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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현 Mar 17. 2022

다인종의 국가, 그만큼 다양한 인종차별

이 정도면 차별도 정성이다

미국에서 생활한 지 두 달이 막 지나가고 있다. 유럽도 아니고, 미국 내에서도 캘리포니아 지역은 인종 차별이 심하지 않다고 들었었다. 그래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역시 없을 수는 없나 보다.


미국 내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 LA 한인타운과 고작 차로 두세 시간 떨어져 있는 샌디에이고는 그 자체로도 동양인 비율이 굉장히 높다. 그래도 역시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 계 사람들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지역에서도 인종 차별은 존재했다.


룸메이트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을 때, 중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애들이 "니하오"를 크게 외치며 지나갔다고 했다. 보드 워크 저 끝에서부터 룸메이트를 본 그 남자애들은 동양 여자애를 인종 차별하기 위해서 그 긴 길을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전력 질주하며 달려와 차별적 언어 한마디를 크게 외치고 깔깔거리며 좋아했다고 한다.

다른 룸메이트는, 스타벅스에서 $3.15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지만 5달러 이상의 음료를 마셔야 했다. 영어를 못하는 친구도 아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걸 못 알아들었을 리 없다. 심지어 직원은 몇 번이고 친구의 주문을 확인했다고 했다. 친구는 결제 당시에 금액이 높아서 의아했지만,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설탕과 크림이 잔뜩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는 전혀 다른 음료를 받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어제 컨버스를 구경하다 신발을 신어보고 있었는데, 한국말을 하는 나와 친구 옆으로 온갖 외계어를 크게 외치며 지나가는 백인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매장 안에서 우리 근처를 맴돌았고, 계속해서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기 바빴다. 딱 봐도 중학생 정도 되어 보였는데, 벌써부터 이런 행동을 정성 들여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니하오 정도는 예상했던 바지만,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차별해주다니. 그 더운 날에 긴 보드워크를 쉼 없이 달려와주고, 그 쉬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다하고 직접 제조 음료까지 만들어주며, 볼 것도 없는 매장에 굳이 들어와서 우리를 주시해주다니. 대단한 정성이다.


미국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밝고, 관대하다. 내가 미국에 와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정말 좋은 친구들이 많고 아름다운 도시지만, 이런 몇 가지 순간들이 정말 그간의 모든 좋은 기억에도 먹칠을 한다. 이렇게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할 때는 오히려 덤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차별은 얼마나 더 많고 더 다양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백인 남학생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할 때, 난 내 영어가 너무 알아듣기 어려운 걸까 아니면 낯을 많이 가리는 친구일까 생각했다. 놀러 나갈 때마다 들려오는 캣 콜링은 기분이 나쁜 정도를 넘어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차별에 노출되다 보면, 차별에 더욱 예민해진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환경에 처할 때, 아직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차별을 당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긴장하게 된다. 그럼 건강한 관계는 있을 수 없다. 나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문제인데, 자꾸 나만 조심하는 느낌이 들어 더욱 기분이 상한다. 당장이라도 세상이 반대로 뒤집혀 모든 안 좋은 것들이 한순간에 털어지고 아름다운 세상만 남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동화 속에 살고 있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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