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에게는 각자 고유한 '영혼의 나이'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기 한 아이가 태어나고 있다고 하자. 그에게 부여된 영혼의 나이는 마흔 일곱이라고 하자. 아이의 육체적 나이는 0세이지만 동시에 그 아이는 마흔 일곱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흔 일곱이다.
점점 자라면서 아이는 의식을 갖고 성격도 갖고 발달 과정에 맞는 행동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세상살이가 조금은 낯설고, 그런 반면 아이답지 않게 차분한 성정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처음부터 마흔 일곱의 상태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렇다. 그래서 마흔 일곱 나름의 감각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상처받고, 교류하고, 성장한다. 원래 이런 건가, 남들도 이런 건가 때때로 의문도 가져가면서.
그러다 마침내 어느 날. 아이는 육체적으로도 마흔 일곱이 된다. 바로 이때 아이의 정신에서는 가벼운 변화가 일어난다. 가볍지만 결정적인 변화가. 정신과 육체가 정확히 조응하면서 세상살이가 홀가분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라면에 물을 부을 때 정확한 양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고기를 맛있게 굽는 타이밍을 간파할 수 있게 된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일도 어쩐지 전보다 더 잘 풀려가는 것 같다.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전에 없이 온화해진 느낌이다. 어쩌면 나는 전반적으로 운이 꽤 좋은 인간일 게 아닐까 자문해 보기도 한다.
이 1년 간의 왠지 모를 홀가분함은 아이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된다. 어쩌면 이런 게 사람들이 말하는 전성기 같은 게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육체적 나이가 마흔 일곱에서 여덟로 바뀌면 그때부터 악상기호 데크레센도(decrescendo)처럼 좋았던 기운은 흐릿해져 갈 것이다. 그래도 정신과 육체가 합일하며 세계와 화음을 이뤘던 1년 간의 행복은 아이에게 큰 용기가 되어준다. 언젠가 이런 1년이 한 번 더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그리고 아이가 긴 삶의 여행을 마치고 사후세계로 넘어가면, 그곳에선 마흔일곱의 상태로 다시 태어나 영원히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얘기다. 하늘나라에선 도대체 몇 살인 상태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내 나름의 상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얘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자기 영혼의 나이가 너무 이르거나 늦을 경우 지상에서의 삶이 꽤 난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혼의 나이가 여든아홉 쯤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이 위험한 세상 속에서 한 인간이 89년을 무탈하게 살 수 있다고 장담하긴 쉽지 않다. 바꿔 말해 이 사람은 무려 89년간 기약 없이 불확실한 기다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도대체 영혼의 나이 같은 게 있긴 한 건지, 왜 남들처럼 삶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내게는 한 번도 없는 건지 괴로워하면서.
반대로 영혼의 나이가 3세이거나 한 사람은 사실상 무의식이나 다름 없는 상태로 영혼의 나이를 흘려보내야 한다. 그런 사람 역시 다른 사람들이 떠벌이는 '영혼의 나이' 운운하는 얘기를 들어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3세 때 지나쳐버린) 영혼의 나이라는 게 내 삶에도 찾아와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3인칭으로 보면 매우 무정한, 희망고문 같은 얘기다.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신은 영혼의 나이를 개별 인간들에게 따로 고지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결과적으로 잔인한 처사가 되겠지만 내 영혼의 나이를 모르는 편이 세계를 좀 더 평화롭게 만드는 길이라 판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바로 그렇다. 삶이 힘들거나, 너무 잘 안 풀릴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아직 내 영혼의 나이가 오지 않은 모양이라고. 혹은 내가 생각해도 지금 인생이 술술 풀려나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반대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어쩌면 여기가 내 영혼의 나이일지도 모르니, 앞으로의 남은 삶을 대비해야 한다고. 그렇게 올해도 한 살을 먹는다.
※ 영혼의 나이를 활용한 정신승리 꿀팁: 전성기를 맞아 펄펄 날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이렇게 생각하자. '저 사람의 영혼의 나이는 바로 지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도 혼자 많이 했겠지만 영혼의 나이 도움도 꽤 받은 걸 거야. 영혼의 나이라는 거 정말 대단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