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 일이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연말, 남포동에서 무려 1시간을 넘게 오들오들 떨며 기다려 먹었던 이재모 피자. 아니 피자 하나 먹는데 뭘 이렇게 오래 줄을 서서 먹는단 말이야 투덜 대면서 테이블에 갓 내온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넣고선 와!!!!!!!!!!!!!!!! 이게 피자라는 거구나! 역대급 환호성을 질렸던 그날이 떠오른다.
당시 나를 까무러치게 놀라게 했던 건 피자 위에 아낌없이 놓인 치즈였다. 조각을 떼어내니 마치 TV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쭈~욱 늘어나는 치즈가 정말 장관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치즈를 올렸길래 이렇게나 두껍게 가능한 거지? 싶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가격의 파스타! 이 가격에 이만큼의 양이라고?
아무리 맛있어도 다시 줄은 못서겠다며 찾지 않은지 (사실 집에서 멀기도 하고) 십수 년이 더 되었지만 여전히 그곳은 스테디셀러 핫플 맛집으로 전국적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소식으로는 부산역점, 서면점, 제주점 오픈에 이어 지역 사회 기부도 실천하고 있단다. 이재모 피자 하니깐 이재모 님이 다들 남자로 알고 있는데 놀랍게도 할머니란 사실!
전국구 맛집이 되어버린 이 이재모 피자를 참으로 오랜만에 찾게 되었다. 사내 예술 동호회에서 이번달 관람 공연을 남포동 BNK조은극장의 '오 나의 귀신님' 연극으로 정했고 관람 전 식사할 곳으로 말이다. 오후 5시 퇴근이라 바로 1호선 중앙역으로 향했고 가까운 이재모 피자로 돌격했다.
평일 오후 5시 40분, 다행히 웨이팅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드문드문 빈 테이블이 있어 바로 착석이 가능했다. 이재모 피자를 웨이팅 없이 그냥 들어오다니! 추억 속 이재모 피자는 어딜 가고 테이블마다 키오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샐러드, 피자, 스파게티, 파스타&라이스, 음료 섹션으로 나뉜 메뉴를 둘러봤다.
샐러드는 만원, 피자는 25,000원~3만 원 선(사이즈 Up 4천 원 추가, 갈릭소스는 500원 별도), 김치볶음밥 11,000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료가 상당히 혜자스러운데 착즙 오렌지 주스가 3천 원! 탄산 무한리필도 가능하다는 사실. 사실 10년 전의 그 갓성비를 느낄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갓성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음료였다.
시그니처인 이재모 크러스트 라지와 김치볶음밥, 그리고 베이컨크림치즈스파게티를 주문했다. 그리고 각자 오렌지 주스 1개씩. 많이 맵지도 않고 기름기도 적으면서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순삭하고 스파게티 역시 그렇게나 뜨거운데도 포크에 돌돌 말아 입에 넣기 바빴다.
대망의 피자! 여전히 쭉쭉 늘어나는 치즈 팡팡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재모 피자였다. 가격만 좀 높아졌지 그때 그 맛 그대로다. 인당 2조각씩 야무지게 나눠먹고 주스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나왔다. 오후 6시 30분에 나오는데 이미 웨이팅이...
웨이팅이 무서워 방문을 꺼렸던 분들이라면 이제는 한 번쯤 도전해 보자. 남포동 본점이 아니더라도 서면, 부산역, 제주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깐. 과거의 핵 가성비까지는 아니어도 아직도 여전히 착한 가격으로 입맛 사로잡는 피자 맛집, 이재모 피자, 한 번은 다시 가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