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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Apr 16. 2024

집을 짓고 하이킥 #4

집으로 돌아오니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서연에게 달려든다.


"엄마아~~."


"뭐 하고 있었어? 밥은 먹었어?"


"아니요. 딱지치기 하고 있었어요."


"혼자?"


아이에게 묻고 있었지만 서연의 시선은 굳게 닫힌 남편 방을 향하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상준은 저 방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저 안에 갇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번데기 껍질만 남겨놓고 떠나버린 나비처럼 우리의 마음은 이미 이 집을 떠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멀어지는 마음만큼 서로에 대한 거리도 날로 멀어져만 갔다.


'이대론 안돼. 변화가 필요해.'


서연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놀이에 빠져 들었다. 더 이상 놀아달라 보채지 않는 아이가 고마우면서도 외동이라 외롭진 않을까 늘 안쓰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간은 어느덧 12시. 더 늦기 전에 밥을 해야겠다 싶어 쌀통을 열어 쌀을 펐다. 적막한 거실에는 쌀 씻는 소리, 도마질 소리, 찌개 끓는 소리만 가득하다.


잠시 후 굳게 닫힌 문이 열리고 상준이 나왔다. 주방으로 온 그는 서연이 밥을 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란 듯이 라면을 꺼내고 라면 물을 올렸다. 함께 밥을 먹지 않겠다는 의지다. 서연은 목 끝까지 숨이 막혀오는 답답함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라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카톡 알람이 울렸다.


"언니, 뭐해요?"


앞동에 사는 민서 엄마였다.


"아인이랑 점심 먹으려던 참이야. 왜?"


"오늘 민서 아빠 출근했거든요. 언니 집에 있기 답답하면 아인이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와요."


최근 내 사정을 유일하게 아는 그녀는 지금 우리 집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 마냥 연락을 해왔고 서연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30분 후에 갈게. 고마워."


죽이 척척 맞는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신이 나서 방으로 들어갔고 서연은 민서 엄마가 준비해 놓은 사과와 쿠키, 커피가 놓인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괜찮냐고 묻는 민서 엄마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속 얘기를 꺼내놓는 일이 드문 서연이었지만 매사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쉽게 말하지도 않는 민서 엄마에게만은 한 번씩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오늘도 심각한 표정 대신에 와그작와그작 사과를 씹어대며 적당히 무관심한 척 "말해봐요."라고 말해주는 그녀가 서연은 무척 고마웠다. 건축 사무소에 다녀온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민서 엄마가 말했다.


"음, 그럼 그 땅을 한번 보러 가죠. 어디예요?"


"지금?"


"네. 나도 후리 하고 언니도 후리하고 안 될 이유 있나요? 가서 안 되겠으면 말고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 몰라요?"


역시 매사에 망설임이 없는 민서 엄마다운 발상이었다. 아마도 서연 혼자 고민했다면 땅을 보러 갈지 말지 하는 생각만 몇 주를 했을 것이다.


"어.. 저기 옆동네 신도시 거기 어디라고 한 것 같은데... 잠깐만."


서연은 핸드폰을 꺼내어 어제의 기억을 더듬었다. 아, 그런데 어디서 발견한 건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생각나는 정보를 조합하여 검색창에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눌러보았다. '장미 신도시 단독 주택 용지 급매' 몇 페이지의 창이 넘어가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반 이상 들이킬 무렵 드디어 어제 보았던 그 땅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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