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꼬 Apr 25. 2024

10. 꽥꽥이의 나라 대만 여행

헬멧 사러 대만 다녀온 이야기

꽥꽥이를 데려 온 후로 종종 집사람 가게로 마실 나가는 날이 생겼다. 꽥꽥이에 대한 집사람의 거부감은 극적이라 할 만큼 줄어들어 이제 더는 그 녀석의 궁둥이를 발로 걷어차지도 않았다. 다만 집사람의 딸아이가 가끔 엄마를 대신해 살짝 때찌를 해 줄 뿐. 지금의 긴 겨울이 가면 집사람과 향긋한 꽃내음을 맡으며 화창한 봄날을 감성 그득하게 누빌 요량으로 이쁘장한 커플 헬멧을 한쌍 구매했다. 쿠팡 로켓배송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른 한 쌍의 헬멧은 센스 있는 외에 가격도 착해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정식 오토바이 헬멧은 아니었던지라 무전기를 달 수도 없었고 어딘가 튼튼한 느낌도 없어 보이는 게 영 못마땅했다. 게다가 나에게는 사이즈가 작을랑 말랑 했지만 소두보다 조금 더 작은 집사람의 머리 위에서 헬멧은 집사람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저 혼자 따로 놀며 불편감을 키웠다. 아쉬운 대로 그냥 쓸까도 고민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품해 주는 쿠팡의 호의를 저버릴 수는 없는 법. 시험 삼아 한 번 써보고는 그날로 반품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헬멧을 구하려 이리저리 온라인 손품을 팔았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헬멧이 보이지도 않거니와 또다시 사이즈 미스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선뜻 구매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시간이 며칠이나 계속됐다. 그러다 문득 구정 연휴에 잡아 둔 대만여행이 떠올랐다. 그래서 검색창에 '대만 + 헬멧'을 검색했더니 놀랍게도 대만에서 헬멧을 구매했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몇 개 발견할 수 있었다. 대만이 스쿠터의 나라라더니 대만에서 헬멧을 사 오는 사람들이 있구나! 헬멧 파는 매장이 생각보다 많고 종류도 다양한 데다 착용해 보고 머리에 맞는 사이즈로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으니 대만에 간 김에 헬멧을 살게 아니라 헬멧을 사러 대만에 가야 할 판이었다. 아!  하나. 거대헬멧의 크기로 인해 늘어날 짐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면 집사람의 짜증력이 갑툭튀 할지도 모른다는 점만 빼고. 역시나 그 하나가 어려워 집사람에게 조심스레 헬멧 구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우리 대인배 수령님이신 집사람 동무는 이번에도 역시나 화끈하시다.

"그래. 가서 하나 사자."

시원하게 승낙해 주신 후로 내 심장은 바운스바운스 두근대 멈출 줄을 몰랐다. 멈추면 죽으니깐.


그로부터 한 달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드디어 대만여행길에 올랐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생각들로 나를 새롭게 할 여행이었다. 비록 대만이 우리 가족 모두가 원했던 휴양지형태의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버텨준 데 대해 감사를 전하고 싶어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더랬다. 아이들을 위해 동물원 방문 일정을 넣었고, 집사람을 홀리기 위해 명품샵이 즐비한 쇼핑몰도 동선에 포함시켰다. 관광지여행에서 걷다 지치는 일이 없게 모든 일정은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기로 하고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동선을 치밀하게도 설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대만 여행 실패에 가까운 여행이 되었다. 아이들이 어린 탓에 대만을 속속들이 보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오래전 서울의 모습을 쏙 빼닮은 모습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탓도 있다. 아주 편하지도, 아주 이색적이지도 않은 모습이랄까? 시먼딩에서는 명동이 떠올랐고, 타이베이 시립 동물원은 서울대공원만도 못했다(사실 서울대공원이 너무 잘 되어있어 그렇다). 숙소가 있던 반차오지역은 서울의 영등포나 다름없다. 심지어 여행 일정이 구정연휴 기간이라 우리나라와 같이 음력 정월을 기념하는 대만의 많은 식당이 문을 닫기까지 했으니 치밀한 계획에 숭숭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바이크 헬멧. 그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나름 열심히 여행에 임했다. 그리고 대만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바이크 구매를 맨 마지막 일정으로 미뤄두었다. 사실 큰 짐을 지렁지렁 들고 다니면서 받게 될 집사람의 레이저 눈깔이 무서워서였지만. 


