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마무리된 여정
시간은 빠르게 지나 1년 교환학생 생활도 모두 끝이 났다. 지난 가을학기를 마지막으로 UCSD와 안녕을 고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1년이면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먼 타지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질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한국행 비행기를 끊고, 다가오는 귀국일을 미뤄둔 채 북미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미국에 머무르던 비자는 J1 학생 비자로 내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종료되는 날까지, 그러니까 UCSD의 학기가 끝남과 동시에 소멸되는 비자였다. 미국 입국심사를 2초 만에 끝낼 수 있는 안전하고 든든한 비자였지만 유기한적이다. 비자가 소멸되면 한 달의 Grace Period가 주어지고, 그 이상이 지났는데도 미국에 있는다면 그대로 불법체류자 행이다. UCSD의 가을 학기는 12월 10일까지였고, 내 비자 역시 그날까지였다.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1월 10일 전에 나는 미국을 떠나야 했다.
교환학생으로 1년간 샌디에고에서 지내다 보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이유는 붙이기 나름이지만, 한국에 돌아가기 싫은 것과 미국에 더 있고 싶은 마음 중 어떤 게 더 컸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든 미국에 더 있기 위해 노력했다. 캐나다나 미국을 다녀온 뒤 미국 관광비자인 ESTA로 3개월까지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애초 계획했던 예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사용해 무노동으로 체류할 돈이 없었다. 마지막 학기였던 가을 학기에는 당장 생활비가 없어서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또 현실적으로는 한국으로 돌아가 졸업을 해야 하는 시점에 미국에서 관광만 하며 시간을 보내기는 부담스러웠다.
이 상황에서 J1 교환학생 비자를 안전하게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Academic Training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오게 되는 경우라면 학교에 관계없이 모두 가능한 것으로 안다. Academic Training은 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비자 만료 이후 최대 1년까지 인턴쉽을 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학생이 자신의 전공과 유사한 인턴을 자발적으로 구한다면 학기 중에는 주 20시간 미만, 방학 중에는 주 40시간 풀타임 근무를 할 수 있고 무급과 유급 인턴쉽 모두 비자 연장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난 당장 생활비도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유급 인턴을 구해야만 했다.
고작 학부 3학년인 나는 한국에서도 인턴 경험이 없었고, 미국에서 일한 경험이라고는 가을학기에 시작한 학교 식당 아르바이트뿐이었다. 비자 연장 프로세스를 밟기 위해서는 11월 안에 잡오퍼를 받아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조금만 더 빨리 AT제도를 알아보고 준비했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UCSD의 가을 학기는 9월 셋째 주에 시작했고, 나는 그때부터 학교 커리어센터의 도움을 받아 영문이력서인 Resume와 영문 자기소개서인 Cover Letter 작성을 시작했다. 커리어센터로부터 세 번의 첨삭을 받았고, 실제 완성된 Resume로 인턴에 지원하기 시작한 건 10월 중순이 지나서였다.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나는 약 70개의 인턴쉽에 지원했고 총 5번 면접 기회를 얻었다. 그중 최종 면접에 오른 건 단 한 번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턴 기회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인턴을 구하기 위해 정말 고군분투하던 10월과 11월이 지나고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결제하던 때에, 많이 아쉬웠다. 미국에 더 있지 못해서 아쉬웠고 인턴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스스로도 쉽지 않은 도전임을 알고 있었지만 못내 씁쓸했다.
해외에 합법적으로 장기간 체류한다는 것이 내 인생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그중에는 미국에서 일을 하는 경험도 포함이었다. 내 영어가 어디까지 써 먹히는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미국이 살기 좋은 나라인가를 판단하는 데 교환학생 신분은 더없이 편파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지난 1년처럼 학점 걱정 없이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으며 놀러 다니는 현실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사회에 조금 더 녹아들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나처럼 이곳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그 현실을 잠깐이나마 살고 싶었다.
인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분명 스스로 성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어 면접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고, 미국의 채용 과정도 엿볼 수 있었고, 그래서 내가 정말 미래에 미국에서 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만족스러운 결과도 따라왔다면 좋았겠지만, 이번에는 이만 만족해야 했다. 두려움과 긴장보다는 설렘과 자신감으로 이 과정을 보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취준’을 시작할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이 과정으로 스스로 성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니까 내게 다가올 나중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