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또 때문이라니
강남에 있는 교보문고 바로 옆 골목길에 20년 가까이 영업 중인 멕시코 음식점이 있다. 인근에 밀집한 외국어 학원에서 일하는 원어민 강사들을 주로 상대하는 곳이라 그런지 제법 이국적인 맛을 내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파는 감자 브리또를 특히 좋아했다. 갖은 야채와 콩, 쌀밥, 구운 감자를 부드러운 또띠야가 감싸고 있고, 살사 소스와 고수의 조합도 일품이었다. 20대 초반의 뚜벅이 시절, 아무런 약속도 없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그 브리또가 생각나 강남역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신논현역이 없었다!)
브리또를 사기 전 항상 행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바로 옆 교보문고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것이었다. 서점 입구에 자리한 잡지 코너에서 신간을 들춰보다가 소설/에세이 코너를 지나 취미/실용 매대에서 디자인 서적을 살필 때면 어김없이 2-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핫트랙스에서 1시간 정도 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 커버를 구경하면 적당히 허기가 지면서 좋아하는 감자 브리또를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이상하게 서점에 있으면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갔다.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사고 싶은 책이나 음반이 없어도 한 달에 1-2번 이상 서점을 찾아다닌 건 정말 그 브리또 때문이었을까?
20대 중반 대학교 재학 시절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 기회가 있었다.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지 않던 나는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보다 이틀 정도를 더 도쿄에서 혼자 머물렀다. 도쿄타워, 시청 등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마지막 날에는 렌터카를 몰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당시의 나는 초보운전에 가까웠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스스로의 가능성에 놀랐다. 앞으로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 발로 직접 여기저기 찾아다닐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서 곧 자차를 마련했고, 시내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교보문고는 이동 동선의 바로미터가 되어주었다. ‘실버 회원’ 등급은 교보문고 주차장을 무료로 2시간씩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씩 일찍 교보문고에 도착해서 책이나 음반을 둘러보며 약속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역시나 시간은 빨리 흘렀다.
디자인에 염증을 느끼던 20대의 끝자락, 커피 사업을 준비하며 안성에서 잡곡 장사를 하는 아버지를 도운 적이 있다. 아버지의 장사는 무척 고됐다. 하루 4-5시간 이상은 잠을 잘 수 없었고, 한포에 3-40Kg 하는 무게의 잡곡보다 힘들었던 건 아버지의 막무가내였다.
한 번은 지시대로 인천에서 적재량 800Kg의 스타렉스에 참깨를 50포 넘게 싣고 창고로 돌아온 적이 있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빠져 창고에 다다를 즈음 옆 차가 빵빵거리며 갓길로 차를 대라고 신호 보내길래 속도를 줄이며 차선을 변경하는 순간, 뒷타이어가 터졌다. 옆 차의 경고가 아니었으면 과적으로 더 큰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잡곡 포대를 짊어져야 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육체적인 힘겨움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때에도 교보문고를 찾았다. 천안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 안에 크지 않은 교보문고가 있었는데, 그나마 내가 있던 안성과 가장 가까웠다. 그곳에 간다고 딱히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책더미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해소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시간을 빨리 흘러 보낼 수 있었다.
그다지 굴곡진 인생은 아니었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마음이 답답할 때, 시간을 빨리 보내고 싶을 때와 같이 크고 작은 청춘의 너울마다 어김없이 서점을 찾았다. 그곳은 택배 상자에 끼워 넣는 에어캡처럼 흔들리는 내 청춘의 완충 역할을 해주었다. 없어도 그만이지만 큰돈 들지 않는 그 뽁뽁이 덕분에 조금은 더 무사히 20대를 보낼 수 있었다.
탁 트인 바닷가를 보러 가듯 가까운 서점에서 언어의 백사장을 거닐었다.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은 문장과 낱말들을 보고 있으면 사유와 고민의 깊이가 아주 조금씩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힘들 때마다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그런 시간들의 적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넓디넓은 백사장에,
나의 낱말과 문장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