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기대되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하고 싶은 일이라 함은 대부분 장소를 옮겨 먹고, 쉬고, 노는 것이다. 집에서도 가능한 일을 하기 위해 굳이 먼 길을 떠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장소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야 할 일’에서 멀어지기 위함이기도 하다.
7년 전, 새로운 치료실 근무를 앞두고 내가 양해를 구했던 조건은 3개월에 한 번씩 여행을 가기 위해 며칠씩 쉬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기 전에 보강은 차질 없이 마치고 가겠다고 했다. 원장님께선 그 조건을 수락하셨고 먹고, 놀고, 쉬는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하는 때를 기다리며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3개월을 버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하고 싶은 일을 왜 미루는 거야?’, ‘일 년에 단 며칠을 위해 매일 이렇게 견디듯 사는 게 넌 정말 괜찮아?’, ‘매일을 여행처럼 살 수는 없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장 시간적 자유가 주어진다면 뭘 하며 보내고 싶냐고 내게 물었다. 내 마음이 대답했다. ‘독서, 커피 마시기, 산책, 공연 보기?’ 내 머리는 생각했다. ‘역시나 별거 아니네.’
그때부터 나는 수업이 한 시간만 비어도 밖으로 나와서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고 운 좋게 몇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아쉬운 대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매일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일상은 해야 할 일이 있는 다음 날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어젯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책 읽을 생각에 설렜고, 오늘의 나는 청소를 빨리 마치고 마실 아이스 라떼 생각에 신이 난다. 그 대단하지 않은 일들이 무료한 회색빛 하루에 빨주노초파남보 생기를 불어넣는다. 떠나면 떠나는 대로, 머물면 머무는 대로 지금의 나는 그 어디서든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