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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미디어 PCARMEDIA Aug 11. 2022

시트로엥 SM : 마세라티 심장을 품은 아방가르드

수요 명차 극장

시트로엥은 프랑스의 3대 자동차 브랜드(르노, 푸조, 시트로엥)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회사입니다. 다른 제조사들이 강력한 퍼포먼스나 고급스러움을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여기는 것과 달리 '편안함(컴포트)'을 브랜드 가치로 내세우며 개성이 톡톡 튀는 차를 만들어 왔습니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평범함과는 담을 쌓은 듯한 디자인으로 유명한데요.


디자인도 파격적이지만, 동시에 기술 측면에서도 선진적이었던 브랜드가 바로 시트로엥입니다. 전륜구동 자동차의 대중화, 탁월한 승차감을 자랑했던 유·공압식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의 상용화, 파워 스티어링 및 유압식 파워 브레이크 시스템 기본사양화, 조향 연동 헤드램프, 탈착식 파이버글래스 바디 패널 등 훗날 자동차 업계의 표준이 된 많은 기술의 선구자였습니다.

기술과 디자인,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SM의 혁신을 소개합니다.

이처럼 혁신을 이끈 브랜드, 시트로엥의 여러 모델 중에서도 스타일링과 엔지니어링 양면에서 시대를 크게 앞서나간, 그러니까 아방가르드(avant-garde)하기로 으뜸가는 차가 있습니다. 바로 시트로엥의 처음이자 마지막 럭셔리 쿠페, SM입니다. 우주선을 닮은 시트로엥 SM은 기술적 혁신과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시트로엥 100년 역사에서도 최고의 명차로 인정받습니다.



시트로엥 최초의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
1958년식 파셀 베가(Facel Vega) 파셀 II. 1960년대 들어 프랑스제 고급 GT카는 명맥이 끊깁니다.

프랑스 차 하면 작고 경제적인 해치백이 떠오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호화로운 프랑스산 럭셔리 GT카를 만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령 폭스바겐을 통해 부활한 부가티만 보더라도 당대 유럽에서 가장 사치스럽게 꾸며진 차를 만드는 회사였죠. 하지만 2차 대전 전후 복구로 어수선한 시기를 거치며 고급차 수요는 급감했고, 1960년을 전후해 프랑스제 럭셔리 GT는 명맥이 끊겨 버립니다.

DS의 큰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시트로엥은 럭셔리 GT 개발을 추진합니다.

1955년 출시된 DS의 대히트로 자신감을 얻은 시트로엥은 DS의 스포츠 버전을 통해 럭셔리 GT의 계보를 잇고 싶었습니다. '프로젝트 S'로 명명된 이 차는 DS보다 더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시트로엥의 기함이자 프랑스 자동차의 기함이 될 차로써 전간기 프랑스 차의 영광을 되살릴 주역이었습니다.


시트로엥은 1961년부터 프로젝트 S의 개발에 본격 착수합니다. 초기의 구상은 DS를 바탕으로 하되, 휠베이스를 줄여 스포츠성을 가미한 럭셔리 쿠페였습니다. 당연히 DS에 탑재됐던 디스크 브레이크와 유공압식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도 탑재하기로 돼 있었고요.

SM을 디자인한 로베르 오프롱. 생카를 시작으로 시트로엥, 르노, 피아트의 디자인을 맡은 거장입니다.

외관 디자인은 시트로엥의 디자인 수장이었던 로베르 오프롱(Robert Opron)이 맡습니다. 앞서 DS의 페이스리프트, 벨페골 트럭 등의 디자인을 맡았던 그는 곡선이 지배하던 60년대 스타일이 아닌, 매끄러운 직선과 과감한 면처리를 강조한 럭셔리 쿠페의 디자인을 빚어냅니다.


DS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프로젝트 S는 훨씬 낮고 길었습니다. 전장은 DS보다 67mm나 긴 4,893mm에 달했고, 전고는 1,324mm에 불과했죠. 전폭 또한 DS보다 45mm 넓은 1,836mm로 전형적인 럭셔리 GT의 비례를 지녔습니다. 반면 공간을 위해 극단적으로 긴 휠베이스를 채택했던 DS와 달리, 휠베이스는 2,900mm로 줄여(물론 이것도 충분히 길었습니다) 운동성을 높였죠.

독특하면서도 유려한 프로젝트 S는, 그러나 마땅한 엔진을 찾지 못해 난관에 봉착합니다.

