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정 Jan 26. 2023

10화. 제석거리 환생의 춤

제2부. 떠나가는 배 꿈꾸는 다락

  “천문이네 각시 말인디, 저 각시가 제석님네 딸애길까?”

  “뭔 말이래?”

  “아, 긍께 안 그렁가아. 인물이 곱다히서 행실이 근본이라는디, 인물 곱기로는 이 섬마을 통틀어 봐도 어디 저만헌 인물이 있겄능가?”

  “이, 인물로는 어디 가서 빠질 인물이 아니제.”

  “이런 사람은 거울을 있는 대로 닦어감서나 쳐다봐도 저런 인물이 안 날 것인디…….”

  “그람 뭣 히여? 그리봤든들 당골네밖에 더 허겄능가아?”

  “아따따. 뭣 땜시 또 그렇게 뿔따구가 난당가?”

  “뿔다구는 무슨. 말하자믄 그렇다는 것이제.”

  “당골네라 히도 어디 보통 당골넨가? 삼현육각 잽혀감서 굿을 히도 저렇게 소리 좋고 춤 잘 추는 당골네는 이 근방에는 없다든디.”

  “어지간히 굿 잘 헌다고 소문이 짱짱하든 시오매 저리가라허게 잘 헌다고 칭찬들이 자자허드만 그러네.”

  “그렁게 신랑 천문이도 저러고 따러댕김성 고인잽이 허고 그런 거 아니겄어? 저 잘생긴 얼굴에 키도 저만 허믄 적잖이 크고, 지 각시 위허기는 세상 더 없다든디.”

  “뭐언? 당골네 내력이 어디 각시 것인가? 천문이네 것이제. 천문이 안 만내고 다른 디 시집 갔으먼 저런 궂은일도 안 허고 손에 물 가시는 일도 없이 펜허게 살 것이고마는.”


  공론이 많다. 굿마당에 구경 나온 호상계꾼들 품앗이 삼아 콩이나 보리, 또는 드문드문 쌀도 가져와서는 얻어먹고 마시며 제 일처럼 상도 차리고 치우면서도 저희들끼리 모여 앉은 곳에서는 궁시렁궁시렁 말을 발라낸다. 여름이라 해도 밤은 이슬이 내리고 소슬한 바람이 일어 살짝 추위가 느껴지는 법인데 사람들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눈을 비벼가며 하품을 하면서도 쉽게 자리를 뜨려 하지 않는다. 공수마당의 점사도 궁금하고 신기한 것들 일색이지만 씻김의 굿마당은 그 호사스러움이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섬마을 사람들의 밤은 기울 만큼 기울어도 굿은 거꾸로 솟아 흥을 돋운다.


  왔나이다 왔나이다 중이 시주 왔나이다

  정월이라 대보름날 앉힐 것이 없어서

  중이 시주 왔소이다

  제석님 딸애기 허는 말이~~

  청상깨봐 내다봐라 무상깨봐 내다봐라

  청상깨비 하는 말이 어떤 중이 시주 왔나이다

  아버지도 없다 해라 어머니도 없다 해라 오라비도 없다 해라

  네 아버지 어디 가고 시주 줄 이 없다느냐

  어머니는 어디 가고 시주 줄 이 없다느냐

  오라비는 어디 갔냐~~

  아버지는 뒷동산에 화초구경 가시고

  어머니는 앞동산에 불공드리러 가시고

  오라비는 서울이라 지추달락 낙상가라 나라보양 가옵시고

  시주 줄 이 없다 해라

  아버지가 계셨으면 앞노적을 내 줄라냐

  어머니가 계셨으면 뒷노적을 내 줄라냐

  오라버니 계셨으면 곡간노적 내 줄라냐

  많이 주면 한 되요 적게 주면 한 홉이요

  흘러가는 냇물도 떠주면은 공 된단다     


  “어찌야 할끄나. 쌓는 것만을 좋게 여겨 덜어주는 것을 마댔더니, 그것이 죄가 되었는가부다. 흘러가는 냇물에 주인이 어디 있으며, 주인이 없는 공것인데, 그것도 한 박적 떠주면 공이 되고 덕이 되어 복으로 쌓인다는데, 아버지 화초구경 가고 어머니 불공드리러 가도, 오라비 나랏일에 이름이 드높아도, 지나가는 대사 알아보고 시주 줄 리 없다는데, 어찌할끄나. 누더기 걸쳐 입고 한 끼 걸식하는 걸인이야 한 홉인들 닿았겠느냐. 그까짓 공 것, 찬물이라도 한 박적 닿았겠느냐. 죄로다. 죄로구나. 그 깊은 누대의 죄가 너에게 닿아 오늘 너는 씻어내고 닦아내는 자리에 앉았구나.”     


  “그렇다고 너무 설워 마시게. 자네의 대대로 빛나는 가문을 위해 울어주고 빌어주던 천한 피가 지금 자네 뒤에 앉아 하늘의 소리를 듣고 올리는 자리에 있으니, 그의 아낙으로 업혀온 자네가 오늘은 버리덕이의 영광을 입고, 제석님의 딸애기 영화를 입고 섰지 않은가? 제석님의 딸애기 어쩔 줄 모르고 아버지 은밥그릇 은복게 내주는 공덕으로 시주를 하려 했으나 받지 않고, 청산깨비 무상깨비 명을 받아 주려던 시주도 받지 않으니, 다만 팔목 삼세 번 꺾어 쥐어보고 흔적 받고 표적 받은 딸애기 제석님네 아들 낳고 딸 낳게 되지 않았던가.

