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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May 19. 2024

2024/05/19

짧은 글 연습

  10년 전쯤이었나? 아버지는 조부모님의 제사를 절에서 지내기로 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하셨다. 독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결정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지쳐가고 있었던 탓이었던 것 같다. 먹고 살기 바빴던 탓이겠지. 큰 집이랍시고 일 년에도 몇 번씩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집어 놓았지만 매년 얼굴을 비추는 친척들은 줄어만 갔다.


  낮은 산속의 작은 사찰이었다. 그래도 집안에서 치르는 제사보다야 부담이 덜한 게 사실인지라 가족들은 쉽사리 모여들었다. 일 년에 한 번이니 딱히 어려울 게 없었다. 사찰에 와서 잠시 인사나 하고 법문 좀 듣고 절밥이나 한 끼 먹으면 가족으로서 응당 할 일을 다 했다며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어느 여름이었다. 해가 조금 기울어지고 바람이 선선해질 때 즈음 가족들이 사찰로 모여들었다. 오랜만에 보이는 얼굴들도 있었다. 막내 고모와 고모부였다.


  "형님 댁에서 할 때는 죄송하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해서 좀 어려웠는데 절에서 하니깐 부담도 없고 좋네요"


  막내 고모부의 말이었다. 제사는 오후 4시에 예정이 되어있었다. 어머니가 일주일 전에 보내놓은 시주로 장만된 음식들이 불단 위로 차려졌고 법당 안으로 짙은 향내가 퍼지기 시작했다. 스님이 법문을 읽어주어 영가를 위로하면 어른들이 모두 삼배를 리고 불단에 시주금을 내놓았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법당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제사를 마치고 스님께 간단한 법문을 들었다.


  “우리의 삶은 지나버린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을 사십시오”


  밖으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저녁 식사를 하며 막걸리를 한 병 꺼내오셨다. 스님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멋쩍게 웃음 지으며 스님에게 건배하는 제스쳐를 취하시고는 보란 듯이 원샷으로 한 잔을 들이켰다. 아버지가 술을 권하자 막내 고모부가 마지못해 잔을 들고 술을 받았다. 항상 밝은 얼굴의 고모부가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고모부는 언제나 나의 롤모델이었다. 가족을 대하는 다정한 말투와 넘치는 사랑. 아이들에게 부끄럼 없이 보여주는 애교 넘치는 말투. 아낌없는 표현. 나는 모든 부분에서 이모부를 닮고 싶었다. 그는 정형외과 의사였다. 아들을 갖고 싶어 했지만, 딸만 넷을 낳으셨다. 다섯 번째 임신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였고 또 딸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많이 낙담했더랬다. 고모는 먼저 그에게 아이를 지우자고 말했다. 그들은 긴 고민 끝에 결국 아이를 지웠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고모부는 술에 취하면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하셨고 고모는 언제나 같은 부분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럴 때면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술이 거나하게 오른 고모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랜만에 한데 모인 가족들이 모두 웃고 떠들었다.


  “지훈아. 부러진 뼈가 다시 붙고 나면 부러졌던 부위가 원래보다 더 두꺼워지는 거 알고 있었니? 사람의 몸은 부족한 걸 채울 기회가 생기면 보통의 경우보다 더 많이 채워. 우리에게 부족한 게 뭐였는지 너는 알겠니?”


  고모부가 술에 잔뜩 절여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부는 건지 처마에 걸린 풍경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모부야 의사라서 답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일개 주방 노동자일뿐이었다. 그런 걸 내가 물어봤자 대답할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어버버거리면서 고모부를 바라보았다. 일개 주방노동자인 나에게 그런 걸 왜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찰에서 준비해준 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고모부의 얼굴은 고작 막걸리 몇 잔으로 붉게 변해있었다. 평소 술을 드시지 못하는 탓이다. 고모부는 술도 깨고 산책도 할 겸 등산로로 하산을 하시겠다며 우리를 먼저 내려 보내셨다. 작은 사찰안으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산을 내려가던 길에 모자를 벗어두고 온 것이 생각이 났다. 제사를 지내며 예를 지킨답시고 벗어둔 탓이었다. 나는 홀로 차를 돌려 다시 사찰로 향했다. 돌계단을 걸어올라가는 사이 산은 더욱 어둑해졌다. 계단에 올라 석등 옆을 지날 때 법당 안에 누군가 홀로 앉아 있는 걸 보았다. 익숙한 뒷모습. 고모부인 것 같았다. 나는 모자를 챙기고 고모부를 모시고 내려갈 생각으로 법당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둑한 법당 안으로 작은 촛불 몇 개가 켜져 있었다.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그의 등이 들썩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나는 멈칫하고는 재빨리 뒤돌아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스님. 우리 애기를 위해서도 법문 한 번만 읽어주시지요. 아버지, 어머니야 살 만큼 사시고 가신 분들이지만 우리 애기는 어쩌라는 겁니까. 세상에 나지도 못하고 죽은 이들은 누가 위로해줍니까.”


  누군가의 훌쩍거림이 작은 사찰안으로 울려 퍼졌다. 스님도 토굴에 들어가신 건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작은 돌탑 옆에 쪼그려 앉아 어두워진 숲을 바라보았다. 우리에게 부족한 게 무엇이었는지 너는 알겠니? 글쎄요.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마음이 뼈와는 다르다는 사실뿐 인걸요. 저녁은 밤이 되었다. 이제 막 시작된 여름에 무슨 유감이 남은 건지 짙은 남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로 풀벌레들이 소리 높게 울어대고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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