아무튼 드디어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오기로 한 우리 가족은 오전 시간에 시내로 나가 마지막 대만을 즐겼다. 역시나 꼭 가봐야 한다는 용캉공원으로 향했지만, SNS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던 용캉우육면도 문을 닫아 먹어볼 수 없었다. 대신 공원에 앉아 한가로이 길거리 음식에 커피를 마시고, 딸내미의 대만여행 버킷리스트였던 망고빙수를 먹으며 마지막 여행의 아쉬움을 달랬다(망고빙수마저 투썸이 낫더라).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 맡겨두었던 짐을 찾은 후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이크 헬멧 가게로 향했다. 사실 서둘러 헬멧을 사고 싶은 마음을 더 꾹꾹 눌러 담지 못해 전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대충 어떠한 종류가 있는지 눈에 담아두고 왔기에 오늘 가서 결제만 하고 물건을 집어 들고 나오면 된다고 생각해 서두르지 않고 매장을 찾았다. 그런데 막상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어제 마음에 담은 녀석들 말고 다른 녀석들에게 시선이 분산되었다. 게다가 색상에 따라 내장형 선글라스와 실드의 여부, 사이즈 등 선택해야 할 사항들이 늘어났다. 직원분의 원활하지 않은 영어실력 덕분에 번역기를 돌려가며 의사소통을 하느라 구매에 필요한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났다. 금방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시간을 대략 30분가량 남겨 놓고 가게에 들어간 우리는 제품 다시 고르고 사이즈를 맞추는데 2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자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결제하려는 카드가 안 먹힌다.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한국에서 만들어 간 여행 전용 카드가 이곳에서는 웬일인지 승인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부랴부랴 다른 카드들을 마구 꺼내어 닥치는 대로 결제를 시도해 보았다. 천만다행으로 그중 하나가 결제로 넘어가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결제를 마치고도 직원 하나하나 제품을 꼼꼼히도 포장해 주며 불필요한 무언가를 계속 입 밖으로 꺼내어놓았다. 마음이 촉박해지자 알아듣지 못한 직원의 말에도 '예스 예스'하며 대충 넘겼다. 괜히 번역기를 돌리려고 하면 시간만 더 지체될지도 모를 일이다. 버스 도착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제품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보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예정시간을 20분이나 지난 후에도 공항버스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늦었나? 그새 버스가 지나갔나? 버스를 놓친 거면 어떡하지? 택시를 타야 하나? 언제까지 기다려봐야 하지?' 온갖 무성한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할 때쯤 기다리던 버스가 고맙게도 나타나주었다. 가슴을 한 번씩 쓸어내린 우리 가족은 무사히 버스에 올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모든 일정을 스스로 계획했던 나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 안에서 지금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여행 짐도 풀기 전에 한 일은 헬멧에 사용할 블루투스 헤드셋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집사람과 함께할 취미이니 집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아주 오래전 오토바이를 타는 커플의 유명한 영상이 하나 있었다. 뒤에 탄 여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남자가 대뜸 "어. 나도 사랑해."하고 말해버린 장면이었다. 한두 번이야 웃어줄 테지만 반복되면 싫어할 테다. 아니 짜증 낼 테다. 블루투스 헤드셋을 구매하고 대만에서 가져온 헬멧에 부착했다. 집사람은 또 뭘 샀냐며 타박했지만, 이미 재미있는 장난감에 관심을 빼앗긴 나에게 타격감은 없었다. 부착을 완료하고 인터콤(서로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 기능) 테스트를 해보았다. 우선은 딸아이에게 헬멧을 씌워주고 작은방에 들여보낸 후 나는 안방으로 가 문을 닫고 '아빠 목소리 들려?' 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깜짝 놀란 딸아이가 안방으로 뛰어들어와 완전 잘 들린다며 소리를 지르자 집사람도 관심이 생겼는지 이례적으로 스스로 헬멧을 머리에 쓰며 테스트에 동참했다. 헬멧을 쓰고 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 본 집사람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헬멧 구매와 블루투스 인터콤은 대 성공이었다. 이제 빨리 날이 따뜻해져 둘이 함께 라이딩만 가면 모든 로망이 완성된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꽥꽥 아. 우리 조만간에 정분 한번 자!

작가의 이전글 9. 뜻밖의 데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