  여보게 정읍네, 자네 꽃다운 열여덟에 청상 되어 스물 꽉 찬 나이에 그 집에서 쫓겨 나와 친정으로 돌아가서 양잿물 앞에 두고 ‘마셔라’ ‘더 볼 것 없는 세상 미련을 두지 말고 가거라’ 소리 듣던 스물하나 그 어느 하루를 잊지 못했을 것이네만, 어쩐다고 칠보에까지 나가 그 물 한 그릇을 사 왔을꼬, 두고두고 그날, 칠보 장날을 잊지 못했을 것이네만, 그날의 오라비도 가슴에 생채기가 나서 밥알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삶을 살았더라네. 눈물 삼켜 피로 토해내며 꾸역꾸역 살아냈드라네. 여보게 정읍네, 오늘에 이르러 자네의 정성을 받고 보니 나 죽은 몸이 혼백으로 감사하네만 자네에게 줄 것이 마땅히 없으니 그것이 한이로세.”     


  어머님이 하신 말씀~~

  집터 명당 잡을 적에 길 위에 성주허면 중의 아들 낳는다 하고

  길 아래 성주허면 중의 딸을 낳는다 허기에 길 아래 성주허니

  중 사위가 나왔구나~~

  부모 자식 간에 배 가르고 목 자르겠느냐

  칠흑 같은 밤이 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절 찾아 가라하자


  큰 법당 뜯어다가 큰채 몸채 지어놓고

  작은 법당 뜯어다가 사랑몸채 지었으니

  어찌 아니랄 좋을 소냐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나나나나~~~나나나나난~ 릴리리이 리이릴리 리이리이~~

  넋이여~~넋이여~~ 이이이이이~~이이~~

  열두 칸 기와집을 헌신같이 버려불고 아홉 칸 대문 앞을 썩 나서니

  나나나나~~나나나나 나나나~~

  흐르나니 눈물이요 한탄하니 한숨이라

  어디 절로 찾아갈거나~~     


  천문이의 바라지 소리 서글프게 높아지는 마당에서 소희가 춤을 춘다.

  소희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두 팔을 높이 뻗어 올려 합장하여 내려 모으고는 허리를 반으로 꺾어 절을 한다.

  그리고는 고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 내려앉아 땅으로 퍼지고 땅으로 퍼진 물결 오른쪽으로 흐르고 왼쪽으로 흐른다. 둥그렇게 말린 여인의 하얀 등이 조개처럼 솟고, 그 등은 다시 솟아올라 퍼지다가 여울진다. 스러지듯 가라앉은 물결은 움푹 솟다가 다시 스러지고 손은 땅으로 쓸리는 물의 소리를 들으며 종을 부여잡고 일어선다. 천문이의 바라지 애달픈 소리를 동구 밖 멀리에서 들으며 일어서려는데, 못 오지야~ 못 오지야~ 구슬픈 설움이 귀에 걸린다. 가슴을 쥐어짜는 소리로 땅 속을 파고드는 가슴애피 한 중발을 종소리 한 번에 올리며 일어서려다 잦아지고, 다시 한번 종을 울리며 일어서려다 잦아진다. 삼세번에 이르러서야 가슴을 뒤로 잦히고는 종을 하늘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며 일어선다.

  용의 눈물인가. 한의 뿌리인가. 그리도 깊이 서렸던가. 하얀빛 여인의 가녀린 몸뚱이가 좌르륵 쏟아지는 눈물의 포말에 젖는다.

  그대로 한 마리의 학이 되어 날려한다. 난초 잎사귀 사이에 피어난 꽃을 잎잎이 날리며 양 옆으로 퍼지는 쾌자의 자락은 숨 막히게 고요하던 바닷물에 떨어지지 않으려 붙잡고 애원하던 하얀 물체를 기어이 떨어뜨리고 마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하늘로 솟던 한 마리의 학이 아니던가. 커다란 깃털을 접었다 펼치며 천천히 맴을 돈다. 부드럽게 돌며 바람을 일으키더니 그 바람에 신을 싣는다. 두리둥실 솟는 바람을 타고 돌아간다. 굿잔치 마당에 둘러앉은 제석님네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술잔을 잡았던 손이 순간 멈춘다. 숨소리마저 들려오지 않는다. 일순간의 정지. 환생의 춤 속에서 팔월의 밤은 고요하게 깊어간다.

  몰두하던 눈빛들이 손뼉을 친다. 고요의 맥이 끊긴다. 환호성을 지른다. 연꽃 모자 눌러쓰고, 쾌자자락에 감추어진 치마의 폭을 들어 올리며 순백의 학이 되어 춤을 추던 소희가 숨을 몰아쉰다. 사방을 보고 절을 한다. 잠시 쉬미(쉼) 속으로 걸어간다. 길은 아직 멀고 두고 떠난 님은 다시 오지 않는 밤, 소희는 천문이의 여자다.  


*대문사진: Daum 이미지에서 퍼옴

                     

매거진의 이전글 9화. 신과 함께 성주풀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