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플레이리스트 #20
우리 삶에 넷플릭스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던가? 있었다. 어느덧 기억이 흐려졌을 뿐이다.
이제 넷플릭스가 빠진 일상을 상상하기는 힘들어졌다. 그저 재밌는 콘텐츠가 잔뜩 들어있는 보물 상자처럼 보였던 이 서비스는 점차 그 자체로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그 영화 언제 개봉해?"라는 질문은 이제 "그 영화 넷플릭스에 있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시청자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마법의 어플 속에서 기꺼이 길을 잃지만, 때로는 그 수많은 콘텐츠가 모조리 구태의연하게 느껴져 한참을 외면하기도 한다. 무릇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아니요 나무도 아니요 넷플릭스도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각자 삶의 어떤 한 구간을 표상하며 달라질 따름이다.
'캔슬'의 정치학
이런 넷플릭스를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이곳도 어쩔 수 없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넷플릭스의 성공담을 화려하게 반추하는 책들이 이미 나와 있지만, 넷플릭스라고 해서 모든 의사결정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안에 인간들이 있는 한, 그들의 집합이 필연적으로 파생시키는 비합리와 속칭 '어른들의 사정'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꿈과 희망의 나라가 아니라 3차원에 발을 딛고 있는 이윤추구의 기업 집단이라는 현실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점은 이를테면 이런 때다: 제작돼야 마땅한 어떤 콘텐츠가 캔슬될 때. 누군가의 관점에선 너무 재밌는 어떤 작품이 미완성인 채로 종결됐다는 공지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뇌까림 뿐이다. 아, 넷플릭스가 넷플릭스 했구나.
반면 어떤 작품은 끈질기게 새 시즌이, 영화의 경우 후속작이 제작된다. 고와 스톱을 가로지르는 선택의 기준은 '가성비'다.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를 따지기에 앞서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인 반응을 끌어냈는지를 살피는 것이 바로 기업의 논리다. 그리고 여기에 '주피터스 레거시'가 있다.
사실 이 시리즈에 대해 쓸 필요가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2021년 5월 초에 공개된 이 작품은 불과 한 달 만에 시즌2 캔슬이 공지됐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이 뉴스를 접하면 더 당혹스러운데, 시즌1은 그야말로 프롤로그 내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제작비에 비해 반응이 미미했다는 것이 표면상의 캔슬 사유였지만, 공개 한 달 만에 시즌2가 없다는 사실을 확정적으로 공지한 것은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이미 넷플릭스 내부에서는 반응과 큰 관계없이 이 작품이 골칫덩이였던 게 아닐까? 외부인들은 알 수 없는 사정이 분명 이 안에 존재할 것이다.
하나의 해석
'주피터스 레거시' 시즌1은 장대한 시리즈의 서론을 조금 보여줬을 뿐이다. 8개의 에피소드는 2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 직후 평범했던 사람들이 슈퍼파워를 얻어 히어로 집단 '더 유니언 오브 저스티스(더 유니언)'로 거듭나는 이야기 하나와, 이들 1세대가 거둔 성공을 2세대 슈퍼히어로들이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의 문제다.
전체 작품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정지(整地) 작업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지루한 것도 사실이고, 과하게 철학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맞다. 예를 들면 이 작품은 아래와 같이 해석해볼 수 있다.
대공황 직후 사망한 아버지의 환영을 보며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쉘던과 그 동료들이 수많은 역경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슈퍼파워를 얻어내는 과정. 이것은 성서 속 모세와 그 동료들의 출애굽 서사를 연상시킨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일행의 가나안땅 입성(슈퍼파워 획득)은 완수되고, 5명의 백인과 1명의 흑인으로 구성된 더 유니언은 20세기 미국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이때 초반부의 출애굽 서사는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서사로 전환된다. 작품 속에서 더 유니언은 사실상 제2의 건국을 해낸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아 유대 사회를 지배하는 율법으로 삼았듯, 더 유니언은 "절대로 살생을 하지 말라"는 원칙(code)을 100년 가까이 사수하며 미국의 안전을 책임진다. 그러나 이 원칙을 비웃듯 악당들은 살생의 선을 빈번하게 넘나들고, 어린 2세대 슈퍼히어로들의 눈에 부모들의 저 금과옥조는 무기력한 도그마로 보일 뿐이다.
결국 더 유니언의 대장인 쉘던(히어로명 유토피안)의 딸 클로이는 히어로의 길을 포기하고 셀럽의 길을 걷는다. 아들인 브랜던(히어로명 파라곤)이 적통 후계자가 되기 위해 그나마 고군분투하지만, 아버지 쉘던을 지키기 위해 그가 살생을 저지르고 마는 모순 속에서 더 유니언의 존재 의미와 목적은 새 기로에 선다.
이 작품은 20세기 미국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온 선대의 가치관을 21세기 후손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최근 미국 사회에서는 건국 연도를 둘러싼 논쟁이나 헌법 조항에 대한 해석 문제가 상시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점이 자주 제기되기 때문에 이는 그저 남일은 아니다.
