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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Mar 06. 2024

물욕이라는 녀석

물욕이라는 녀석이 한 번씩 나를 덮칠 때가 있다.

단호한 태도로 녀석을 떼어내거나 거리를 두면 되는데, 어느새 혹해서 나도 모르게 휘둘린다.

왜 그럴까 가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부모님께 무언가를 사 달라는 얘기를 잘하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학창 시절엔 별로 소비할 일이 없기도 했다.

그러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내가 직접 돈을 벌다 보니 '내 돈인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잠들어 있던 내 소비 본능이 꿈틀대고 밖으로 정신없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카드라는 것을 만든 이후에는 그게 더 심해졌다.

미래의 돈을 끌어다 쓰는 부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땐 적금 조금 들어가는 것 말고는 재테크라는 것도 전혀 하지 않았다.

경제, 금융 같은 머리 아픈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관심도 전혀 없었다.

당시 어디에 돈을 많이 썼나 생각해 보면 매달 집에 일정한 돈을 부쳤고, 친구들과 술을 자주 마셨으며, 타인에게 보이는 외적인 모습을 치장하느라 바빴다.

가끔 자기계발한다고 책을 사거나 영어 학원에 다니거나 인강을 듣긴 했지만, 그 비중은 아주 적었다.

그러다 나이는 조금씩 들어가는데 모아놓은 돈은 별로 없고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위협감이 느껴졌다.

그제야 부랴부랴 엑셀에 가계부를 쓰고 사고 싶은 물건은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며칠 고민한 후에 그래도 꼭 사야겠다 느끼면 샀다. 


https://pin.it/3 i5 dGKKtH



이런 상태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들이 태어났다.

이때 나를 위해 쓴 돈은 거의 없다. 살만 빠지면 결혼 전에 입었던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남편 스타일을 젊게 해주고 싶어 직구로 조금은 저렴하게 여러 벌을 샀고, 아이들 용품은 타인에게 받기도 했지만 사야 할 것도 많았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연령에 맞게 사야 하는 물품들은 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는데 당시엔 필수템인 것 같아 모두 구매했다.

다행히 책은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고, 아이들이 커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나눔 했다.

그럼에도 집안 곳곳에 아이들 물건이 넘쳐흐른다. 

예전에 사달라는 대로 다 사줘서 그런 것 같은데, 지금은 아이들 책을 제외하고 물건은 꼭 필요한 것만 사라고 제한한다. 뭐,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한때 남편 사업이 잘되지 않아 힘들었던 적이 있었고, 나도 경제, 금융 공부를 시작하면서 마인드를 바꿨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어른이 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아 아이들은 일찍부터 경제 공부를 해줘야겠다 생각했다. 알게 된 즉시 아들 통장을 만들고, 주식계좌도 개설했다. 

그러면서 내게 꼭 필요한 물건만 사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물건을 많이 만들어 사용하지 않고 버리면 지구가 많이 아파한다고도 알려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나도 필요한 것만 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게 한 번씩 무너질 때가 있다.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에게 부족한 자존감을 외부적인 것으로 채우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내 내면에 충실하고 내면을 채워야 하는데 그게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쉬운 외적인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다. 

물론 외적인 것, 중요하다. 나도 깔끔하고 정돈된 사람이 좋으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만 있으면 된다. 적정함을 유지하면 되는데 그것이 한도를 넘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2021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내 삶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쇼핑할 시간이 없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워서 쇼핑 사이트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에 대해 조금 소홀해지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살 것도 없으면서 괜히 쇼핑 사이트를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이거 필요한가?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그래도 다행히 바로 결제하지 않고 며칠 기다렸다 꼭 필요한지 다시금 생각한다.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바로 삭제하기에 그나마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 있지만, 그 행복은 짧다.

만약 그 물건이 나에게 긴 만족감을 준다면 살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내게 그런 물건은 많이 없었다. 

예전엔 옷, 구두, 가방, 화장품 등 나를 치장하는 것에 관심을 많이 뒀는데, 지금은 그냥 편한 것이 좋다.

명품의 유혹에 아주 간혹 혹할 때가 있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주는 기쁨이 별로 크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10년 전에 산 백팩이나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데 만족한다. 무엇보다 가벼워서 좋다.

나이가 들어가니 무거운 것이 나를 누르는 느낌이 싫다.

액세서리도 결혼반지를 제외하고 귀걸이나 가끔 하고 다니지 전혀 하지 않는다.

나를 구속하고 얽매는 느낌이 들어 목걸이, 시계, 팔찌 등은 하지 않는다.

집을 아기자기하게 이쁘게 인테리어 하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냥 깔끔한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두 아들 물건으로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것을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비하고 만족감이 오래가는 것은 책, 문구류다.

지난 2년 반동안 여러 책을 읽었는데, 이제부터 고전을 읽어보려 한다.

그래서 스테디셀러, 고전 위주로 책을 구매하고 있다.

지금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어서 부담감도 느끼지만 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부자가 된 기분이다.

문구류는 보면 혹해서 사는 경우가 많은데 (비교적 저렴한 것들로)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다.

너무 맘에 들어 샀는데 아까워서 사용하지 않고 쓰던 것만 쓰고 있다.

내가 사용하지 않으니 두 아들이 가끔 뺏어갈 때가 있다. 이제부터 잘 사용해야겠다.


남편은 물욕이 없는 사람 같다.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가끔 사준다. 그래도 일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면 남편은 같이 사라고 한다.

그래서 결혼 후에 커플티가 몇 개 생겼다. 

이런 우리 둘이 물욕을 부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책장과 책상, 의자, 그리고 자기 계발을 위한 돈이다.

이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생각한 것인데, 두 아들이 조금 더 자라면 거실을 서재화 할 생각이다.

책장과 책상 4개(각 1개씩)를 놓아 다 같이 공부하고 책 읽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책장과 책상은 조금 저렴한 것으로 사더라도 의자는 좋은 것으로 사자고 이야기했다.

아직 둘째 아들이 유치원생이라 거실이 아이들 장난감으로 차 있지만 2년 정도만 더 있으면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지금 식탁에 앉아 책 읽고 노트북에 글을 적는 것도 내 책상에서 하게 되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를 위해 가끔 찾아오는 물욕이라는 녀석에게 나는 꼭 사야 할 것이 있다고 타일러야겠다.

아이들과 여행 가서 좋은 경험을 하는 것도 좋기에 그런 곳에 돈을 써야 한다고도 말해야겠다.

가끔 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면을 조금씩 채워나가면 조금은 더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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