DS의 스타일과 기술을 이어받은 최고급 쿠페의 개발은 순항 중이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소에서 암초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당시 시트로엥에겐 GT카에 어울리는 엔진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DS에 탑재했던 4기통 엔진은 업그레이드를 거듭해 2.3L의 배기량으로 141마력을 내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프로젝트 S의 잠재적 경쟁자인 이탈리아나 독일, 영국의 럭셔리 쿠페들 앞에선 민망한 성능이었습니다. 4기통으로는 정숙성이나 주행질감이 떨어지는 문제도 피할 수 없었고요.


무작정 배기량을 높일 수도 없었던 것이, 당시 프랑스의 자동차 세제 상 배기량이 2.8L를 넘어가면 몇 배의 자동차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새로운 엔진을 직접 개발하자니, 시트로엥은 애초부터 큰 엔진을 만들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회사였습니다. 시간도, 돈도 많이 들 것이 명약관화였죠.

시트로엥의 전성기를 이끈 피에르 베르콧. 그는 아예 엔진 잘 만드는 회사를 사들이기로 결심합니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다른 회사에서 엔진만 사다 쓰는 것이지만, DS와 함께 전성기를 누리던 자존심 강한 시트로엥이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때는 메이저 자동차 회사들이 인수전을 펼치며 몸집을 불려 나가던 시기, 시트로엥의  최고경영자 피에르 베르콧(Pierre Bercot)은 호기로운 결정을 내립니다. 바로 엔진 만들 회사를 사 버리는 것이었죠.



아방가르드, 야수의 심장을 품다
시트로엥 N350 '벨페골'. 1960년대 시트로엥은 상용차 회사까지 사들이며 확장 중이었습니다.

1960년대 자동차 업계에는 재편의 소용돌이가 몰아쳤습니다. 거대한 미국 시장의 성장과 저유가 기조 덕에 자동차 판매량은 늘었지만,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난립한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부실한 회사들은 인수합병을 거치며 생존 게임을 펼치고 있었죠.


이 시기 시트로엥은 먹히는 쪽이 아닌, 포식자의 입장이었습니다. 미쉐린 산하에서의 경영은 안정됐고, DS의 성공으로 회사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뭉치지 않으면 모두 망한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던 시기, 시트로엥은 이미 1960년대 초부터 파나르(Panhard), 베를리엣(Berliet) 같은 회사들을 사들이며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마세라티는 유서 깊은 스포츠카 제조사였지만,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S의 엔진 문제로 고심 중이던 시트로엥의 눈에 든 건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브랜드 마세라티였습니다. 모터스포츠와 스포츠카 업계에서 오랜 명성을 쌓은 마세라티는 시트로엥 그룹의 헤일로가 될 수 있었을 뿐더러, 신차를 위한 엔진 개발을 맡기기에도 제격이었죠. 처음에는 함께 사용할 엔진을 개발하는 제휴 관계로 시작됐지만, 시트로엥은 이내 경영난에 허덕이던 마세라티를 통째로 인수하기로 마음먹습니다.


1968년 마세라티가 공식적으로 시트로엥 일가에 편입되면서 프로젝트 S의 개발도 탄력을 받습니다. 머리를 싸매게 했던 엔진 문제는 마세라티의 치프 엔지니어 쥴리오 알피에리(Giulio Alfieri)에 의해 간단히 해결됩니다. 시트로엥의 요구사항은 꽤 까다로웠는데요. 전륜구동 설계를 적용할 수 있도록 엔진은 너무 크지 않아야 했고, 훗날 마세라티의 미드십 스포츠카에도 써 먹을 수 있는 설계여야 했습니다. 또 강력하되 부드럽고, 무엇보다 프랑스 세제에 맞춰 2.8L 미만의 배기량을 갖춰야 했죠.

마세라티가 개발한 2.7L V6 엔진. 90˚ 뱅크각으로 소음과 진동이 다소 컸지만, 성능은 확실했습니다.

이에 마세라티는 레이스에서 사용하던 4.2L V8 엔진을 바탕으로 실린더를 2개 떼 내기로 합니다. 또 배기량 기준을 맞추기 위해 보어와 스트로크를 조절해 최종적으로는 2,670cc로 줄입니다. 엔진 블록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DOHC 설계임에도 건조중량은 140kg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시트로엥 경영진이 6개월의 개발 기한을 줬지만 마세라티는 불과 3주 만에 구동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는 것이었죠.

레이스 태생 엔진과 최신 5속 변속기의 조합은 SM을 유럽에서 가장 빠른 GT카로 만들었습니다.

