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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Feb 08. 2024

4. 너 정말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니까

내 작고 소중한 예쁜 오토바이를 데려온 지도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일단 데려오긴 했는데, 내 사랑스러운 애마를 가족들에게, 특히나 우리 집 절대 기준 와이프님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줄창 고민이 되었다. 집사람이라는 태산만 잘 넘으면 가족 모두의 용서를 얻게 될지어다. 처음 오토바이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반응을 생각해 보면 심하게 화를 내거나 극구 반대해서 도로 갖다 팔아 버리라고 할 것 같지는 않았는데. 과연 내 똥촉이 이번에는 좀 들어맞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집사람은 온화한 사람이었다. 몰디브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난 이미 집사람의 품성을 알아보았다. 800달러라는 거금을 리조트 금고에 넣어 두고는 까맣게 잊어버렸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싱가포르에서 이틀 일정을 보내기로 했는데 그제야 돈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리조트 금고를 떠올리지 못한 나는 집사람을 쥐 잡듯 잡았다. 어디에 뒀는지 빨리 찾아내라고. 한국에 두고 왔느냐고. 왜 기억을 못 하냐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 시내투어를 하며 지나다니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났다.

'한국에 가면 운전을 해야 하는구나. 차 키. 차 키를 어디에 두고 왔더라? 응? 금고'

아뿔싸. 몰디브 리조트 금고에 차 키와 현금 800달러를 두고 온 사람은 나였다. 난 이제 죽었다. 사고를 쳐 놓고는 애먼 사람을 잡았으니 이번 여행은 끝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집사람의 대인배스러운 인덕이 발현했다.

"괜찮아. 찾았으니까 됐지. 다행이다."

집사람은 화를 내지도, 삐치거나 토라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심란해하는 나를 달래주었다. 이때 나는 이 여자를 평생 믿고 따를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평소 온화한 성격에 이해심 많은 집사람이었지만, 10년 넘게 의견을 좁히지 못했던 오토바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역시나 온화하고 넓은 이해심으로 바라봐 줄까 하는 근심과 걱정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커지고만 있었다. 우리 집에 입양된 셋째(?)를 어떻게 집사람에게 소개해 줄지 고민하는 동안 정식으로 입양 절차도 밟았다. 카라반을 데려올 때와 같이 자동차 등록소에 방문해 오토바이 등록을 문의했는데, 동사무소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가뜩이나 걱정 어린 시선을 피하지 못하는 오토바이인데, 차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신세가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동사무소에서의 입양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양도인에게서 받은 서류와 3천 원 인지세 증명서를 등록신청서와 함께 내밀었더니 담당 공무원분이 착착착 알아서 처리를 진행해 주었다. 우리 애기 번호가 몇 번이려나 기대하고 있노라니 담당자가 뒤편 창고 같은 곳에서 번호판을 가지고 나왔다. 5.7.6.3. 크... 번호도 좋다.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번호다. 일단 내 손에 들어왔으니 더 바랄 나위 없이 좋은 번호다. 이뿌다. 번호도 참 이뿌다.


집으로 돌아와 친구 옆에서 다소곳이 베일을 두르고 나를 기다리던 녀석을 쓱 한번 쳐다본 후 바로 번호판을 달아주기로 결심했다. 집에 있는 공구들을 죄다 챙겨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알고 있는 공업적 지식을 총동원해 번호판을 달았다. 사실 번호판 장착 방법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해 유튜브의 힘을 빌리긴 했다. 아무튼 뭐 남의 손이 아닌 내 손으로 번호판을 달았다는 그 사실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은가! 예쁜 번호를 뒤꽁무니에 곱게 달아 놓으니 가뜩이나 탐스러운 엉덩이가 더 앙증맞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 앙증맞고 귀여운 엉덩이를 덩실대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대차게 맞는 상상만으로도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만 기다려라! 형이 이뿌게 함께 달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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