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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우씨 Jul 28. 2020

혼자도 너무 많아 - 결혼 이야기

영화플레이리스트 #11

다시 결혼 이야기다. 결혼에 대한 격언(?) 몇 개를 읽고 시작해 보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옛날에는 웃겼는데 (결혼 후) 평범한 아저씨가 돼버린 코미디언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역시, 나에게 결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 코미디언 마츠모토 히토시, 결국 결혼했는데 더 잘 나감


“결혼은 강요된 의무가 되어선 안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랑이다. 요즘처럼 한 치의 양보 없이 싹둑싹둑 칼로 무 자르듯이 하는 남녀 관계는 정말 재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부터 끈적끈적한 사이니까 좀 더 끈적끈적 달라붙어야 한다.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일본 코미디언/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 최근 이혼


“왜 자꾸 결혼을 하는 거야? 통계 안 봐? 기혼자 75%가 인생을 말아먹잖아. 스카이다이빙 하러 갔는데 낙하산 4개 중 3개는 안 펴진다고 하면, 그래도 뛸 거야?”

-미국 코미디언 빌 버, 이래놓고 자기도 결혼


“니들은 결혼하지 마라…. (왜?) 그냥 하지 마 이 씨발놈아.”

 -어느 분노한 유부남 누리꾼



점심시간엔 주로 여의도에서 증권사 직원들과 만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10명을 만나면 9명은 남자고, 9명 중 8명은 유부남이다. 그들과 나는 종종 ‘서로 부러워하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대충 이런 식이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그 느낌 모르실 걸요? 출근 전에 허겁지겁 달려 나간 상태 그대로라고요.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아요. 제 인생도요. 일과 중엔 전화통에 불이 날지 몰라도 저녁만 되면 조용해지죠. 수신 카톡 0. 그게 저의 삶입니다.”


“…완벽하네요.”


결혼해서 좋지 않으냐는 나의 질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남성의 비율은 10명 중 2명 정도다. 그나마 2명 중 1명은 아내보다는 아이 때문에 행복하다는 식으로 말을 돌린다.


도대체 결혼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하는 사람과 안(못)하는 사람 모두가 이 이슈에 대해서만큼은 후회 어린 표정을 짓는다. 프로스트가 노래한 ‘가지 않은 길’의 회한을 느끼는 듯하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리고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찰리(아담 드라이버). 한때 잘 나가는 연극 연출가였지만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공허한 눈으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다. 그는 전처인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지옥 같은 이혼절차를 막 끝낸 참이다. 한참을 혼자서 뇌까리던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반주를 듣고 노래를 시작한다. 뮤지컬 ‘컴퍼니(Company)’ 삽입곡 ‘Being Alive’다.


Somebody needs me too much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Someone knows me too well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Somebody pulls me up short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and put me through hell

지옥으로 경험하게 하는 사람


And give me support for being alive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Make me alive

내가 살아가게 하지


But alone is alone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Not alive

살아가는 게 아니야




찰리는 이 노래를 마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나는 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지 오랫동안 생각해 봤다. 가사의 주제, 즉 ‘살아감’의 의미를 무겁게 경험한 데서 오는 복받침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또 다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일까? 혹은 언젠가 그럴 거라는 다짐일까?


이 영화의 제목은 ‘결혼 이야기’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이혼 이야기(divorce story) 혹은 이별 이야기(break-up story)에 가깝다. 비단 결혼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내 몸처럼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온갖 참혹함이 작품 안에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고스란히 들어차 있다.



처음 그 사람과 사랑에 빠졌던 이유들이 헤어질 무렵엔 증오, 아니 혐오의 이유로 뒤바뀐다. 한때 사랑했던 그 사람이 너무너무 싫어서 소리를 지르고 벽을 때리고 면전에서 그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가는 게 아니라고? 이런 대참사를 겪는 게 ‘살아감’의 패키지에 포함된 거라면 살아간다는 그걸 반드시 해야만 하는 건가? 때로는 혼자도 너무 많은데.


남녀 간의 관계를 전제로 했을 때, 이별이 이렇게 치열한 감정싸움이 된 것은 분명 현대적인 현상이다. 결혼이 ‘감정’과 결부되고 영혼의 짝, 이른바 소울메이트를 찾는 과정으로 진화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짝을 찾는 이유와 그 메커니즘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심지어 과거의 여성들은 사랑과 이별의 과정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예를 들어 1960년 피임약 ‘에노비드’가 시판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기 전까지 혼전임신은 여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결정타였다.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결혼 이야기' 촬영 당시 실제로도 이혼을 겪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임신의 조절 가능성을 높였고 모든 것이 변했다. 혼전순결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어떻든 여성들이 스스로의 인생계획을 세우는 데 과학기술이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기술의 발전 이외에도 개인주의의 확산, 보편적 인권의식의 정착 등으로 여성은 서서히 남성의 ‘맞수’로 등극했다. ‘결혼 이야기’에서 주인공 니콜이 이혼을 결심하는 계기 역시 찰리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ego)를 잃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15세기 여성들이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생각이고 판단이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 영화가 니콜을 능력 있는 배우이자 연출가로 설정한 것은 아주 적절했다. 이별 이후 그녀는 날개를 단 것처럼 뻗어나간다. 자기 인생의 스토리를 찬란하게 써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말은 찰리가 니콜의 인생에서 그녀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였다는 말이 아니다. 인생의 어느 구간엔 찰리도 니콜에게 귀인이었다. 다만 그 인연의 유통기한이 다했을 뿐이다. 그렇다. 개인(individual)으로 각성된 우리들은 인연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그 감정을 새로운 국면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끝을 맞이해야 한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사실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이별에도 ‘감정선’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랑이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달콤할 순 없듯이, 이별도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쓰라리진 않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그 점을 상기시키며 긴 여운을 남긴다.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이라는 뛰어난 저서에서 로맨틱한 사랑의 출발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심도 있고 끈질기게 다뤘다. ‘결혼 이야기’는 이 책과 등을 맞대고 있다. 이 영화는 하루하루가 전대미문인 시대를 살고 있는 2020년대의 우리가 조금이나마 덜 혼란스러울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과 사랑 때문에 힘겨운 어느 때라도 그것이 결국엔 살아감의 한 국면이라는 진실을 상기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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