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레이리스트 #10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무려 19년 전, 그러니까 2001년 작품이다. 관객은 28만 명 정도 모았다.
주인공은 설경구와 전도연. 한미은행(現 씨티은행)에 다니는 설경구는 영화 속에서 33세의 '노총각'이다. 결혼이 너무 너무 하고 싶은 그는 아직 누군지도 모르는 미래의 신부를 위해 캠코더로 영상 메시지를 녹화한다. 자기보다 먼저 장가가는 친구한테는 진심으로 짜증을 낸다. 그 정도로 결혼을 원하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진희경과 잠시 썸을 타기도 했던 설경구는, 그러나 결국 은행 옆 보습학원 선생님인 전도연과 눈을 마주친다. 둘은 데이트 초반부터 설경구 혼자 사는 집으로 간다. 집안에서도 과일을 깎아 먹으며 아내의 의미에 대해 대화한다. 소위 말하는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다.
결혼이라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영화는 풋풋하게 그려냈다. 19년이나 지난 이 작품을 지금 거론하는 이유도 바로 풋풋함 때문이다. 결혼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 정도의 청초함을 유지한 건 아무리 봐도 이때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충무로는 이듬해인 2002년 곧장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내놓는다. 2007년에 이르면 두 쌍의 부부가 서로 다른 짝을 향해 가는 작품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까지 나온다. 2015년엔 간통죄가 폐지됐다. 돌이켜 보면 2001년은 21세기의 시작이었을 뿐 아니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 난 원년이기도 했다.
이제 2020년으로 돌아오자. 영화 속 설경구가 여전히 은행에 다니고 있다면 52살이 된 지금은 부장쯤 됐을 것이다. 아이는 중학생일 확률이 높다. 풋풋하게 시작됐던 이들의 결혼생활은 지금 어떤 지점을 지나고 있을까?
은행권을 직접 출입하면서 만나본 이 연령대 '설경구'들이 결혼 예찬론을 펼치는 경우는 유감스럽게도 많지 않았다. 결혼생활 얘길 하더라도 아내보다는 주로 애들 얘기를 한다. 실례를 무릅쓰고 아내에 대한 얘길 물어보면 반응은 대략 아래와 같다.
"아내와는 한 '팀'이죠. 사랑이랑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아내요? 글쎄요 만난 지가 오래 돼서…. 물론 사, 사랑합니다."
"너무 힘들 땐 어떻게 하느냐고요? 가끔 아내에게 비밀로 하루짜리 휴가를 씁니다. 아, 근데 이 얘기 아내한텐 비밀입니다. 절대 말씀하시면 안 돼요." (그분 아내를 내가 만날 리 만무함에도 이런 당부를 한다.)
위 멘트들은 전부 실제로 들은 얘기들이다. 탓하려는 의도는 없다. 결혼은 미친 짓이란 얘길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결혼 만족남'들도 분명히 어딘가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엔 철을 소화시키는 사람도 있는데 결혼에 만족하는 유부남 하나 없겠는가?
다만 이들 '결혼 선배'들이 점심시간에, 회식 중에, 퇴근길에 후배들에게 하는 결혼에 대한 조언 내용을 들어보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와는 딴판이 됐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최대한 늦게 하거나 심지어 아예 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쪽으로 논점이 표변한 것이다.
"마흔까지 버텨. 요새 말로 존버라고 하나? 마흔 돼도 사실 안 해도 돼. 근데 그때까지 안 하면 주변에서 좀 측은하게 보잖아? 그러니까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같은 말에 반쯤 속아주면서 그때 만난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지. 그게 가장 좋은 전략(?) 같아."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다던 그 시절의 '설경구'들에게 20년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유는 슬플 정도로 간단하다. 삶이 너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성장률이 너무 낮아졌다. 성장률은 단순히 그래프만 꺾어놓는 게 아니다.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희망'을 함께 부러뜨린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누구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설령 용이 된다 한들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으면 인간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는 바로 그 희망이 결여돼 있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얼마나 부족한지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위상과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19년 전 영화 주인공이었던 설경구와 전도연은 여전히 충무로 최고 배우다. 심지어 둘이 부부로 나오는 '생일'이라는 영화가 작년에 개봉했고, 전도연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탔다. 그들은 여전히 톱이다.
영화계만이 아니다. 19년 전 최고의 사회자였던 유재석은 지금도 1인자다. 19년 전 최고의 인기 가수들을 배출했던 SM, YG, JYP는 여전히 3대 기획사로 손꼽힌다.
20년 전 잘 나갔던 선배들이 지금도 쌩쌩하다는 사실은 큰 틀에선 좋은 일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후배들이 전성기를, 인생의 스포트라이트를 어느 정도 유예 당한 것도 사실이다. 그 뿐인가? '어른 대접'을 받는 나이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33세 남성을 노총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45세까지를 청년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2030은 육체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애'다. 어른의 몸을 가졌지만 사회적 역할론에선 여전히 동생이길, 후배이길, 아이이길 요구 받는다.
후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선배들은 그다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요즘 애들'은 삶의 환희도, 고통도, 시행착오조차도 전부 어른들에게 뺏겨 버린 채 딱딱한 콘크리트 속에서 박제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그 콘크리트 주물이 굳기 전에 이름을 새긴 사람들만이 운좋게 역사에 기록될 특권을 얻었을 뿐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글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부터 되찾는 게 순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