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 암막 커튼을 새로 달았다. 이미 달려있는 화이트 시폰 커튼은 속 커튼 역할 정도로, 동향인 우리 집에 새벽녘부터 들이치는 따가운 햇빛을 전혀 차단해 주지 못했다. 애초에 암막 커튼을 겉 커튼으로 같이 달았으면 되었을 텐데 미련하게 일 년을 넘게 참고 살았다.
커튼을 새로 달기 위해 기존 레일을 떼어내고 이중으로 다시 다느라 여동생과 키 작은 여자 둘이 개고생을 했다. 힘이 달려 커튼 박스 안에 드릴을 한 번에 못 밀어 올려서 여기저기 시도하다 애먼 구멍만 10개를 넘게 만들고, 커튼레일을 끼우는 브라켓이 대자, 소자 구분이 돼 있다는 것을 몰라서 톱밥 마셔가며 애써 박은 나사를 조였다 풀었다 생쇼를 했다. 전문가가 와서 눈대중으로 드르륵 박았으면 10분도 채 안 걸렸을 텐데, 한 시간 반 여를 목이며 팔이 떨어져라 올려다보며 작업을 하니 천장화 그리는 미켈란젤로가 된 것 같다는 아무 말이 나왔다.
동생은 이제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않겠다 했지만 고생해서 이룬 결과물은 꽤 훌륭했다. 커튼을 쳤을 때 구김 없이 물결치는 모양을 위해 나비 주름을 택하고, 만 원을 추가해 형상기억 다림질 옵션을 추가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 집 호랑이 래미는 커튼을 거대한 대형 스크레처 정도로 인식한 것 같다. 아침에 뭔가 긁는 소리가 나 또 침대 매트리스 모서리를 긁고 있나 했는데 새로 단 커튼을 넝마로 만들고 있었다. 하필 갈고리 같은 고양이 손톱에 걸리기 딱 알맞은 약간 굵은 직조물이라 손맛이 좋아 착착 잘 감겼는지 왼쪽 오른쪽 골고루 야무지게도 긁어놓았다.
양옆 위아래 사방을 당겨서 팡팡 펴니 올이 나간 자국이 없어지진 않지만 오그라진 부분은 대충 펴진다. 실밥이 튀어나와 너덜너덜해지고 빵꾸가 난 부분도 보이지만 너무 속상해하지 않기로 했다. 커튼을 걷어 놓으면 주름에 가려 표시가 잘 안 나고 커튼을 치고 자는 어둔 밤에는 어차피 아무도 커튼을 보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어느 부분이 누더기가 되었는지 알고 있을 뿐이다.
무릇 암막 커튼이라 함은 그 이름에 걸맞게 햇빛만 잘 막아주면 된다. 내일 또 신나게 걁걁해 놓으면 팡팡 펴면 될 일이다. 과거의 내가 더 비싼 커튼을 달려고 욕심내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