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첫째 아들이 책을 읽다가 나에게 "엄마, 이게 뭐예요?"라고 물어본다.
두 사람의 이름이 한 글자씩 섞여서 적혀 있고, 그 아래는 숫자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마지막엔 몇 퍼센트인지 나와있고.
뭔지 바로 알아본다.
나 초등학교 때 했던 이름점이다.
"이건 이름점을 보는 건데, 엄마 초등학교 때 하던 거예요. 좋아하는 친구 이름과 네 이름을 한 글자씩 섞어서 먼저 적어요. 그런 다음 글자 획수를 다 더해서 적고 숫자들끼리 더하는 거예요. 더해서 나온 숫자에서 일의 자리만 적고 계속 덧셈을 해 나가면서 마지막에 숫자 두 개만 남을 때까지 계속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거예요. 실제 좋아하는 건 알지 못하고 이름만으로 해보는 거예요."
어렸을 때가 강제 소환된다.
좋아했던 아이의 이름과 내 이름을 적고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마음 졸여가며 해봤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났다.
좋아한다고 말은 못 하고 상대방의 마음도 알지 못하기에 그냥 이렇게라도 알고 싶었나 보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여학생들은 대부분 한 번쯤 해봤던 기억이 난다.
남학생들도 집에 가서는 해봤을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름만으로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안다는 것이 웃긴데, 그땐 나름 진지했다.
모두 믿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맞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가졌던 순수한 마음이었다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이게 요즘 책에도 나온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추억의 놀이로 잊힌 줄만 알았는데...
요즘 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보면 내가 어릴 때 했던 놀이도 꽤 있다는 사실이 가끔 놀랍다.
숨바꼭질,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사방치기, 동대문을 열어라, 이런 이름점까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예전 놀이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사실이 반갑기까지 하다.
첫째 아들은 책을 읽고 며칠 후에 종이 한 장을 가져온다.
그러더니 두 친구의 이름과 자기 이름을 적고는 이름점을 본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데 웃기다.
내가 모두 아는 친구들인데, 좋아하냐고 물어보자 아니란다.
그냥 해보는 거란다.
세상에 그냥 해보는 게 어딨 을까?
쑥스러움과 민망함을 저렇게 표현하는 거지.
숫자를 적어나가는데 새삼 진지하다.
숫자가 낮게 나온 곳에는 ㅠㅠ 표시와 우울한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조금 높게 나온 숫자에는? 가 표시되어 있고.
본인 것을 다 하더니 갑자기 나에게 해보라고 한다.
엄마, 아빠 이름으로 말이다.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이건 그냥 이름일 뿐이니까.
그래도 아이의 성화에 오랜만에 해본다.
어쩜 아주 오래전에 했는데도 그냥 척척 나온다.
나 그만큼 많이 했었나? 나도 웃긴다.
남편 이름으로 해서 몇 퍼센트가 나왔는지 보여주자 이젠 자기들 이름과 나도 해보란다.
이럴 땐 빨리 해버리는 게 낫다.
다 해본 결과 두 아들과의 이름점이 가장 높게 나왔다.
결과를 유심히 보던 첫째 아들, 고개를 끄덕이며 미묘한 웃음을 짓는다.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재밌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겠지만, 이 아이는 앞으로 더 할 수도 있을 테지.
그때의 순수한 마음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