'주피터스 레거시'는 현실 속 갈등의 축을 서사적으로 재현하며 화면 바깥 시청자들을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단순히 액션이 화려하고 볼거리가 충만한 히어로물의 차원보다는 더 욕심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그 욕심이 패착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마크 밀러 월드'의 출발
시즌2 캔슬이 이미 확정된 상황임에도 이 작품의 리뷰를 하기로 한 이유,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래도 '주피터스 레거시'의 시청을 조심스럽게 권해보는 이유로는 하나를 더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원작자가 바로 그래픽 노블의 대가 마크 밀러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넷플릭스는 마크 밀러의 작품들 - 주피터스 레거시(Jupiter’s Legacy), 아메리칸 지져스(American Jesus), 엠프레스(Empress), 헉(Huck), 샤키 더 바운티 헌터(Sharkey The Bounty Hunter)에 대한 제작을 확정했다고 공지한바 있다. 이 정도면 마크 밀러 월드가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 코믹스의 킬러 콘텐츠들이 디즈니플러스로 건너가 버린 상황에서 넷플릭스에게도 비장의 무기는 필요했을 것이다. DC코믹스 역시 배트맨 시리즈를 리부트하며 용틀임을 준비 중이고, 경쟁사인 아마존 프라임은 슈퍼히어로 콘텐츠를 풍자적(+선정적)으로 비튼 '더 보이즈(The Boys)'를 성공시키며 선수를 쳤다.
OTT(Over The Top) 시대의 선두주자인 넷플릭스로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들은 앞으로 펼쳐질 세계관의 원작자로 마크 밀러를 낙점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마크 밀러가 설립한 독립 출판사를 아예 인수해버렸다.
'킥애스' '원티드' '올드맨 로건' 등의 작품을 쓴 마크 밀러의 장기는 비틀기다. 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길보다는 유에서 특(特)을 지향하는 도전을 즐긴다. 이런 그의 특징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으면 향후 수년간 넷플릭스가 내놓을 화제작들을 보다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시빌 워'와 주피터스 레거시
마크 밀러의 장점이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어벤져스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었던 '시빌 워'라고 생각한다. 영웅들이 서로 편을 가른다는 설정은 많은 팬들을 분노하게도 했지만, '엔드게임'으로 마무리 된 마블 씨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대단원이 그만큼 감동적일 수 있었던 데에는 시빌 워의 영향이 컸다. 갈등이 깊어야 그만큼 해결도 드라마틱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빌 워의 문제의식은 주피터스 레거시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다. 모든 슈퍼히어로물의 딜레마는 그들의 능력치가 민간인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모든 히어로들이 절대반지 하나씩을 끼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성격은 인간의 것 그대로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인간과 똑같은 유혹과 고뇌를 느끼는 슈퍼히어로들에게 별도의 제약이 없다면 이들은 필연적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빌 워는 바로 이 제약의 문제를 다루며 슈퍼히어로 서사의 생명력을 21세기로 연장시킨다.
대다수 슈퍼히어로들이 탄생했던 시점은 냉전 시대였기 때문에 '폭주와 제약의 딜레마'는 꽤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 있을 수 있었다. 소련과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악(evil)이 존재하는 맥락 안에서 히어로들이 탈주할 가능성은 없거나 낮았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오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거대악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쉽게 말해 하늘 아래 틀린 것은 없고 다른 것이 있을 뿐이라는 사고방식이다. 할리우드 콘텐츠들 역시 이 철학에 응답하는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악당들에게도 점점 악당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으로 묘사됐다.
예를 들어 조커가 그렇다. DC코믹스 원작에서는 절대악의 현신 그 자체였던 이 캐릭터는 2019년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에 이르러서는 '얼마든지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있는' 선량한 소시민의 원형을 하고 있다.
이 세상에 절대악은 없고 '다른 것'이 있을 뿐이라는 21세기적 상황이 슈퍼히어로 콘텐츠를 만날 때 제작자들의 고민은 시작됐다. 아이언맨에서 엔드게임까지 이어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낸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캡틴 아메리카를 반역죄로 구속시키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과정이 있었다.)
DC코믹스의 경우도 배트맨이 절대로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크 나이트'의 문제의식은 주피터스 레거시와 유사했다. 2022년 개봉 예정인 '더 배트맨' 역시 폭주하는 영웅의 모순을 드러내며 비슷한 질문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프라임의 더 보이즈는 심각한 고민보다는 적나라한 상상력의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히어로들이 그들 자신의 엄청난 능력을 믿고 끝없는 오만과 탈선, 위선과 폭주를 일삼는다는 이 설정에는 절묘한 설득력이 있다. 물리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평판의 추락이다.
압도적인 힘이야말로 악과 연결된다는 이 미묘한 알레고리를 더 보이즈마저 성공적으로 꿰어내자 시대의 아이콘 넷플릭스 역시 뭔가를 내놓아야 하는 압박의 구도가 형성됐다. 비틀기의 달인 마크 밀러와 함께 넷플릭스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주피터스 레거시를 통한 그들의 야망은 비록 중단됐지만 아직 다른 작품들이 있다. 이들은 무엇을 보여줄까?
주피터스 레거시는 고작 메인 빌런을 소개한 단계에서 덜컥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앞으로 마크 밀러와 손잡은 넷플릭스가 보여줄 작품들의 톤에 미리 적응하고 싶은 시청자라면 주피터스 레거시를 시청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야망은 중단될 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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