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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Nov 17. 2024

앞치마

TV 등을 보면 요리할 때 앞치마를 두르고 하는 경우가 많다.

주방에 있을 때는 보통 앞치마를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혼자 살 때 요리나 설거지를 할 때 앞치마를 한 적이 없다.

왜 굳이 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엄마도 앞치마를 거의 하지 않으셨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앞치마를 굳이 두르고 음식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가끔 옷에 물이 튀긴 했지만 뭐 금방 마르니까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앞치마 선물을 받았지만 쓸 일이 없어 수납장에 모셔두기만 했다.

그런데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음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빨간 고춧물이 옷에 튀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물은 표시도 나지 않고 금방 마르니까 괜찮은데, 이건 달랐다.

옷을 새로 갈아입어야 하고, 고춧물도 따로 빼서 세탁을 해야 했다.

그게 귀찮았다.


그제야 수납장에 모셔둔 앞치마가 생각났다.

앞치마를 둘렀다.

영 어색했다.

내가 입고 있는 옷 앞에 무엇을 하나 더 걸치는 것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것도 처음에만 어색했지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하면 보통 때보다 조금은 과감하게 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내 앞을 이 조그마한 천이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가.


지금 보면 조금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앞치마다.

그런데 굳이 다른 것을 사야 할 필요성은 못 느끼겠다.

하늘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름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앞치마를 하고 요리를 하면 왠지 프로 주부가 된 느낌이다.

이전까진 어설프게 주부를 흉내 냈다면 이젠 나도 뭔가를 본격적으로 할 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랄까?

뭐, 여전히 어설프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옷차림에 따라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앞치마도 해당되는지 의문이 들긴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

앞치마를 두르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처럼 어쩐지 요리를 대하는 마음이 새삼 새로워지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다고 요리를 능숙하게 짜잔~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아서 영상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해 나가는 단계니까.

앞치마에 왜 주머니가 있을까 처음엔 의아했는데, 요즘엔 스마트폰을 넣어두고 있다.

요리할 때 영상을 봐야 하는 경우, 주머니에 넣어놓으니 편했다.

뭐든 것은 쓸모에 의해 만들어졌구나 생각하게 된다.


문득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쓸모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방치하고 있는 것들은 있지 않은지.

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서 이젠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버린 것들도 꽤 된다.

버릴 때는 이제 사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번씩 아쉬울 때가 있다.

그제야 생각난다. 

아... 내가 버렸지! 좀 더 놔둘걸 그랬나 잠깐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이내 지운다.

물건이 가득 차 있으면 왠지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요즘엔 그래도 꼭 필요한 것만 사는 편인데, 그래도 가끔 충동적으로 구매할 경우가 있다.

쓸모가 생기면 상관없는데 그게 아니라면 좀 슬프다.

나로 인해 제 쓰임새를 찾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앞치마는 쓰임새를 찾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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