스포츠카 명가 답게 성능도 출중했습니다. 3개의 웨버 카뷰레터와 조합된 엔진은 기대보다 훨씬 뛰어난 174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고, 시트로엥의 트랜스액슬 5속 수동변속기와 조합돼 최고속도는 220km/h에 달했습니다. 이는 당대 프랑스 차 중 가장 빠른 것이었을 뿐 아니라,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재규어 같은 경쟁사의 그랜드 투어러도 따라오지 못한 속도였죠. 그러면서도 공인연비는 복합 8.0km/L를 기록해 경쟁 모델 중 가장 경제적이었습니다.

SM의 단면도. 엔진이 프론트 액슬보다 뒤에 위치해 구조적으로는 '프론트 미드십 전륜구동'에 해당합니다.

DS로부터 이어져 온 혁신과 아름다운 디자인, 폭발적인 성능까지 두루 갖춘 프로젝트 S의 차명은 SM으로 정해졌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의견이 분분한데, '스포츠 마세라티(Sport Maserati)'라는 설과 '여왕 폐하(Sa Majesté)'의 이니셜을 따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둘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1970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SM의 자태는 여왕의 그것에 더 가까웠습니다.



셀럽들이 선택한 "시트로엥의 여왕"
제네바에서 모습을 드러낸 SM은 곧바로 모터쇼의 주인공이 됩니다.

시트로엥 역사 상 가장 고급스러운 차, 마세라티의 심장을 얹은 시트로엥, 유럽 최초이자 최고속 전륜구동 그랜드 투어러... 1970년 제네바 모터쇼의 주인공이 된 SM에 붙은 수식어는 실로 다양했습니다. 1971년 유럽 올해의 차 3위에 오르고, 이듬해인 1972년에는 미국에서 비 미국차 최초로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에 선정된 것 또한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SM의 겉모습은 그야말로 유려함 그 자체였습니다. 넓고 당당한 모습의 전면부와 대조적으로 좁고 두툼한 후면부, 루프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차체 뒷편으로 이어지는 캄백 스타일, 언더스티어를 줄이기 위해 리어 트레드를 좁히고 바디 패널로 덮은 뒷바퀴 덕에 SM은 가만히 서 있어도 속도감이 느껴지는 디자인을 지녔습니다.

헤드램프와 번호판을 유리 커버로 덮은 전면부는 SM의 특징입니다.

특히 전면부 디자인이 아주 독특한데, 유리로 뒤덮인 좌우 헤드램프에는 각각 3개의 광원이 들어갔고(북미형은 2개), 맨 안쪽의 라이트는 DS처럼 조향 연동형 코너링 램프 역할을 맡았습니다. 헤드램프의 유리 커버는 정중앙으로 이어져 번호판조차 유리 커버 내부에 들어있었습니다. 외부에 돌출된 번호판이 유려한 미관을 해치고 공기저항을 유발하지 않기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실제로 SM의 공기저항계수(Cd)는 당대 가장 낮은 0.34에 불과합니다.

SM은 독특한 외관 못지않게 실내도 진보적으로 꾸며졌습니다.

세련된 실내 디자인 역시 럭셔리 GT에 어울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고급스러운 가죽을 두른 일체형 시트, 베개처럼 푹신한 헤드레스트, 계기판과 센터페시아를 일체화한 운전자 지향 디자인, 금속의 질감이 드러난 변속 레버, 타원형으로 멋을 부린 계기판 등... 무엇 하나 아방가르드하지 않은 것이 없었죠. 또 일부 시장을 제외하면 유럽 최초로 에어컨을 기본 사양으로 탑재하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인 차체 설계나 셀프 레벨링 기능이 포함된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 대용량 4륜 디스크 브레이크 같은 것들은 DS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수준이었지만, 그 밖에도 여러 방면에서 혁신적인 기술이 탑재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DIRAVI'라 불리는 속도 감응형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입니다.

