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레이리스트 #19
이용주 감독의 2012년작 《건축학개론》은 1990년대 중반 어느 시점의 ‘가을학기’를 다룬다.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우연히 만난 승민(이제훈/엄태웅)과 서연(수지/한가인)은 사는 동네가 비슷해 귀가 동선이 겹치고 과제도 같이 하는 사이가 된다.
결국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약속까지 할 정도로 가까워지지만, 술 취한 어느 밤 재욱 선배(유연석)와 방에 들어가는 서연의 모습을 본 승민은 결국 마음을 접어버리고 만다. 영화는 그 뒤 약 20년이 지난 서연과 승민의 현재를 조명하며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재밌는 건 이 영화가 2학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봄 느낌’이 난다는 점이다. 그건 이 영화의 개봉 시점이 3월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첫사랑의 느낌이 봄과 닮아서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건축학개론》에선 풀 냄새가 난다. 새싹처럼 파릇파릇한 감정이 마음속에서도 돋아나는 듯하다.
매년 봄마다 이 영화를 보지만, 영화발골을 표방하는 오디오클립 ‘호우시절’ 방송을 위해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훑듯이 봤을 때엔 색다른 면들이 눈에 띄었다. 이 글에선 그 중에서 몇 가지 점들을 꼽아서 다뤄보도록 한다.
첫 번째 포인트: 재욱 선배는 나쁜 놈인가?
재욱을 연기한 유연석은 그 당시 ‘강남 사는 X세대 선배’의 느낌을 정말 잘 살렸다. 후배들을 자취방에 모아놓고 여자를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 무용담을 늘어놓는 그의 모습은 언제 봐도 밉살맞다.
얄미움의 감정은 하필이면 승민이 서연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던 바로 그날, 재욱 선배가 술 취한 서연과 그녀의 방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증오’로 진화한다.
승민의 마음속에 엄청난 분노가 들어찼다는 사실은 그가 서연의 집 앞에서 택시를 잡다가 승차거부를 당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이 시간에 ‘강북’으로는 갈 수 없다는 기사의 말에 승민의 자격지심이 폭발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게 마련인 관객들 역시 재욱을 곱게 보긴 힘들다. 그의 여성관을 대충 알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속이 시커먼 저런 남자들에 혹하는 여자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1990년대, 자유연애의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생긴 새로운 풍경이다. 이전 시대라고 자유연애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90년대와 함께 등장한 X세대만큼 자신감 있게 모든 걸 바꿔버린 세대는 없었다. 이들은 015B의 히트곡 제목처럼 스스로를 ‘신인류’라 규정했으며,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한때 중요한 가치였던 ‘혼전순결’이 고루한 적폐가 돼버린 자유연애의 시대는 생경한 풍경을 불러왔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이 달콤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먹이사슬’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저 술 취해서 집에 데려오면 끝’이라는 재욱 선배의 무용담은 (인정하긴 싫지만) 그에게는 현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잘 생기고, 키 크고, 차 있고, 강남에 사는 재욱 선배는 자유연애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얼마든지 상대를 골라 가며 만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먹이사슬 하단의 사정은 녹록치 않다. 자유연애의 시대는 ‘모태솔로’라는 개념을 함께 태동시켰다. 알파메일‧알파걸이 1:N의 복잡다단한 관계망을 형성할 때,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모태솔로들은 연애마저 책으로 배워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상황이 이토록 극단적으로 상반되기에 모태솔로들 입장에선 재욱 선배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악당’으로 규정하는 게 온당할까? 다시 술 취한 그 밤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재욱과 서연이 서연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재욱은 서연에게 몇 차례 입맞춤을 시도하지만 서연은 거절한다. 이것은 서연의 마음이 재욱에게 향해 있지 않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후 둘은 방으로 향하지만, 서연의 마음이 열려있지 않은 상황에서 승민이 우려할 만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게 이성적이다. 재욱이 만나왔던 다른 여자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서연은 그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승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재욱과 서연을 모두 악한으로 바라보는 길을 택한다. 이건 상당수의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재욱 같은 나쁜 놈은 서연이 싫다 해도 억지로라도 했을 것’이라는 의견마저 적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상술한 먹이사슬 이론에 근거하면, 재욱에겐 얼마든지 다른 선택지가 있다. 굳이 범법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갈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재욱을 악당으로 규정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는 점. 이것이 첫 번째 포인트다.
두 번째 포인트: 서연은 왜 ‘썅년’이 되었나
20년이 지난 승민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 은채(고준희)가 있다. 상황을 보아하니 승민은 은채에게 과거의 첫사랑, 즉 서연을 ‘썅년’이라고 표현한듯하다. 현여친 앞에서 구여친을 평가절하 하는 건 일종의 ‘국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승민은 스무 살 때도 서연에게 “꺼져줄래?”라고 말하며 관계를 끝냈음을 볼 때 실제로도 그녀를 미워한 것으로 보인다.
하긴 술 취한 그날 밤 승민에게 생겨난 증오의 감정이 재욱에게만 향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를 방안으로 들인 서연 역시 악의 무리에 가담한 ‘한패’다.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보니 처음부터 승민의 감정이 증오였던 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그날 밤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절망 속에서 동네로 돌아온 승민은 ‘연애멘토’ 납뜩이(조정석)에게 상황을 전해준다. 이때까지만 해도 승민은 재욱을 미워할지언정 서연까지 미워하지는 않았다. 이는 승민이 납뜩에게 “(둘이 한 방에 들어갔어도)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여전히 상황을 좋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건 서연에 대한 마음에도 아직 불꽃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감정을 증오 쪽으로 돌려놓는 건 다름 아닌 납뜩이다. 납뜩은 승민의 ‘희망회로’에 화답하지 않고 서연을 나쁜 X으로 규정하며 더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말한다. 향후 20년간 위력을 발휘하게 될 ‘썅년 서사’가 바로 여기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이 포인트는 매우 중요하다. 이 국면에서 납뜩이 만약 “그래, 아무 일도 없었을 수도 있어”라고 화답했다면 서연에 대한 승민의 인식 역시 극단적으로 달라졌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10분 남짓한 분량으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살린 납뜩이는, 이렇듯 영화의 전개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누구에게 상담 받을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특히 연애상담의 경우 아무리 좋은 상담도 결과를 바꿔놓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납뜩이 케이스에서 보듯 적어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꿔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20년 넘게 이어질 수도 있다.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그 시절, 서연도 승민을 좋아했다. 그 사실은 상황을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 그런데도 그 시절 승민은 결코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을 3차원으로 바라보는 관객과 달리 승민은 1인칭의 한계 안에서, 게다가 한없이 나약해진 멘탈을 가지고 그 상황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면서 흘러나오는 전람회 ‘기억의 습작’ 가사처럼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감정의 복잡다단한 파도가 지나간 뒤 그날들을 편안하게 떠올리며 듣는 이 노래에는 특별한 여운이 담겨 있다.
곳곳에 오해와 착각이 들어차 있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 아름답고 유일한 그 기억을 우리는 첫사랑이라는 세 글자로 요약해서 기억의 서랍에 담는다.
영화 발골채널 '호우시절'에서 《건축학개론》을 리뷰했습니다. 들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