가 잘 안 돼.' '1 사분면, 2 사분면... 이런 개념은 아는 거야?' '그건 그래프에... 어쩌고저쩌고...(알고 있는 것 같음)'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고민합니다. 다음번 문제집을 어느 정도 난이도로 할 것인가. 개념서와 응용서를 풀리고 준심화 수준의 문제집으로 넘어가고 싶었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 풀고 있는 응용서 수준의 문제집을 한 권 더 풀어야 할 것 같고(보통 60% 정도의 정답률이면 반복하기로 결정합니다), 혼자 공부하고 있으니 개념 설명이 잘 되어있는 책도 다시 복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문제집을 한 번 더 풀어보는 거 어때?' 아이는 같은 문제집을 복습하는 건 싫은지 '그렇게까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전 같은 문제집에서 틀린 문제만 골라서 다시 한번 풀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싫다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개념을 다잡고 응용문제풀이를 완성하는 것이니까요. 문득 '숨마쿰라우데 3(상)'을 지난 하반기에 품절돼서 구매하지 못한 것이 기억납니다. '숨마'로 개념 보면서 '라이트쎈'을 풀어보자고 제안을 합니다. 문제가 좀 많은 '쎈'을 풀리고 싶지만 3월에 또 대회가 시작되고 문제량이 많으면 중간고사까지 진도를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내일 책이 오면 개념을 읽어보는 날과 라이트 센 문제를 풀이하는 날을 정하고 책에 마감 일정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기분 상함 없이 문제를 잘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먼저, 아이가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부모가 자신을 부족하게 여기거나 질책한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 우리의 대화가 잘 진행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실랑이가 있었지요. 아이가 공부 이야기에 불쾌해할 때에는 '공부에 대한 대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늘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문제집은 공부하기 어떻냐는 질문에 아이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네가 뭘 못했나 찾아 혼내려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다음번 문제집의 난이도를 어느 수준으로 할지 정하려고 물어보는 거야.' 왜 공부 이야기를 꺼내는지 그 목적을 듣고 나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편하게 잘 이야기하였습니다. 

  둘째, 공부를 그냥 하는 날도 있고, 하기 싫어하는 날도 있는데 어쨌든 어떤 큰 이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매일 해야 할 공부의 80% 이상은 반드시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공부를 다음날로 미룬다 하더라도 그 주의 계획이 다음 주로 미뤄지지 않게 주말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이의 시간이 너무 빡빡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을 추려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의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일정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율해왔는데, 아무래도 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들다 보니 효율성이 높아졌습니다. 아이들이 보통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서인 경우를 자주 봅니다. 부모님들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되는데 아이가 게으르다고 이야기하지만, 청소년기 아이들, 특히 중학교 아이들은 2차 성징이 급격히 일어나는 시기이므로 휴식도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야 맑은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셋째,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가에 대해 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남편과도 이에 대해 종종 대화를 나눕니다. 나의 교육관을 검토하고, 자녀의 학습과 성취에 대한 마음을 살핍니다. 주변에 휩쓸리거나 감정에 휘말려 중심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이런 노력이 아이의 성적에 일희일비를 덜 하게 도와주고, 자녀에게 '들어가서 공부해!'라고 소리치는 것 대신에 공부에 대한 대화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아이들의 공부는 학령기에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다양한 배움을 지속합니다. 무언가를 익히고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의 습득. 답을 모르겠지만 끝까지 노력하고 인내하는 마음의 힘. 주변의 정보를 자신에게 유용하게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유연성. 이 모든 것이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덕목들입니다. 아이들의 공부. 성적과 성취에만 집중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경험하는 과정을 함께 해주세요. 목표를 강조하지 말고 목표에 다가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세요. 암흑에서 스스로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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