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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Sep 15. 2023

빚을 갚았지만 기쁘지 않았다.

수고 많았어. 여보.


집을 지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미스터리가 있다. 집짓기 예산이 얼마였는지와 상관없이 결국은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는 점이다. 1억으로 시작한 사람도, 10억으로 시작한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예외일리 없었고 막판엔 은행의 도움도 모자라 가족들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완공을 하고 입주한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 흘렀다. 오늘 아침 남편은 집을 나서며 “오늘 가족들에게 빌린 돈은 다 갚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고작 “잘됐네. 일본 가면 나마비루 한 잔 더 마셔.”라고 답하며 그를 배웅했다.


물론 아직 훨씬 더 많은 은행빚이 남아있긴 하지만 단기간에 외벌이로 그만큼의 빚을 갚았다는 건 분명 대단하고 축하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액수가 훨씬 큰 은행빚보다 우릴 더 짓눌렀던 건, 마음의 빚까지 더해진 가족들의 돈이었기에 더욱 그랬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래서 신난다고, 다행이라고, 수고했다고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담담하다 못해 무심해 보이기까지 한 이런 나의 반응에 여태껏 힘들게 달려온 남편도 맥이 빠질 터였다. 그걸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데 나조차 내 기분을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남편은 평소와 같이 터벅터벅 대문을 걸어 나가 묵직한 몸을 차에 실었고 나 역시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멀어지는 늙은 차의 뒷모습이 긴 시간 홀로 무거웠을 그의 어깨 같아 자꾸 눈물이 난다. 늦은 점심을 먹다 발견한 사진첩 속 그의 뒷모습까지도 유독 아린 날이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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