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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ug 16. 2015

나무 1: 지휘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따뜻하다.

지휘자란,

개개인이 내는 소리를 하나하나 조율해 가며 아름다운 소리의 조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

소리에 예민하고, 소리에 민감해야 하는 만큼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이 흔한 일인 직업.


고등학교 시절, 연세가 꽤 있으신 교내 오케스트라 지휘자 선생님이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푸근한 외모부터, 연습을 할 때 성의가 없다고  착각할 정도로 편하고 자상하게 단원 한 명 한 명을 대하는 모습까지, 어딘가 지휘자 답지 않은 그의 모습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17살의 내 눈에는 그저 성공한 음악가가 아닌, 학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선생님으로 보여서 그랬던 걸까. 나는 그 지휘자 선생님을 보면서, '역시, 너무 착하면 큰 성공을 할 수 없는 건가 봐.'라는 생각을 했었다.


얼마 후, 그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심한 열병을 앓아 왼쪽 귀의 청각을 잃은 지 50년이 넘었고, 그분의 왼쪽 귀에는 항상 보청기가 함께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한동안 내가 싫었다.


    아, 왜 나는 몰랐을까. 항상 그분의 왼쪽 귀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연주를 하면서도, 왜 자세히 알려고,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나만의 시선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행동인지를 창피함 뒤로 배웠던 순간이었다.


편견이란 색안경 한 겹을 뜯어 내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른 지휘자 선생님들보다 느슨했던 것이 아니라, 단원들에게 편안함을 심어주고 계셨고, 그것이 즐거운 연주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것.


     무작정 참고 열심히 하는 것 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즐겁게 연주를 하는 순간, 아름다운 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즐거운 연주를 할 줄 아는 단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는 갈채받을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불공평함은

항상 좌절을 불러온다.


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태어난 순간부터 불공평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공평함이란 죽음뿐이다.


불공평을 딛고 일어나 도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빛나는 일이고, 꼭 최고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 지휘자 선생님은 알고 계신  듯했다.  


행복이라는 게, 꼭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을 이룬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삶에  감사해하는 것이라는 것; 참으로 따뜻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

부정의 옷을 긍정의 옷으로
갈아입는 시간은
찰나의 순간이고,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세상의 잣대가
행복의 잣대가
아님을

이것을 나는 사람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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