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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광 Apr 23. 2022

세상으로 향하는 창

나는 동해 바다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은 도시와는 아득히 멀리 떨어진,  겹겹의 산들에 에워싸인 벽촌이었고 80여 가구의 집들이 대대로 가난을 대물림하며 이어왔다.  그곳에는 살기 좋은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게딱지처럼 단단히 들러붙어 있었다. 그들은 힘들 때마다 서로를 향해 어깨를 내주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모두가 숨길 것 없는 고만고만한 살림살이였기에 가난을 부끄러워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은 세상의 어떤 일보다 거룩해 보였다. 평소 길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며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왠지 공부가 배고픔을 해결해 줄 것 같지 않았다. 기껏 학교를 졸업한 형들이 고향의 산과 바다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장차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두렵고 암담했다. 그러다가도 가끔씩 서울로 부모 몰래 떠났던 형,누나들이 어느날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들의 모습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거칠고 검었던 얼굴이 희고 뽀얗게 변했고 예전의 우중충했던 옷차림도 알록달록 빛나고 화려했다. 심지어는 그들이 쓰는 말도 우리의 말과는 많이 다른 서울말로 변해있었다. 그런 반면 그들의 표정을 보면 예전의 편안하고 순수한 모습과는 왠지 다른, 억지로 꾸며낸 듯한 분위기가 낯설어 보였다. 어떻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사람들의 차림새며 겉모습을 그처럼 빠르게 바꿔 놓았는지 놀랍고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집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언덕에 있었는데 마당에서 앞을 내려다보면 긴 산이 흘러와 바다와 맞닿은 끝에 죽변 등대가 항상 불빛을 깜박거렸다. 또한 멀리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가르는 검문소가 있는 갈령재 중턱으로 연필로 그린 듯한 길을 따라 이따금씩 개미처럼 버스가 꿈틀대며 지나가곤 했다. 가까운 산과 작은 점처럼 흩뿌려진 듯한 섬들, 해수욕장의 모래밭을 건너 멀리 바다에는 작은 배들이 바쁜 걸음으로 통통거리며 떠나거나 돌아오곤 했다. 아름다웠지만 변함없는 풍경과 하릴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머니는 구멍이 숭숭 뚫린 안방 출입문의 누런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 창호지로 바꾸었다. 창호지를 바르면서 문 한가운데에 손바닥 크기의 유리 한 조각을 붙였고 그 모서리에 책갈피 사이에 남아있던 색이 바랜 코스모스 꽃잎 몇 개를 붙였다. 그것은 밋밋해 보였던 방 분위기를 한층 밝게 해주었다. 유리문이 생기자 밖의 풍경들이 하나둘씩 말을 걸듯 다가왔다. 아침이 밝아오는 것도 비에 젖어가는 앞산의 풍경도 손쉽게 방으로 전해주었다. 유리를 보면 이유 없이 밖이 궁금해졌고 홀로 무료해질 때도 그에게 눈이 갔다. 가끔씩 유리를 통해 서산의 붉은 노을빛 한 웅큼이 방으로 들어오고 어떤 날은 놀랍게도 밝은 달 하나가 송두리째 창에 담기기도 했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작은 유리 하나로 인해 나는 안방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창을 통해 밖을 보면 눈에 익은 곳이었지만 낯선 곳처럼 보였고 하찮은 풍경도 영화 속 장면처럼 거창해 보이기도 했다. 때때로 길을 걷는 사람이 창 안에 등장하면 그가 사라질 때까지 유심히 쫓아가곤 했으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는 부단히 유리창과의 유희에 빠지곤 했다.     

어느날 어머니는 깊이 잠든 나를 깨우기가 부담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흔들었다.


”첫차가 올 시간이 되었구나, 엄마 좀 도와줄래 ?“ 꿈속에서 들리는 듯한 어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못들은 척 돌아누웠지만 나는 곧 몸을 일으켰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나를 깨우는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어제 아버지가 바다에서 잡아 온 문어를 삶고 식구들의 아침밥을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나는 문가에 다가가 유리창에 눈을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아직 어둠이 짙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멀리서 다가올 첫차의 불빛을 발견해 어머니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먼 곳에서 다가오는 흐릿한 불빛을 찾아낸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긴 했지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차가 나타나더라도 곧 굽어진 길로 사라지기 때문에 두 눈을 유리창에 고정시키고 밖을 잘 살펴야 했다. 집안에 시계가 없었으므로 첫차가 나타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첫차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는 어머니의 당부가 쏟아지는 잠과 씨름하는 나를 더 집중하게 했다. 시간이 숨죽이며 흐르던 어느 순간 빛줄기 하나가 섬광처럼 펼쳐지는가 싶더니 이내 점처럼 작아지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불빛은 어둠을 가르며 느릿느릿 다가왔다. 기다렸던 첫차의 불빛임이 분명하다고 느낀 순간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불빛은 또렷하게 나를 직시하듯 다가왔고 나는 어머니를 향해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 차예요, 차가 나타났어요.“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숨가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 오, 그래그래, 잘했구나! 이제 더 자거라“ 부엌에서 나온 어머니는 가볍게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서둘러 무거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어두움 속으로 떠났다. 혼자 새벽길을 떠나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니 미안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면 어머니는 산길에서 가까스로 첫차를 만날 수 있었다. 잠깐 열렸다 사라지는 삼척 번개시장까지는 비포장도로를 2시간이나 달려야 닿을 수 있었고 첫차를 타야만 가져간 생선을 팔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둠이 짙어지면 나는 동생과 함께 동구밖에 서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갈수록 가정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런 일은 수없이 반복되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던 아버지는 수시로 파도에 흔들렸고 어머니가 매번 시간에 쫓기며 시장을 오갔던 날들을 생각하면 어촌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느낌이었다. 어릴적부터 익숙해진 가난과 생활의 불편함, 막막함 등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어떠한 어려움도 견딜 수 있는 내성을 키워주었고 그것은 점차 내가 살아가는데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나는 지금도 작은 사각의 유리를 통해 보았던 첫차의 불빛이 주었던 울림을 잊을 수 없다. 

어두컴컴한 방의 작은 유리판에 눈을 고정시킨 채 산을 넘어오는 한 줄기 빛을 기다리는 어린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는 나타나고 떠나갔다. 산 너머 도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 매번 궁금해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첫차의 불빛은 한 자리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수시로 다그쳤고 무료했던 내 일상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왔다. 어느 순간 나도 그곳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넓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도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이루고 싶은 꿈이 내 안에 들어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니 어느새 나의 생각이나 습관은 그것을 향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 덕분에 나는 그리던 큰 도시에서 학창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되돌리며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작은 유리창 속에 등장했던 풍경들과 어머니의 존재는 내게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던져주었고 오랫동안 내 인생을 지배해왔다. 어머니는 벌써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지금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어 산속에 산다. 첫차의 불빛과 외롭게 씨름하며 그 빛을 놓치지 않으려고 종종거리며 언덕길을 찾아가던 어머니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작정 길을 나선 차의 불빛 하나가 힘겨워하는 누군가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세상의 무수한 불빛 가운데 어느 한순간 깜박이다 내 눈에 꽂혀버린, 오로지 그것만이 진심이라고 믿었던 그때가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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