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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Aug 03. 2018

훔쳐서라도 얻고 싶었던 가족에 대하여

영화 <어느 가족>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한 라이브톡 후기


“지난 2월, 실종됐던 쥬리양이 도쿄의 한 집에서 발견됐습니다. 쥬리양은 할머니와 40대 중반 남녀, 그리고 10대 두 명이 살던 집에서 반년간 지내고 있었는데요. 일견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은 서로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었으며,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종종 아이들에게 도둑질을 시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가족인 척 하던 자들이 무슨 목적으로 모여 살고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뉴스 리포트로 재구성해보았다. 약 100자로 요약된 이들의 사연이 포털 뉴스로 올라가면 어떤 댓글이 달릴까. 아이들에게 도둑질을 시킨 부모는 천벌을 받아야 한다 는 등 정의감 넘치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속한 이 세계가 선과 악으로 나뉠 수 있는 평면적인 곳이더냐고.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후의 마트, 중학생 정도 돼보이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어 꾀죄죄한 어른 남성이 등장. 둘은 마트 안을 배회하다 싸인을 주고받는다. 아이가 물건 앞에 서자 남자가 점원의 시야를 가린다. 그사이 아이는 컵라면을 가방안에 담고 둘은 유유히 마트를 빠져 나간다. 국내에선 <어느 가족> 이란 이름으로 개봉한, <만비키가족まんびきかぞ(도둑질 가족)> 은 이렇게 시작된다.


 할머니, 엄마, 아빠, 언니, 남동생. 이 가족 중에 피가 섞인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모여 살던 다섯명의 집에 막내 유리가 들어오며 영화가 시작된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쇼타와 아빠는 추운날 밖에서 놀고 있던 유리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온다. 저녁을 먹이고 다시 데려다주러 가는 길, 유리의 집앞에서 부모가 “나도 낳고 싶지 않았다고!” 하며 싸우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듣던 노부요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다시 유리를 집으로 데려 온다.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은 할머니의 집이다.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의 죽은 남편 집. 할머니의 남편은 생전에 바람을 펴서 새 가정을 꾸렸고 죽은 남편에게서 받는 위자료로 할머니는 살아가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각각 다림질 공장과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 아이들-그러니까 쇼타와 유리는 낮에는 도둑질을 한다. 마트에서 자신들이 먹을 간식 혹은 가족들이 필요하다고 한 샴푸와 라면 등을 사는 것이다. 큰언니 아키는 성인샵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선택받은건가
-보통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스스로 선택하는 편이 강하지 않을까요
-뭐가?
-유대라든가 정이라든가.
-내말이 맞죠?
-오래 가지 않을거야
-피로 이어지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어요
-괜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건 좋지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선택한 반면, <어느 가족>에서는 아이가 가족을 선택한다. 그리고 가족을 깨어버리는 선택 역시 아이들이 한다. 일견 쇼타와 유리는 성인들에 의해 험난한 바깥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 분명히 아이는 의지를 지니고 결단을 내린다. 유리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었으나 계속 머무르기를 분명하게 선택한다. 또 노부오와 오사무는 스스로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만 유리와 쇼타는 끝내 엄마,아빠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자신의 원래 부모가 있었음을 인지하고 그들에게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유리가 가족이 된 이후로 쇼타의 세계는 크게 세 번 흔들린다. 오사무가 유리에게 첫 도둑질을 시킬때, 야마모토 상점 주인이 여동생에겐 도둑질 시키지 말라고 할 때, 오사무가 남의 차 유리창을 깨고 도둑질을 할 때.  