SM에 적용된 DIRAVI 스티어링 시스템은 이후 다른 시트로엥 모델에도 탑재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은 일부 고급차에나 적용되는 사양이었는데, 조향 후 직진 방향으로 되돌리는 것도 운전자가 직접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SM에 적용된 DIRAVI(DIrection à RAppel asserVI) 시스템은 유압식 셀프 센터링 기능을 제공해 운전대를 얼마나 꺾든 손을 놓으면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또 현대적인 락-투-락 2회전의 짧은 스티어링 기어비를 적용해 조향 감각을 높이면서도, 속도에 비례해 스티어링 휠이 무거워지는 속도 감응 기능을 탑재해 고속 안정성을 높였죠. 1970년대로선 매우 진보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시트로엥의 앞선 기술력과 마세라티의 심장의 조합으로 완성된 SM은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차였습니다. 승차감은 편안했고, 코너링은 예리했으며, 가속력은 폭발적이었고, 제동력은 안정적이었습니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에 시트로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고가의 그랜드 투어러임에도 출시 2년 만에 9,000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컴팩트한 고성능 V6 엔진은 신뢰도가 나빴습니다. 의외로 복잡한 유압 시스템의 말썽은 적었습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 였을까요? 1973년부터 SM의 인기가 식어버립니다. 이유는 엔진이었습니다. 레이스용 엔진을 가져다 급조한 V6 엔진은 복잡한 캠기구 구조 탓에 타이밍 체인이 절손되는 문제가 빈번히 일어났고, 오일 펌프와 점화 시스템의 고장도 잦았습니다. 심지어 배기 매니폴드가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연식 변경과 함께 대부분 해결됐지만, 고급 쿠페를 구매한 고객들의 무너진 신뢰를 되돌리긴 어려웠습니다.

내구성 문제와 오일 쇼크, 시트로엥의 경영난이 겹치며 SM은 조기 단종 수순을 밟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의 감산 조치와 함께 석유 값이 폭등하면서 세계 경제에 대혼란이 찾아왔고, 기름 많이 먹고 값비싼 럭셔리 GT의 수요는 차갑게 얼어붙습니다. 후세에 '제1차 오일 쇼크'라 불리는 경제 위기가 찾아와 SM의 판매는 곤두박질쳤고, 가뜩이나 마세라티 인수 후 자금난에 시달리던 시트로엥의 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집니다.


1973년 시트로엥이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SM의 판매는 더욱 급감합니다. 1973년 2,619대였던 판매량은 1974년 294대, 1975년 115대로 쪼그라듭니다. 설상가상으로 파산한 시트로엥을 인수한 푸조는 즉시 재정난의 원흉인 마세라티를 매각하고 SM을 단종시킵니다.

북미 수출형 SM. 법규 탓에 원형 헤드램프를 장착한 게 특징입니다. 북미 판매량은 2년 간 2,400대에 그쳤습니다.

1970년 하반기 판매를 시작해 5년 반 동안 만들어진 SM은 고작 1만 2,920대. 짧은 생산 기간을 고려하더라도 결코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DS의 후속이자 SM의 기술을 반영해 개발한 대형 세단, CX의 성공으로 시트로엥은 회생하지만, 이후로도 시트로엥이 그랜드 투어러를 만드는 일은 다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M을 실패작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유명인사들이 SM을 사랑했으니까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이란 황제 팔라비 2세 등의 정치인들이 SM을 소장했으며, 롤링스톤즈의 베이시스트 빌 와이먼, 록밴드 U2의 애덤 클레이튼, 작곡가 존 윌리엄스,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 등이 SM을 탔습니다. 현재도 콜드플레이의 베이시스트 가이 베리먼, 미국 방송인 제이 레노 등이 SM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72년 제작된 대통령 의전용 SM 프레지덴시알레. 20년 넘게 프랑스 대통령과 귀빈을 모셨습니다.

프랑스 예술과 문화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잘 반영한 디자인 덕에 SM은 의전차로도 애용됐습니다. 프랑스의 제19대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부터 제22대 대통령 자크 시라크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통령이 의전용으로 개조한 SM 컨버터블을 애용했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도 의전차로 사용됐습니다.


이처럼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시트로엥 SM을 사랑한 것이 비단 소장가치 때문 만은 아닙니다. 시대를 앞서 나간 디자인과 첨단 기술, 마세라티와의 극적인 이종교배로 완성된 퍼포먼스가 합쳐진 결과물은 물론, 스토리 만으로도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낭만적인 차였습니다.

프랑스 최후의 럭셔리 GT카, SM은 여왕의 자리에 걸맞는 명차였습니다.

SM은 시트로엥이 럭셔리 쿠페 시장에 내던진 야심찬 출사표이자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 1945년부터 30년 간 이어진 프랑스의 경제적 황금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격동하는 산업이 빚어낸 '시트로엥의 여왕(Sa Majesté)'은 오늘날까지도 그 아름다움과 완벽함으로 칭송받는 명차로 남아 있습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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