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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Feb 18. 2024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20대엔 40이라는 나이가 까마득해 보였다.

그리고 왠지 젊음과는 거리가 먼 중년의 이미지가 떠올라 몸서리쳤다.

40대라는 나이에 접어들면 인생이 조금씩 흑백으로 변하면서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한편 TV 드라마에 비치던 40대는 자기 일에 커리어도 쌓이고 삶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재미는 없어지지만 20대처럼 여러 고민에 머리를 감싸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없어질 줄 알았다.

'불혹'이 40대를 대변하는 말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나도 차분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주변 어른들만 제대로 둘러봤어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 같은데.

당시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렇게라도 상상하면서 위안을 삼았을 수도 있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출산하면서 내가 맞은 40은 혼동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긴 육아휴직을 하면서 십 년 넘게 해 왔던 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첫 직장을 십 년 넘게 다니면서 다른 길은 바라보지 않았다.

아니, 바라봤지만 직장 내에서 다른 기회가 생기면서 다시 접었다고 봐야겠지.

다른 경험을 하기엔 나이가 많다고 혼자 단정 지었고, 무엇보다 귀찮았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십 년 넘게 자소서, 면접 등을 전혀 신경 써오지 않다가 다시 하려니 뭐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직장 생활하면서 가끔 이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내가 직장을 선택했는지 시간을 거슬러가 봤다.

대학교와 전공을 선택할 때 나는 철저히 수능점수에 맞춰서 들어갔다.

내가 지망했던 것과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비슷한 분야였기에 별 거부감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그렇게라도 나름 위안했을 수도 있다. 재수할 형편은 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때 취직이 잘되는 과가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아마 그 분야를 선택한 것도 나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전문직이며 남들 보기에 그래도 괜찮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철저히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봤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주위의 시선에 떠밀려 그게 진정 내가 바라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다 직장 생활 5년째 넘어가던 시점에 위기가 왔다. 

내가 이 일을 재미있어하는가? 물어봤을 때 아니었다. 재미있을 때도 있었지만 스트레스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막연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엄청 열심히 할 텐데, 이 일은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모른 채 말이다.

처음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구나 싶은데, 당시엔 그랬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격증 공부라도 해보자 생각했다.

이직을 하려고 해도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컴퓨터 자격증 2개를 따고,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영어 공부 한창 하던 시기에 직장 내 부서를 옮기면서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모든 것을 멈췄다.

전혀 새로운 분야여서 공부할 것만 해도 많았으니까.


그렇게 새 부서에서 적응해서 일할 때쯤 한 번씩 위기가 찾아왔다. 

처음엔 재밌던 일이 갈수록 재미없어졌다. 사람들에 치여서 일하는 것이 내겐 스트레스로 다가왔나 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배우긴 했지만.

그러다 일도 싫은데 상사도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서 직장 생활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정말 가기 싫은데 돈을 벌어야 먹고 사니까 억지로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며 출근했다.

무기력해지는 나를 느끼면서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남편을 만났고 결혼했다.

첫째 임신 5개월 때 임신 휴직을 하면서 드디어 일에서 해방되었다.

처음엔 마냥 좋았다. 입덧이 심해 힘들긴 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둘째도 태어나고 지금은 두 아들이 초등학생, 유치원생이 되었다.


https://pin.it/1 ZK2 WBHgi



2년 전부터 나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울이 찾아왔다.

휴직 중인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 아들과 남편을 챙기다 보면 나는 뒷전이었는데 처음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허전했다. 마음이 공허했고 내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의 내면은 텅텅 빈 채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다니는 듯했다.

남편은 젊었을 때 많은 경험을 해본 후(정말 이런 일도 했다고? 싶은 일도 꽤 많았다) 선택한 직업이어서 그런지 항상 재미있어한다. 본인이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어서 즐겁단다. 오죽하면 일하러 가는 길이 쉬러 가는 길이라고 하겠는가. 

반면 나는 직장 한 곳만 다녔으니 다른 경험을 전혀 하지 않은 셈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남편은 나에게 여러 경험을 해보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을 찾으라고 한다. 너무 급하게 찾으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이것저것 해보라고 한다. 돈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내가 요즘은 애들 방학이어서 시간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하면 (내가 말하면서도 안다. 핑계라는 거. 정말 하고 싶으면 애들 자는 새벽시간에라도 일어나서 뭐든 할 텐데 말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거나, 아직 간절하지 않거나,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거라고 팩트폭격을 날린다.

아... 맞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어서 반박할 건더기가 없다.


요즘은 그동안 잘해왔던 루틴도 엉망이 되어버림을 느낀다.

아침은 두 아들보다 늦게 일어나고, 책을 읽기는 하는데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고. 글도 제대로 안 써진다.

한번 마음먹어야 그나마 하는데, 그 마음을 먹기가 싫다. 왜 이렇게 게을러져 버렸는지...

오늘 하루 하지 않으면 내일도 안 하게 되고, 그다음 날도 계속 그렇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런다.

그러면 나라는 사람을 점점 아래로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느껴진다. 

밑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어쩔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어느새 지하에 도달해 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아! 난 햇빛과 파란 하늘 보는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데, 이건 아니야!

조금씩 조금씩 뭐라도 해보려고 꼼지락꼼지락 거린다. 

그렇게 꼼지락거리다 보면 아! 이게 재밌네! 라며 나를 웃음 짓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여야겠지. 그래.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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