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우씨 Sep 06. 2020

BTS의 ‘밝음’이 세상을 바꾼다

그들의 진짜 차별점에 관하여

2020년은 K팝 팬들에게 여러 모로 특별한 해다. 우선 보아가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보아라는 가수는 단순한 한 명의 아티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00년에 한국에서 먼저 데뷔한 그녀는 처음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뒤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날아가 신인가수로 다시 데뷔했다. 전망이 아주 어두워 보이던 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보아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오리콘차트 1위에 오르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의 음악시장은 너무 크다. 그랬기에 한국가수가 일본차트 정상에 서는 걸 죽기 전에 볼 거라는 기대를 감히 갖지 못했다. 이미 믿기 힘든 얘기가 돼버렸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보아가 처음으로 ‘일’을 벌이자 그 다음으론 동방신기가, 2PM이 같은 성취를 해냈다. 이제 트와이스와 아이즈원은 일본 차트에서 1위를 못하면 서운한 수준에 이르렀다.


모든 것의 시작점에 있는 보아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의 음악시장은 다분히 일본을 의식하고 있었다. K팝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 J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K팝의 역사를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흑역사’ 역시 일본과 관련이 있다. 그들을 넘어서고 싶은 열망이 너무 강해서, 그들을 너무 많이 베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크고 작은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일본을 극복하고자 하는 힘은 매우 강했다. 한국 가수들이 오리콘차트를 ‘접수’하자 K팝의 다음 목표는 자연히 미국을 향했다. 박진영이 원더걸스와 함께 (역시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보아 신화의 반복을 염원했다.


일본인, 아니 동양인이 빌보드차트 1위를 기록한 건 1963년이 마지막이다. 만약 한국음악이 빌보드차트 1위를 기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땐 진정으로 K가 J를 뛰어넘는 대사건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높은 목표였기에 누구도 감히 쉽게 그 말을 담지 못했다. 원더걸스의 빌보드차트 76위 역시 그 당시로서는 위대한 성과였다.


사카모토 큐가 1963년에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이 지금까지의 기록이었다.


진짜 대박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터졌다. 2012년, 싸이라는 돌발사건을 통해서였다. ‘강남 스타일’은 10년간 적층된 싸이의 음악 스타일을 영리하게 요약하면서 그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까지 접목시킨 훌륭한 곡이었다.


곡의 퀄리티와 별개로 미국인들은 싸이의 말춤에 열광했다. 뭐가 어떻든 싸이가 빌보드차트 핫100 2위를 7주간 유지한 데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엿봤다. 그 뒤로 8년이 더 필요했다.


방탄소년단(BTS)이 데뷔한 것은 2013년. 지금은 ‘아이돌’을 상징하는 일반명사처럼 돼버렸지만 데뷔 당시엔 특이한 팀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BTS보다 더 뛰어난 팀이 10개는 더 있어 보였다. 그러나 2020년, 그들이 결국 빌보드 핫100차트 1위라는 전대미문의 대박을 터뜨리면서 BTS라는 이름 역시 영원히 기억될 자격을 얻었다.


흥미로운 건 싸이 때보다 대중의 반응이 오히려 차분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BTS의 이번 성공이 이미 예견된 ‘진짜’임을 보여준다.


BTS의 이번 빌보드차트 1위에 대한 싸이의 코멘트가 이 마음을 잘 대변한다. 그는 후배들의 성취에 대해 “차트성적이 그들의 가치를 입증해주기엔 오히려 부족해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 말 그대로가 진실이다. 언젠가부터 이미 BTS는 빌보드 1위 정도는 예약한 것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정말로 그 사건이 일어난 뒤의 반응이 예상보다 차분한 건, 오히려 그들의 인기가 결코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BTS가 1위를 기록한 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에서도 우리는 몇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이 곡은 BTS 노래 중 처음으로 영어로만 가창된 곡이다. 미국 무대에서도 한국어를 그대로 부르는 게 BTS의 트레이드마크였지만, 예상외로 그 상징을 포기했을 때 더 큰 성과가 찾아왔다. 상황에 맞는 유연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둘째, ‘다이너마이트(Dynamite)’는 많이 생각하고 발표한 노래가 아니다. BTS의 또 다른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치밀한 세계관’에서는 한걸음 벗어나 있다. 그저 즐겁게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다. 그 옛날 공자님 말씀처럼 ‘즐기는 BTS’가 ‘노력하는 BTS’를 이겼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이 곡의 가사는 거의 탄산음료 광고, 혹은 공익광고 수준으로 건전하다. “아침에 일어나 신발 신고 우유 한 잔(Shoes on, get up in the morn’ cup of milk)”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최근 들어 너무 많은 노래들이 섹스와 마약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과 완벽한 대척점을 이룬다.


'선하다'는 게 Dynamite, 그리고 BTS의 가장 큰 특징이다.


아무리 BTS가 인기가 많아도 이렇게까지 유행과 동떨어져도 되는 걸까? 그보다는 대중들이 진짜로 ‘밝음’을 원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둡고 비뚤어진 게 정상으로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는 역으로 BTS의 밝음이 독특하고 새롭게 보였던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더 건전하다는 데이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코노미스트는 “30대 이하 연령대는 주로 SNS로 교류하기 때문에 술을 덜 마시며, 전반적으로 ‘절제’를 중시하는 세대”라는 분석을 내놨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바로 이 측면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가사를 발표한 것이다.


BTS가 유행시킨 또 다른 말로 ‘선한 영향력’이 있다. 그들의 최신이자 최고의 히트곡 ‘다이너마이트’에 바로 이 선한 영향력이 집약돼 있다. 그들의 히트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전혀 없다. 코로나19 시대, 기분 좋은 다이너마이트가 귓가에서 터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