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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문 Apr 08. 2022

스카이인형

  - 억압과 자유의 갈림길에서-

집 앞 휴대폰 매장은 자주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매장 앞에는 짧은 치마를 입고 호객 행위를 하는 젊은 나레이터와 스카이 인형이 요란스레 춤을 추곤 했다. 공기가 주입되면 어쩔 수 없이 춤을 춰야만 하는 인형과 매번 같은 멘트만을 반복하는 나레이터가 왠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나 내 눈을 끌었던 것은 치어리더 복장을 한 나레이터 라기 보다 어느 원시 부족의 추장이 뽐내는 제의의 춤처럼 무아지경에 이른 스카이 인형의 몸짓이었다.

 

어린시절 TV 다큐멘터리에서는 종종 브라질 어느 원시 부족의 춤사위를 보여주곤 했다. 부족원들은 축제 직전에 초경을 시작한 여자 아이의 몸을 피가 날 때 까지 때리거나, 입술에 구멍을 내고 얼굴보다 큰 원반을 끼워 넣으면서 즐거워했. 피디가 왜 이런 의식을 하는지 물어 보면 의례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이라던가, 성인이 되기 위해서 라든가, 예쁘기 되기 위해서라는 따위의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듯 어이없다는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곤 했지만, 그럴 적마다 나는 그들의 평온한 대답과는 정 반대로 마취도 하지 않고 칼로 입술을 도려내는 장면에서 줄곧 온몸이 잘라지는 듯한 통증을 느. 그런 방송을 보고 난 이면 괜시리 부모님께 투정을 부리거나 꿈에서 여자 부족원이 되어 입술이 뚫리는 경험을 하곤 했으니 어린 내게는 꽤나 트라우마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껏 치장을 하고 나면 부족원들은 이제 드디어 부족의 일원이 되었다거나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곧장 성대한 파티를 열었고, 부족이 키우는 돼지를 잡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여자아이들을 겻눈질 하거나 축제에서 함께 춤을 추자고 손을 내밀었다. 왜였을까.그럴적마다 문득 원시부족의 삶과 도시민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 것 같다.


 사실  모든 제의가 치장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긴 했지만, “미” 라는건  내게 언제나 불가해한 개념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미적취향이 독특하다거나, 세련되지 못하다, 촌스럽다 등의 말로 나의 미적 감각을 비난하곤 했다. 어쩌면 어릴적부터 TV를 시청하지 못하게 한 부모님 탓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보기보다 애니메이션만 보고 자랐으니 나의 미적 감각은 2D에 일본적인 것으로 한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성인이 돼서도 한동안 취향이 독특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갓 대학교에 입학한 여대생의 미적취향은 그래,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해와 모방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기에 대부분의 여대생이 그렇듯 패션잡지를 구독하고 친구들과 패션에 대해 토론하면서 나의 미적 감각은 객관화됐고 세련되졌으며 대중적이 됐다. 딱 달라 붙는 크롭 상의에 짧은 치마, 그리고 허전한 손목을 채워주는 나름대로 심플한 팔찌. 그리고 무엇보다도 늘씬한 몸매는 대중적인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적당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발전된 삶은 화려했다. 고등학생 시절의 어리숙했던 이른바, 찐따가 다른 사람들의 호의와 관심을 받게 되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필기를 보여다라는 사소한 부탁에서부터 아르바이트를 대신해 줄 수 있냐는 다소 도발적인 부탁에 이르기 까지 한마디의 말로 손쉽게 이뤄지지 않은 일은 없었다. 이해 보다는 적응이 언제나 편리한 편이었으니까.     


 정말 그랬다.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나와!” 라는 말처럼, 사회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떡이나왔다.

스펙을 쌓고, 조건을 맞추면서 나의 취향을 사회에 맞기만하면 성공 이라는 상장을 받을수 있었다. 대부분의 모범생들이 그렇듯, 인정과 칭찬에 목말랏던 나는 손쉽게 우등생이 되어왔다. 단하나의 거짓된 메시지는 어쩌면 언제나 깨어있으라는 신기루같은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죽음영원한 안식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죽어있는 삶이야말로 가장 평온한 삶이 아닐까.


 여전히 아름다움은 나에게 미지의 개념이다. 요즘도 퍼스널 컬러니 ss시즌의 코디법이니 새로운 미용 정보들이 넘쳐나지만, 나는 그저 보기좋게 따라하기만 할 뿐이다. 유행가처럼 급변하는게 패션이라니, 이해하기보다 적당히  분위기만 맞추면 되지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코르셋 벗기 운동이라며 말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따지고보면 코르셋은 동서고금, 남녀를 막론하고 존재해왔지 않았던가.

그러니 어쩌겟나. 애완견 한 마리의 하울링을 온 동네 개들이 따라하듯, 사람도 결국은 동물이라는데 애완견과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스카이인형에 불어넣어지는 공기 다발이 꺼진다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축 쳐진 얼굴을 한 스카이인형은 폐기 되는 것일까? 공기가 주입될 적의 무아지경과 공기가 빠졌을 때의 쭈글쭈글한 얼굴, 둘 중 뭐가 과연 스카이인형의 모습인 것일까.


오랜만에 쾌청하고 공기도 좋은 초봄이다. 오늘도 집 앞에는 휴대폰 가게가 있고, 호객행위를 하는 나레이터가 있고, 여전히 멋드러지게 춤을 추는 스카이 인형이있다.


그러나 하늘은 유독 파랗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잎 처럼 가게를 들낙거리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껏 가벼워진 오늘, 유난히도 가게 앞 스카이인형의 황홀한 몸짓이 유독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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