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은 인형을 좋아한다.
9살, 7살인데 아직도 인형이 좋은가보다.
다른 집에 비해선 많은 편이 아닌가 싶다가도 집안에 쌓여있는 인형들을 보면 많은 것 같다.
한 곳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어느 순간 헝클어져 있는 인형들.
소중히 다루다가도 어느 순간 인형 배를 가르고 털을 벗기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무섭다.
그렇게 쓸모를 다한 것 같은 인형은 보내주자고 하면 아니라고 한다.
아직 더 가지고 놀 수 있다고 하면서 가지고 논다. (많이 불쌍해 보인다.)
대부분의 인형은 소중히 대해주긴 하지만 저렇게 아파 보이는 애들이 먼저 눈에 띈다.
이젠 충분한 것 같은데 누군가 선물을 준다고 하면 아직 인형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
나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나는 인형을 갖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없다.
어렸을 때는 어느 정도 있었을 테지만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에버**에 갔을 때 정말 귀여운 인형을 하나 봤다.
인형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어쩌면 어렸을 때 집안 형편상 살 수 없으니 억제했을 수도 있다) 이 아이는 꼭 갖고 싶다는 욕망이 처음으로 생겼다.
그 아이를 사서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그날부터였다. 가위에 눌리기 시작한 것이.
혼자 자취할 때였는데 가위에 눌려 힘들어서 결국 그 인형을 버렸다.
그 이후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인형을 사는 것을 꺼렸던 것이. 말도 안 되지만 인형 속에 무언가가 나를 괴롭히는 느낌이었달까?
지금은 아이들 덕분에 인형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가위에 눌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냥 심리적인 이유였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땐 그걸 제대로 몰랐으니 인형 탓을 했던 거다.
둘째 아들이 몇 주 전부터 나무늘보 인형 타령을 했다.
왜 그러나 했더니 이모가 나무늘보 인형을 사줬다며 언제 올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드디어 조그맣고 귀여운 나무늘보가 왔다.
인형에 별 감흥이 없는 내가 봐도 귀엽긴 귀여웠다.
봉제마그넷인형으로 자석이 있는 곳에는 귀엽게 매달리기도 했다.
둘째 아들은 그날부터 나무늘보와 사랑에 빠졌다.
어딜 가든 함께 가고 심심할까 봐 그네도 태워주고 집 안 곳곳에 매달려 놀게도 했다.
나에게 당근을 깎아달라고 하더니 나무늘보 인형더러 먹으라고 입에 넣어주기까지!
첫째와 난 둘째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지극정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무늘보를 한참 갖고 놀던 둘째 아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일 년 동안 열심히 한글 공부를 했다는 이유로 아빠가 선물을 사준다고 했다.
둘째 아들은 망설임 없이 나무늘보 인형을 갖고 싶다고 했다.
하나 있는데 또? 했더니 계속 계속 사고 싶단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여주는데 이것저것 한참 고민하더니 결국 조그만 나무늘보와 비슷한 더 큰 걸로 골랐다.
그때부터였다. 나무늘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것이.
원래 다음날 바로 배송된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4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업체에 문의해 보니 중간에 파손되어서 다시 배송해 준다고 했다.
드디어 6일이 지난 후 나무늘보 인형이 우리 집에 왔다.
둘째 아들, 포장을 뜯더니 너무 귀엽다고 난리다.
지난번 것보다 더 커서 그런지 꼭 부모와 자식 사이 같다.
포장박스는 버렸으면 좋겠는데 집 안으로 가져와서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뭐냐고 물었더니 미끄럼틀이란다. 나무늘보들 태워주게 만들었다면서.
그때부터 나무늘보 인형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시켜 주고 미끄럼틀, 그네를 태워준다.
꼭 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소중하게 말이다.
이 관심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잘 가지고 놀다가도 어느 순간 다른 것에 눈길을 두니 말이다.
역시나. 이주일 정도 신나게 나무늘보와 놀더니 다른 것을 가지고 논다.
그런데 어디 구석에 놔둔 것은 아니다.
본인이 만든 미끄럼틀 박스에 고이 모셔두었다.
생각나면 한 번씩 가지고 놀면서 말이다.
아, 오늘은 보니 매달리기를 시켜놨던데, 나무늘보는 힘들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