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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Oct 23. 2024

 유치원 체험학습 도시락


올해 7살인 둘째 아들.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은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 내에 있는 병설유치원이다.

병설유치원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현장체험학습을 간다.

아이들은 그 시간이 신난다.

버스를 타고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어딘가로 가서 재밌게 놀고 맛있는 것도 먹으니까.

아이들의 맛있는 것은 엄마들 몫이다.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얘기다.

엄마들끼리 모이면 얘기했다.

돈을 조금 더 받아서 한꺼번에 준비해서 가면 더 좋을 텐데라고.

그런데 아이들마다 식성이 다르고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도 있을 테니 메뉴 통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있는 날,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도시락을 먹고 싶은 것도 있으려나?

생각해 보면 엄마 밥은 매일 집에서 먹으니 체험학습에서는 더 맛있는 것을 먹어도 되지 않나?

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자 뭐 하겠나. 정해져 있는 것을 따를 수밖에.


올해 봄, 가을 한 번씩 체험학습을 갔다 왔다.

체험학습 가기 며칠 전부터 메뉴는 무엇을 해줄까 물어본다.

둘째의 대답은 한결같다. 꼬마김밥.

주먹밥이나 이쁜 도시락을 원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꼬마김밥을 싸고,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 과자, 음료수도 챙겨서 넣어줬다.

그냥 도시락을 싸는 것일 뿐인데 조금 긴장하게 된다.

아이가 먹을 것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 두 번 했으니 올해는 이제 끝이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10월에 현장체험학습을 한 번 더 간다는 거다.

아이들 입장에선 신나는 일이고, 엄마들도 좋긴 하지만 도시락을 한 번 더 싸야 하는 문제가 있다.

둘째에게 물어보니 지난번에 싸준 도시락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기 힘들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가져온 것은 다 먹으라고 하셨다고 한다. 쓰레기 버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래서 이번엔 김밥과 과자만 싸가겠다고 한다. 

그래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고.


현장체험학습 당일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이왕 하는 거 양을 좀 많이 해서 아침도 먹고, 남편도 같이 먹여야겠다 생각한다.

밥을 3인분을 하고 밥이 되는 사이 재료 준비를 한다.

꼬마김밥이라 재료를 많이 넣을 수 없어서 단무지, 햄, 달걀, 당근, 크래미 이렇게만 준비한다.

일반 김의 1/4 크기라서 모든 재료의 크기를 작게 해서 썰어야 이쁘게 말린다.

큰 김밥을 싸면 그냥 크게 하면 되는데 그래서 꼬마김밥이 손이 더 많이 간다.

그래도 아이들이 이게 먹기 편하다는데 어쩌겠나.

하나 둘 싸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밥 양이 많아서 꼬마김밥을 총 36개 쌌다.

한 시간 넘게 서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일어나서 먹으라고 먼저 챙겨주고 나머지 김밥을 싼 후 둘째 도시락을 쌌다.

이 정도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너무 많이 넣지 말라고만 몇 번을 당부하던지.




아들 체험학습 도시락




도시락을 싸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학교에 도시락도 싸서 다녔기에 소풍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엄마가 도시락을 쌌다.

당시엔 고마움을 잘 몰랐다.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데 말이다.

지금 일 년에 2~3번 정도 아이들 도시락을 싸면서 새삼 그 시대의 엄마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던 걸까 싶다.

내 아이가 먹을 것이니 힘들어도 참고 그 시간을 견디시지 않으셨을까.

아니면 나처럼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셨을까?

나도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들과 가족만을 위해 살지는 않는다.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두 아들에게 투정 부릴 때도 있다.

가끔은 생색도 낸다. 

세상엔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이 내게 주는 따스함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더 자주 고마움을 표현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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