쇼타가 처음 도둑질을 하며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자신의 윤리관이 흔들렸을 때는 어떻게든 자기합리화를 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했던 말처럼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라고 했을 수도 있고, '이 집에 내가 무엇인가 도움이 되겠다'는 책임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섯살내기 유리에게 도둑질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은 혼란스럽다. 비윤리에 자신이 가담하고 있음을, 자신이 속한 세계가 비틀려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가족> 라이브톡에서 "죄의식은 아이가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쇼타의 세계가 처음 흔들린 것은 야마모토 상점에서다. 유리가 언제나처럼 도둑질을 하고 나가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불러세운다. 주인은 둘에게 사탕을 건네주면서 "여동생에겐 시키지 마라" 고 말한다. 주인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도둑질을 다 알면서도 모른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쇼타는 사과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쇼타는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느끼고 이 일을 아빠에게 말한다. 그러자 아빠는 ‘음 유리에겐 아직 그런 일 시키기엔 어리지’ 하고 대강 대답하고 만다. 자신을 포함해 이 가족이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는데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것이다.

쇼타는 내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세번째 흔들림을 겪고 완전히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부모가 죽은 할머니가 남긴 돈을 세며 좋아하는 모습 역시 확신을 더했을 것이다. 내가 속한 세계가 틀렸구나. 이 가족과 계속 살아가는건 스스로를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유리 역시 불완전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구나. 어느날 유리가 마트에서 또 도둑질을 하려 하자 쇼타는 일부러 마트에서 소동을 피우며 물건을 훔치고 붙잡힌다. 쇼타로 인해 이 가족 역시 경찰에 발각된다. 유리를 유괴한데다 할머니의 시신을 유기했다는 죄목과 함께.


쇼타가 새로이 마주할 세계라고 해서 녹록치 않을 것이다. 쇼타는 학교를 다니게 되고 부모 없이 보호 시설에서 생활해야한다. 예전처럼 아빠와 린과 장난을 치며 놀던 시절은 스스로의 손으로 끊어버렸다.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는 죽을 때까지 모른다. 다만, 쇼타가 스스로 성장하기를 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의 명암과 죄의식과 선택에 대해 배우면서.


버리지 않았어요
누군가 버린 걸 주운거라고요
버린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쇼타가 행복하지 않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원래 가족에게서 버려졌던 이들은 서로를 만남으로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됐다.


쇼타는 지금도 예전처럼 라면 국물에 고로케를 찍어 먹는다. 린은 노부요와 함께 불렀던 노래를 혼자 있을 때 지금도 부른다. 새로운 엄마에게서 사랑한다면 때리지 않는 대신 꼭 안아준다는 것도 배웠다. 노부요는 자신 역시 가정폭력의 경험이 있었기에 린의 상처를 알아봤고 또 치유 받았다. 노부요와 오사무는 이 아이들과 함께하며 그토록 바랐던 엄마와 아빠가 될 수 있었다. 이 가족은 함께 바다를 처음 만났으며, 보이지 않는 불꽃놀이를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을 쌓았다. 다만, 왜 도둑질을 시켰냐는 형사의 물음에 답했듯 오사무가 아버지로서 가르쳐줄 것은 도둑질 밖에 없었을 뿐이다.

 

이 가족이 경찰에 붙잡히고 난 이후 취조씬을 통해 가족의 모든 관계가 밝혀지고 서로의 진실을 알게 된다. 취조 장면은 시종일관 따뜻하던 영화의 톤에 비해 유난히 서늘하다. 감독이 일부러 그렇게 연출했다고 한다.  

“형사의 질문은 일부러 건조하고 상처주는 질문들로 구성했다. 우리가 영화 속의 가족을 만나면 아마 같은 태도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의감이나 분노같은 태도로. 질문들을 보며 ‘저건 좀 너무하잖아’ 하고 느끼도록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씬 역시 엄마, 노부요의 취조 장면이다. “엄마란 존재가 부러웠나요?” “낳지 않으면 엄마가 될 수 없죠”라는 날선 물음들에 노부요는 내내 스스로를 변호하다가도 “아이들이 뭐라고 불렀나요?”라는 질문에서 “글쎄.. 뭐라고 불렀을까요.”라며 눈물을 터뜨린다. 이때 노부요 역시 무언가를 깨닫고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노부오는 진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오사무가 아이들 앞에서 마술을 보여주면 노부요는 아이들에게 속임수를 알려준다. 쇼타가 마술의 속임수를 알고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정말 별 것 아니구나..’ 형을 살게된 노부요는 쇼타와의 면회 시간에 쇼타를 처음 발견했던 장소를 알려주며 원한다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로서 그동안 '엄마'로서 맺었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쇼타를 보고 '안녕-'하던 그녀의 웃는듯 우는듯하던 얼굴. 아마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란 예감이 든다.


