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아들 셋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6월에 정부가 새로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 보도 자료의 내용이다. 마치 엄청난 목표를 달성해야 하듯 아이를 생산해 내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육아휴직 급여를 늘리고, 아이를 늦게까지 봐주는 돌봄 시스템을 바쁘게 만들어 낸다. 아이를 낳지 않아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는 시대에 나는 아들 셋을 키우고 있다. 첫째 아이가 9살, 둘째 아이가 7살 되던 해인 2017년 셋째를 임신했다. 아들 둘 엄마의 셋째 소식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내 삶을 통틀어 가장 많이 주목받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뱃속 아이의 성별, 아들일까 딸일까에만 집중되었다.
나에겐 뒤늦은 셋째 출산의 여정을 함께 걷는 친구도 있었다. 바로 우리 첫째 아이 친구의 엄마이자 나와는 동갑내기 친구였던 안이었다. 안도 역시 아들 둘을 가진 엄마였다. 셋째를 가지고 싶지만 남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안은 나의 임신 소식에 마음이 설레였다고 한다. 이후에 남편을 열심히 설득하더니 결국 그녀도 나와 몇 개월 차이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막내를 낳고 퇴원하던 날은 안의 셋째 아이 성별이 공개되는 날이기도 했다. 안과 함께 하는 카톡방 여기저기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아니냐."는 지인들의 축하 세례가 이어졌다. 막 태어난 셋째 아들을 안고, 나는 뭔지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아들 둘을 키우고 있었지만 언제나 아이 셋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결혼할 때 신부님께 약속하듯 "아이를 셋은 낳고 싶다."라고 말했던 것이 자주 떠올랐다. 솔직히 셋째가 아들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기형아 검사를 할 때는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단호한 마음으로 무장을 했다. 괜찮을 줄 알았다. 친구 아이의 성별이 발표되던 날, 나는 알 수 없는 패배감에 당혹스러웠다. 안과 함께한 단톡방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단톡방마다 그녀의 막내딸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고 세상을 구한 그녀에게 쏟아진 찬사를 보며 마치 바람 빠진 풍선이 된 기분이었다. 계획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비교의 굴레에 느닷없이 빠져들었고 한동안 그 기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외출을 할 때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유모차에 누워 있는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꽤나 집요하게 물었다. 어르신들은 "아이고, 엄마가 정말 힘들겠다"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중에서 가장 듣기 힘들었던 말은 "딸 낳으려다가 실패했구나."였다. 실패라니. 내 아이들은 사랑으로 낳았지 실패로 낳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세상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세상 불쌍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내 삶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원하지 않는 비교 속에 자주 놓이게 되자 어느 순간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막내 아이는 더없이 사랑스러웠지만 내 마음이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자주 우울한 마음이 올라왔다. 7살, 5살 아들들과 한라산 영실코스를 오를 정도로 세상 밖으로 나가길 좋아했던 나는 어느새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 집을 지키고 있었다.
혹시 내 이런 마음을 눈치챈 걸까.
첫째가 말했다. 아빠와 힘을 모아 동서남북으로 둘러싸, 엄마를 보호해주겠다고. 삼국지에 한참 빠져있던게 분명하던 시절. 삼국지로 가득차 있던 아이는 급기야 이런 말까지 건넨다.
“엄마, 우리는 나중에 유비, 관우, 장비처럼 의리있는 삼형제가 되고 싶어요.” 내 비록 남들 다 가진 딸 하나 못 가졌어도 아들이 주는 묵직한 감정의 표현을 사랑한다. 지금도 그 말을 하던 첫째 아이의 진지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두 형제는 어렸지만 아이들이 내게 주던 든든함과 의젓함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맨발로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그 씩씩함을 사랑한다. 매번 새로운 놀이에 도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경이롭다. 신나게 뛰어놀고 들어오면 내가 지은 밥을 뚝딱 먹어치우고 책 속으로 빠져드는 아이들을 볼 때 믿음직스러웠다. 한없이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내게 주어진 이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이제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을 무장하기로 했다.
얘들아 너희들은 엄마에게 소중하고 보석 같은 존재야. 엄마는 너희들로 인해 힘들 때보다는 행복할 때가 훨씬 더 많아. 삼 형제로 자라는 경험은 누구도 쉽게 가지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특별한 가족이 될 거야. 너희들 셋이 각자 자기 안의 보석을 잘 다듬어서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서로에게 빛을 더하는 삶을 살자.
아이들이 모두 다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7년 전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이 말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ENFP로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살던 내게도 계획이 생겼다.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내게 주어진 아들 삼 형제를 상위 1%로 행복한 아이들로 키워보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자 결심이었다.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를 낳고 출생률을 늘려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미래에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세금을 낼 사람이 부족해서,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에 이들을 부양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등등 이곳저곳에서 아이를 낳고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출생아 수를 늘리는 일만큼이나 낳아 놓은 아이들을 잘 자라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애 안 낳는 세상에 태어난 아들 셋을 어떤 사람으로 키워낼 것인가라는 질문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아이들과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질문을 던지며, 아들 셋을 키우는 불쌍한 엄마가 아니라 누구보다 우아한 아들 셋 엄마가 되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