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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Feb 01. 2024

3. 나를 따르라, 슈퍼커브!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는 탓에 덜컥 구매해 버린 나의 명마를 언제 집으로 데려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날마다 홀로 침대에 누워 첫 만남 때 찍어 두었던 사진만 뒤적거리면서 화면 속 곱디고운 자태의 오토바이를 손가락 지문으로나마 매만져주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두 손으로 직접 어루만질 수는 없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 그 녀석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간 집사람에게 의심을 살 것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 불쑥 찾아와 길가에 소복이 쌓였다 녹아내린 눈꽃 선녀님 덕분에 감히 데려올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언제쯤 따뜻해질까? 서둘러 일기 예보를 확인했다. 야속하게도 일기예보는 앞으로 당분간 따뜻한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나를 비웃었다. 심지어 곧 있으면 또 한바탕 눈이 내릴 예정이고, 그 후로 58년 만의 강추위가 한반도를 덮쳐 전국이 꽁꽁 얼어버릴 테니 각오하라고 날 놀려댔다. 하... 어떡하지? 겨울 내내 이쁜 내 새끼를 남의 집 주차장 한편에 세워만 둬야 하나? 내가 그러려고 그 거금을 들여 내 새끼를 업어왔던가? 아니다. 그것은 아니다. 내 그리 쉬운 사람이 아니다. 한번 더 하얀 눈이 세상을 덮고 그 위로 살얼음이 얼어 오토바이 바퀴가 미끄러질 걱정에 더더욱 엄두도 못 낼 그날이 오기 전에 소중한 나의 애마를 업어와야 한다! 반드시 내 옆에 두어야만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 준비에 평소보다 20분이나 더 걸렸다. 옷을 두껍게 껴입느라 그랬다. 아래에는 꽉 끼는 쫄쫄이 내복에 체육복을 한번 더 껴입고 그 위로 청바지를 겹쳐 입었다. 위로는 아래쪽과 세트인 쫄쫄이 내복 목티를 입은 후 두꺼운 남방을 걸쳐 단추까지 꼭꼭 잠갔다. 그리곤 오리털이 빵빵한 뽀글이 양면 패딩을 둘러 만반의 준비를 완성했다. 시험 삼아 밖으로 한 발짝 나가보았는데 최저기온 영하 8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방한만큼은 완벽했다. 됐다! 이 정도면 데려올 수 있겠다! 이 상태로는 빠른 걸음도 언감생심이겠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어차피 내 명마가 두 발이 되어줄 테니!  


점심시간을 빌려 서둘러 오토바이가 주차된 곳으로 형님의 차를 타고 향했다. 무식하게 껴입은 옷 때문에 온몸은 미련 곰탱이처럼 주춤주춤을 반복했다. 보조석에 앉아서는 자세를 바꾸기도 힘겨울 정도라 가는 내내 가만히만 앉아 있었다. '야 이 멍청.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냐?' 하는 나 자신을 향한 질타가 머릿속을 문득문득 때렸다. 그래! 나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널 데려왔어야 했어. 넌 내 오토바이니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 형님이 히터를 빵빵하게 올려 땀이 삐질삐질 나오려는 찰나에 차는 오토바이를 세워둔 형님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 샛노랗게 예쁜 슈퍼커브의 모습을 보고는 또다시 주체할 수 없 심장이 마구 날뛰는 것 같았다.

"잘 있었어?" 

나도 모르게 밝은 마음으로 인사했다. 커브가 대답했다.

"응. 잘 있었지. 반가워. 내가 너의 슈퍼커브야."

장갑과 헬멧을 착용하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보았다. 그 사이 형님이 손봐 놓은 전자식 시동이 시원하게 잘 먹히면서 거친 시동음을 쏟아냈다. 그래! 이거지. 심장소리와 같은 이 소리에 남자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거지. 서둘러 오토바이에 올랐다. 내 짧은 사타구니에 착 감기는 촉감에서 이 녀석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그래 달려보자. 나랑 함께 가자. 이랴! 기어를 넣고 엑셀을 당기자 숙한 움직임으로 오토바이가 앞으로 나아갔다. 바람 한점 없는 주차장이었지만 나아가는 속도가 만들어 낸 공기의 흐름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공도에 올라 힘껏 엑셀을 당겼다. 부르릉 하는 소리가 거칠어질 때쯤 기어를 변경했다. 맛있다. 감았다 풀어놓는 손, 시기적절하게 기어를 변경하는 발, 그때마다 앞으로 숙여지는 상체. 모든 몸의 세포가 나에게 이 움직임이 맛있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갈 길이 멀었기에 밥부터 먹여야 했다. 주유 계기판 바늘이 앵꼬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처 주유소로 들어가 안장 열쇠를 풀고 주유구를 열었다. 셀프주유소 화면에 휘발유를 선택하고 주유기를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급휘발유를 먹여주고 싶었지만,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자식 가진 부모맘이 다 이런 거다. 만 원이면 되겠지? 주유 금액 만 원을 선택하고 주유기를 꽂았다. 그런데 주유를 시작한 지 몇 초 되지 않아 휘발유가 출렁이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서둘러 주유기 손잡이를 놓고 정액 멈춤 버튼을 누른 후 주유를 마무리했다. 3,800원. 정말 이걸로 충분한 거니? 더 먹지 왜? 우리 집 막둥이는 소식가인가 보다. 얼마 먹지도 않고 배부른걸 보니. 또 배 고프면 말해. 이렇게 먹을 거면 아빠가 얼마든지 먹여줄 수 있어.  


이제 본격적으로 집으로 데려갈 순간이 왔다. 서둘러 집에 모셔놓고 얼른 근무지로 복귀하려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마음은 바빠도 서두를 수는 없었다. 뒤를 봐주며 따라오던 형님이 중간중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도 취해주었다. 신호가 없이 길게  이어진 순환 도로가 나오자 최대 시속 80km/h를 돌파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몸이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몸이 추워졌다는 느낌보다는 손이 시리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사실 손이 시리다는 느낌보다는 손 끝이 아린다는 느낌이 더더욱 강했다. 시린 느낌 손 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으로 변했다. 와 씨. 역시는 역시네. 겨울엔 다들 오토바이 배터리를 빼놓는다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앞으로 추운 날엔 절대 타면 안 되겠다. 며칠만 늦게 데려왔으면 추위에 눈까지 겹쳐 큰일 날 뻔했다. 이런 생각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 갑자기 졸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졸리다고? 이렇게 추운데? 이렇게 가는 건가? 추울 때 잠들면 죽는다던 말에 추운데 왜 잠이 드냐 되물었었는데 그제야 이해가 갔다. 추워도 잠들 수 있구나. 아찔한 순간을 견뎌내고 아파트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도착과 동시에 장갑은 벗어던지고 두 손을 움켜쥐었다. 조금만 더 이대로 다면 두 손가락 끝에 동상이 걸렸을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드디어 내 품 안의 자식이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행복한 표정으로 오토바이에 커버를 씌워두고 서둘러 형님 차를 타고 업무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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