고레에다 감독이 라이브톡에서 들려준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마지막 취조 장면은 애초에 대본이 없었다고 한다. 형사 측에서 던질 질문만 감독이 화이트보드에 써서 보여주고, 배우들은 즉석에서 답을 해야 했던 것. 그러니까 모두가 이 영화에서 최고로 꼽는 노부오의 눈물 연기는 안도 사쿠라씨의 즉흥 연기였던 것이다. 감독 역시 안도 사쿠라씨가 눈물을 펑펑 쏟을지는 몰랐다고.


또, 엄마와 쇼타가 집에 가며 나누는 대화는 안도 사쿠라씨의 질문으로 추가된 장면이다. 안도 사쿠라씨가 촬영 중에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아빠는 쇼타에게 아빠라고 불러보라고 계속 하는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라고. 이때 감독은 표면적으론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은데요, 라고 말했지만 이 질문이 흥미롭다고 생각해 새로이 장면을 추가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장면이 노부오가 쇼타와 길을 걸어가며 '엄마'라는 소리를 듣고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이다.  

아이를 안은 엄마를 질투하던 노부오, 일자리를 포기하면서도 유리를 지키려던 노부오. 엄마가 되고 싶었던 노부오의 캐릭터가 가장 슬펐고 기억에 남았다.  

“고로케 장면이나 할머니의 빠칭코 장면은 이 가족이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하는게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럼 뭘까, 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 가족이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했다.”


"이 미소 정말 멋지지 않았나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인간이 인간에게 치유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인간의 선의를 보여주다가도 서로에게 돈을 기대하고 시체를 매장하는 서늘함을 갖춘 것 역시 인간이라고 이 영화는 얘기하고 있다. 세계의 서늘함을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저버리지 않는 고레에다 감독의 세계관이 이 가족의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잘 녹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한 선의들 때문에 많이 울었다. 이 영화를 보고 그가 바라보는 세계를 동시대에서 함께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쁘고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고레에다 감독이 라이브톡을 마치며 했던 말로 이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들 이번 영화가 고레 감독의 집대성이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겐 넘어야할 언덕이 많다. 그 언덕을 열심히 넘고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들려준 사족 3


1. 가족이 다같이 바다로 간 씬에서 할머니는 죽음을 예감하고 (다들 고마웠어) 입모양으로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전 영화에선 본 적이 없는 연출이라 뭔가했는데, 기키 키린 씨의 즉흥 연기였던 걸로. 할머니가 죽음을 앞둔 장면을 크랭크인날 찍은 것. 그러니까 촬영 첫날인 것. 편집하는 과정에서 보니 기키 키린이 뭔가 입을 움직이며 대본이 없는 대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계속 촬영이 되는 줄 모르고 음성 녹음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소리가 없는 대사를 한 건지는 모르지만 그게 좋아서 그냥 넣었다고 한다.

2. 취재차 아동보호시설에 방문한 적 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스위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체를 낭독하고 짓던 표정이 멋져서 쇼타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불꽃놀이 소리만 듣는 장면에선 작은 물고기들이 위를 바라보도록 부감으로 찍어달라고 촬영감독에게 요구했다고.

3. 영화의 모티브를 묻는 질문에, 고레에다 감독은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혈연인가 시간인가’라는 주제를 계속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 와중에 감독은 좀도둑질을 하며 살던 가족의 뉴스를 보게 된다. 가족 전체가 도둑질에 가담했으며 이제까지는 도둑질을 하는 족족 현금으로 바꿔서 걸리지 않다가, 팔지 않고 뒀던 낚시대가 추적 끝에 걸린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뉴스를 보며 ‘낚시대는 왜 안 팔았을까. 낚시를 좋아하는 가족이었을까’라고 생각하다가 만비키 가족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했다.

동블리 X 고레상 사랑스러운 두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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